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에 운동권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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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책감에 운동권이 됐어요>
  
  변호사라는 직업은 현장에서 여러 종류의 절규를 듣고 특이한 운명과 마주치는 일이다. 이십여 년 전 내가 만났던 그녀의 인생이 그런 것 같았다. 팔십년대 초 명문대학교 사학과를 다니던 그녀는 운동권의 핵심으로 뛰었다. 주체사상을 학습했다는 그녀는 서울 거리에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걸 보고 싶다고 했었다. 그녀는 운동권 지하 서클의 핵심인 서울대 출신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사이에 아들을 하나 낳았다.
  
  그러나 인간의 원초적 욕망은 혁명가의 이념을 꺾어 버린 것 같았다. 운동권 출신 남편은 먹고 살기 위해 재벌기업에 들어갔다. 남편이 고속승진을 해서 중역이 되자 다른 여성의 유혹에 빠져들었다. 자존심 강한 그녀는 남편과 이혼을 하고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남편의 허구성을 보면서 그녀는 신봉했던 공산주의가 싫어졌다. 사상 서적도 모두 허위로 보였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전향을 했다. 공산주의 이념을 버리고 그녀가 택한 것은 기독교 사상이었다.
  
  학력이 높고 많은 책을 읽은 그녀는 방송국의 작가가 되어 운동권 시절 못지 않게 열렬하게 활동을 했다. 이번에도 한 남자를 만났다. 독신 목사였다. 그 목사는 배움이 짧고 늙고 돈이 없고 얼굴도 못생겼다. 운동권 출신인 전 남편과는 모든 게 반대였다. 그녀는 하나님이 질그릇 속에 보석을 담아두신다는 말을 믿고 그 독신 목사를 도왔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 지방도시의 조그만 상가를 사서 개척교회를 차렸다. 독신 목사에게 자기가 아는 연줄들을 소개하고 대학에 시간강사 자리도 얻게 했다. 그녀 덕에 떠돌이 목사가 하루 아침에 의젓한 성직자가 됐다.
  
  그러나 그녀의 헌신은 곧 물거품이 됐다. 일년 만에 그녀는 두 번째 남편인 목사에게 수시로 얻어맞고 다시 아들과 함께 거리로 내쫓겼다. 그녀는 내가 만날 즈음에 성남의 외국인 쉼터에서 월세 이십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아들과 생활을 하고 있었다. 불경기로 번역일도 원고청탁도 없다고 했다. 이미 나이가 먹어 어디 가서 막노동을 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험한 거리에는 학력 좋고 미인인 그녀를 노리는 늑대들도 많은 것 같았다.
  
  “왜 운동권이 되어 주체사상을 신봉했어요?”
  내가 물었다.
  
  “저는 집이 부유하고 명문 학교를 편하게 다니고 있다는 죄책감에 운동권이 됐어요. 운동권의 언더 서클에서 정세분석을 담당하고 혁명세력의 전위대로 일했지만 결국 속까지 빨갛게 된 건 아니었어요. 저는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었어요.”
  
  그녀는 어떤 면으로는 반성한 부르주아나 요즈음 말하는 강남좌파 쪽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막연한 연민과 동정으로 혁명가는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기독교 사상으로 바꾸고부터는 진정한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나요?”
  내가 물었다. 그녀는 기독교 방송국의 작가를 하면서 믿음에 관한 현란한 글들을 쓴 것으로 기억한다.
  “…”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고 침묵했다. 예수는 이론이나 사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무당에게 신이 내리듯 성령의 형태로 인간의 영(靈) 속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원리주의자였던 바울이 길을 가는 중에 예수의 영이 그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다음부터 일생 그와 함께 있으면서 그에게 일을 하게 했다. 기독교는 이론체계를 가진 논리나 사상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미신에 가까운 그런 영적 존재와의 만난 체험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성령을 만나기 전에 먼저 광명의 천사같이 위장한 마귀가 독신 목사로 왔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렇지만 이 어둠의 터널 속에서 진짜 그분이 나타나실 것 같네요.”
  
  나는 그녀에게 나의 의견을 말해주었다. 빛은 깊은 어둠 속에서 그 존재를 나타내는 것이다. 주님은 그 얼마 전 휘청거리는 그녀의 지팡이가 되어 동행해 주라고 내게 간접적으로 계시했었다. 그녀가 돌아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난 괜찮아요. 단칸방에서 살아도 진정 영혼이 행복할 수 있도록 진짜 예수님이 나타나시라고 앞으로 기도할게요.”
  
  나는 착하고 아름다운 그녀가 왜 그런 어둠의 골짜기들을 휘돌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 걸 섭리라고 하는 것 같기도 했다.
  
[ 2021-06-18, 09:0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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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stkorea   2021-06-18 오후 12:50
Agree with your conclusion. Her life seems to be a kind
of providence of nature.

인간은 누구도 이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행여 자기 분수를 알고 그에 맞쳐 산다면 모를까.
암튼 삶 자체가 신비이니 그 실체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I always enjoy your story. Thanks. Have a nic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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