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건 몰라도 작은 묘지 하나는 마련해 놨어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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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이 되면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드라마를 보았다. 봉건시대 수많은 전쟁을 보았다. 수만명이 들판에서 진을 치고 서로 맞부딪치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칼과 창을 들고 뛰어가 들판에서 찌르고 찔리면서 피를 흘리고 죽어갔다. 다들 그 누군가에게는 귀한 아들일 텐데 저렇게 집단으로 죽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밥을 대기 위해 농사짓는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려야 했다. 때로는 역병이 파도처럼 쓸려와서 그들을 모두 죽이기도 했다. 그걸 보면서 어쩌면 이 세상이 바로 지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차대전 때 우리의 아버지들은 일본군으로 끌려갔다. 그때 ‘인생 이십오 년’이란 자조적인 소리가 일본인 젊은이들 사이에 있었다. 이십대 초에 전쟁에 끌려가서 모두 죽는다는 것이었다. 이십오 전짜리 엽서 한 장이면 병사 한 명을 징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병사 한 명이 이십오 전이란 말도 일본 사회에 돌았다. 과부가 키운 귀한 아들이 학병으로 끌려가 깃발을 들고 적의 진지에 올라가 죽었다. 그렇게 시체에 시체를 쌓아 그 진지를 얻었다고 한다.
  
  나의 아버지도 6·25 전쟁 때 병사가 되어 전쟁에 끌려나갔었다. 전선에서 굶기도 하고 병에 걸리기도 했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가 죽었다. 질병과 가난 늙음과 죽음이 있는 곳이 바로 지옥이 아니고 무엇일까. 문득 유토피아를 찾아 미국으로 이민 간 먼 촌수의 처남의 씁쓸한 표정이 떠올랐다. 미국에서 잠시의 성공으로 행복해 하던 그는 미국 세무당국의 철퇴를 맞고 무너져 내렸다. 현대에서는 또 다른 사회적 경제적 죽음이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모는 차를 타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일번 도로를 타고 가고 있었다. 차창으로 보이는 태평양의 검푸른 파도가 무겁게 몸을 뒤채고 있었다. 그는 서울에서 춘천을 가는 길이 떠올라 그 길을 가끔 간다고 했다. 차 안에서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어려서부터 고생을 했기 때문에 어떤 일에도 단련이 되어 있었지. 미국에 와서 처음에 창고를 빌려 봉제공장을 했었는데 일감이 들어오지 않아 문을 닫았어. 얼마 안 되는 비상금도 다 바닥이 나니까 그 다음에는 수영장 청소부도 하고 온갖 험한 노동을 다 했지. 아이들은 교육을 시켜야 되겠다 싶어 학교에 집어 넣었는데 선생님이 부르면 겁이 나는 거야. 영어로 자꾸만 물을까 봐 이름하고 나이 정도 대답하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나올 때면 슬펐어. 열심히 임금을 받아 세탁소 하나를 차렸지. 집집마다 다니며 세탁물을 받아왔지. 좀 살만하다 싶으니까 세무조사가 나와 하루아침에 거지 신세가 됐어. 이민 와서 처음보다 더 못한 상태야. 신용불량이란 딱지까지 붙었으니까.”
  
  그가 가족을 데리고 온 곳은 유토피아가 아닌 것 같았다. 그곳 역시 또 다른 지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창으로 내다보이는 산자락 언덕에는 성(城)같이 웅장하고 화려한 대리석 집들이 간간이 보였다. 실베스터 스텔론 같은 헐리우드의 배우들이 사는 호화주택이라고 했다. 상상 속에서 에머랄드빛 실내수영장 주변에서 도기 접시 위에 놓인 랍스터를 먹는 미남배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은 천국에 있는 것일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던 나라의 초등학생이던 시절 나는 변두리 삼류극장의 찢어진 비닐좌석에 앉아 ‘007 제임스본드’ 영화의 그런 장면을 보면서 그곳은 분명 천국일 거라고 확신을 했었다. 친척 처남과 차를 주차하고 태평양의 바닷가에 섰다. 수평선 위로 황혼의 잔광(殘光)이 어둠과 서로 스미면서 섞이고 있었다. 허연 포말을 가득 담은 겨울 파도가 우우하고 달려와 바닷가 검은 바위를 때리고 공중으로 솟아오르면서 부서지고 있었다. 친척 처남이 태평양 저 멀리를 망연한 시선으로 보면서 자조적인 목소리로 내뱉었다.
  
  “다른 건 몰라도 작은 묘지 하나는 마련해 놨어요.”
  
  그의 말을 들으면서 고향을 떠난 성경 속의 아브라함이 떠올랐다. 하나님은 화려한 약속을 했지만 그는 묘지 하나 정도의 땅만을 얻었다. 모세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벧브올 골짜기 어디에 묻혔는지도 모른다. 사도바울은 저 세상이 없다면 자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인간일지 모른다고 고백했다. 서로 물고 뜯고 권력은 착취를 하면서 스스로들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분은 서로 사랑하라고 한 게 아닐까
  
  
  
[ 2021-06-09, 11: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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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2021-06-10 오후 3:19
6.25때 입대하신 것이지 끌려가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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