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은 사실상 6·25 참전국(參戰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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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初代) 주일(駐日) 美대사였던 ‘로버트 머피’는 6·25와 관련하여, '일본이 없었다면, 미국은 전쟁 수행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6·25 때 日本이 병참기지(兵站基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전투 作戰에 직접 참가했다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日本의 전투 노하우(Knowhow)가 발휘된 분야는 소해(掃海)다. 敵軍이 바다에 부설한 기뢰(機雷)를 제거하는 일이다. 기뢰(機雷)를 제거하는 일은, 육지의 지뢰(地雷)를 제거하는 일보다 그 중요성이 훨씬 크다. 왜냐 하면, 지뢰(地雷)가 주로 少數의 병사, 차량 혹은 탱크 등을 타깃으로 하는 데 비해, 기뢰(機雷)는 기본적으로 軍艦이나 潛水艦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이다. 피해 인원이나 금액 측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오늘날 日本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뢰(機雷) 제거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소해함(掃海艦), 소해정(掃海艇) 등 장비 보유 측면에서도 美國을 앞선다. 日本이 質的, 量的 측면에서 소해(掃海) 분야 TOP으로 올라서게 된 것은, 과거 전투 경험을 통해 축적한 노하우(Knowhow) 덕분이다. 勝敗를 떠나, 근대 해전사(海戰史)에서 日本의 존재는 각별하다. 러·일(露·日)전쟁 때 쓰시마 海戰이 그랬고, 태평양 전쟁 때 미드웨이 海戰이 그랬다. 수많은 海戰들을 치르면서, 日本은 기뢰(機雷)를 부설하고, 敵의 기뢰(機雷)를 제거하는 作戰을 반복했다.
  
  例로, 태평양 전쟁 때 日本은 열도(列島) 방어用으로 인근 해역에 5만 개 이상의 기뢰(機雷)를 부설했다. 거기다 美軍이 봉쇄用으로 부설한 기뢰(機雷)까지 합하면 日本 列島 해역에 7만 개 가까운 기뢰가 존재했다. 세계 역사상 이토록 많은 기뢰(機雷)가 부설된 경우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하다. 기뢰(機雷)들은 終戰 이후 20여 년에 걸쳐 전부 제거되었다. 1991년 페르시아만(灣) 전쟁 직후 페르시아灣에 파견된 해상자위대(海上自衛隊)는, 他國 海軍들이 꺼리는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해역’을 맡아 30개 이상의 기뢰(機雷)를 성공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실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이러한 日本의 소해(掃海) 역량이 6·25 때 한반도 海域(元山 앞바다 등)에서 발휘되었다. 기뢰(機雷) 제거 같은 직접 作戰 말고도, 日本은 인천상륙작전 관련 조언(助言)과 함께, 한반도 지형 관련 각종 정보를 美軍側에 제공함으로써 전쟁 수행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 같은 直接·間接的 역할 外에, 日本은 美軍 병력의 수송에도 많은 日本人을 투입했다.
  
  기뢰(機雷) 제거, 인천상륙 지원, 美軍 수송 등 주요 作戰에 투입된 日本人은 8천여 명으로 추산된다. 作戰 中 死亡者(사실상 戰死者)도 분명 발생했을 것이다. 이같은 참전(參戰) 규모는 6·25 참전 16개국 中 여섯 번째로 큰 것에 해당한다. 日本의 6·25 參戰은 오늘날 공식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6·25 특수(特需) 덕분에 日本이 큰 덕을 봤다는 式으로 韓國人들은 흔히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당시 日本이라는 후방기지(後方基地)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韓國은 아예 존재하지 못할 뻔했다는 사실 또한 알아야 한다.
  
  https://youtu.be/BeHvOH7MrK0
  
  
  
  
[ 2021-06-24, 16:5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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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dBuster   2021-06-24 오후 8:21
문재인이나 조오국이가 이 글을 읽으면 어떤 마음이 들까 ? 죽창가를 드높이 부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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