빨간 약 먹을래, 파란 약 먹을래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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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 시절이던 육십년대 나는 막연히 미국으로 가고 싶었다. 골목마다 똥 냄새가 나고 깡통을 든 거지가 우글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를 벗어나고 싶었다. 영어책의 삽화에서 보는 파란 잔디가 깔린 뒤의 서양식 가옥은 천국인 것 같았다. 국제결혼을 해서 미국으로 가는 양공주 출신이나 어쩌다 유학을 가는 사람들이 출세의 상징이었다. 중학교 시절 우연히 보았던 ‘엄지발가락 없는 발자국’이라는 책의 내용이 기억 속에 오랫동안 각인되어 있다. 똥지게를 지고 고생하던 사람이 드디어 유학시험에 합격해서 미국으로 떠난다는 얘기였다. 나는 끝까지 유학을 가지 못했다. 대신 아들을 미국으로 보냈었다. 새끼들이 강물을 타고 내려가 넓은 바다로 가게 하는 연어처럼 아들은 이 좁은 세상을 벗어나 자유로운 넓은 세계에서 살기를 바라는 애비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천삼년이 저물어 갈 무렵 나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애너하임市의 가난한 멕시코인들이 사는 동네를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아들에게 그 동네 아파트를 세 얻어 주었다. 삼십 년이 지난 아파트는 개미와 바퀴벌레들이 들끓었다. 아들에게 좋은 아파트를 얻어줄 능력이 되지 않았다. 어둠이 깔린 적막한 길가에는 이따금씩 서 있는 푸른빛을 뿜는 가로등 아래로 납작한 단층집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뻗어있는 골목들이 어둠 속으로 끝없이 뻗어있는 것 같았다. 아들과 나는 차를 몰면서 천천히 가고 있었다. 헤드라이트의 불빛에 컴컴한 골목쪽에 이십대의 멕시컨 아이들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홈리스 같기도 했다. 그중 한 명이 우리가 타고 있는 차 쪽으로 다가왔다.
  
  “아빠 창문을 잠궈.”
  아들이 순간 긴장한 표정으로 내게 다급하게 말했다. 다가온 멕시컨이 운전석 옆 창문에 바짝 다가 붙어서 돈을 달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주머니 속에 있는 지갑을 떠올렸다. 일 달러짜리를 꺼내 주면 될 것 같았다.
  
  “아빠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저놈이 총을 가지고 있으면 곤란해. 몇 불 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주머니 속에 현찰을 가지고 있는 걸 알면 총을 꺼내 강도로 변할 수도 있어.”
  
  그 말을 듣고 나도 움찔했다. 아들과 나는 조심해서 그들을 지나쳐 갔다. 그게 미국의 도시 변두리의 밤 풍경인 것 같았다. 어려서 내가 천국 같은 꿈을 꾸던 미국이 아니었다. 미국은 백인의 나라, 흑인의 나라, 그리고 멕시컨의 나라로 삼국시대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부자인 백인은 도시 외곽의 좋은 주택지대에 살고 가난한 흑인과 멕시컨은 백인들이 떠난 밤의 도시 변두리에 할렘을 형성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었다.
  
  내가 소년 시절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었다. 기회의 나라 미국으로 가서 성실하게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중년의 나이가 되어 찾아간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밤 늦게 뉴욕역에 내렸다. 역사의 바닥에 홈리스들이 들어차 누워 있었다. 화장실 바닥도 그들이 점령해 소변조차 보기 두려웠다. 고층빌딩의 펜트하우스에는 부자가 살고 하수구 쪽에는 홈리스들이 숨죽이고 있는 게 미국의 모습이기도 했다. 남북전쟁을 끝내면서 링컨 대통령이 했다는 이런 말이 떠올랐다.
  
  “이번에 미국 땅에서 흑인 노예를 해방했지만 앞으로의 미국은 철저한 계급사회가 될 겁니다. 부자 귀족과 가난한 천민 그리고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과 덜 가진 사람 그렇게 돈에 의해 무수한 계급이 형성될 겁니다.”
  
  핸들을 잡은 아들이 어둠 속을 응시하면서 내게 말했다.
  
  “아빠 난 말이야 외국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여러 가지 잘못도 해 봤어. 대마초도 펴 봤고 술먹고 싸움도 했어. 어떤 때는 단지 불량해 보인다는 이유로 길거리 경찰관에게 떡이 되도록 맞기도 했어. 그렇게 몸으로 때우면서 어떻게 성질을 죽이고 참아야 하는지를 배웠지. 은행에서 날 무시하는 백인과 싸워야 하는 것도 알게 되고 게으른 아파트 관리인 조지는 방법도 안 거야. 난 이제 이 미국 사회가 하나도 안 무서워. 고속도로에서 시비가 붙어도 핸들을 고정시키는 쇠막대기를 가지고 나가서 인상을 쓰면 겁을 먹고 도망가. 나도 약아져서 이제는 법에 걸릴 야구방망이를 들지는 않거든.”
  
  아들은 책의 삽화를 보면서 상상했었던 나와는 달리 몸으로 그 세상을 깨달아가고 있었다. 아들이 덧붙였다.
  
  “아빠 어떤 영화에서 봤는데 말이야, 아빠같이 판에 박힌 듯한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천사가 나타나 빨간약 파란 약 두 가지를 주면서 그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어. 빨간 약은 기존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따라가는 약이고 파란 약은 그런 자신이 설정한 한계를 넘어가 자신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약이었지. 주저하던 주인공이 마침내 파란 약을 먹고 자신의 모습을 보니까 고도의 컴퓨터의 프로그램에 의해 지배되는 패배자였어. 주인공은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컴퓨터와 싸우기 시작한 거야. 아빠는 그 파란 약을 먹을 수 있어?”
  
  아들의 말이 철학적인 의미를 가지고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아들의 말을 통해 나의 고정관념이 깨져 나가고 있었다. 아들이 바로 파란 약인 것 같았다. 어쩌면 그 파란 약이 성령(聖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겹쳐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 2021-06-08, 22:0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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