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다는 게 그렇게 힘든 건지 정말 몰랐죠"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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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약볕에 달궈진 거리가 후끈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점심시간 여의도에서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택시를 탔다. 칠십대 중반쯤의 기사가 핸들을 잡고 있었다. 몇 마디 말을 주고 받으면서 기사는 백미러로 힐끗 나를 살피는 것 같았다. 기사중에는 말에 고픈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런 때 말을 들어주고 여러 가지 세상 지혜를 얻기도 했다. 기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돈도 있고 집도 있고 먹고살 만한데 너무 심심해서 택시를 몰고 있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손님들과 대화를 하는 게 너무 좋아요. 얘기를 좀 나눠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나이가 칠십 가까워 올 때 모든 일을 접고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 년을 있었습니다. 논다는 게 그렇게 힘든 건지 정말 몰랐죠. 처음에는 아내와 함께 한풀이라도 하듯 이 나라 저 나라 해외 패키지 여행을 계속 다녔어요. 그런데 내가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젊은 여행객들이 자기들끼리 놀면서 끼워주지를 않는 거에요. 자기들끼리 저녁에 따로 모여도 나는 빼놓는 겁니다. 내가 술을 낸다고 해도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구요. 그렇게 패키지 여행을 하다가 은근히 외톨이가 되니까 재미가 없어지더라구요.”
  
  나도 사십대에 패키지 여행을 했었다. 그 당시도 아무래도 육십대 이후의 나이든 분들과는 정서도 다르고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그의 다음 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을 보면 늙어서 텃밭을 가꾼다 그림을 그린다 악기를 배운다 별 짓들을 다 하는데 모두들 곧 시들해지더라구요. 나는 자전거를 타기로 했습니다. 일부러 옥수역 근처의 아파트로 이사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자전거를 타고 양평 양수리까지 가곤 했죠. 그런데 그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까 재미가 없어요. 같이 어울려 자전거를 탈 사람이 있어야지 혼자 다니니까 도대체 무미건조한 거에요. 모든 놀이가 같이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집에서 혼자 있다가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서 술을 먹자고 하면 모두들 사양을 해요. 돈이 없는 친구는 신세지기 싫다면서 사양을 하고 전립선이 약한 친구들은 오줌을 쌀까봐 밖으로 나오지를 않고 도대체 같이 놀 친구들이 없는 겁니다. 저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데 방구석에 혼자 박혀 있자니 우울증에 걸리겠더라고요. 그래서 칠십이 넘어서 택시운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돈을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이게 제가 택한 노는 방법입니다.”
  
  “운전을 하면서 어떻게 노시는데요?”
  나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면서 궁금증이 일었다.
  
  “각양각색의 손님들과 이렇게 얘기를 주고받는 거죠. 그 내용을 글로 쓰면 벌써 수필집 두 권은 충분히 될 거에요. 손님들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별별 얘기들을 다 듣는 겁니다. 그리고 별 이상한 인간들을 만나기도 하구요. 그런데 먼저 이 운전에 대해 얘기하면 사람들이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개인택시를 사서 해 보니까 괜찮은 직업이에요. 한 달에 사백만 원은 충분히 벌겠더라고. 아침 일곱 시에 나와서 지금 오후 세 신데 벌써 이십만 원이 넘게 벌었어요.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을 가려고들 하는데 허영에 들뜨지 말고 젊은이들이 택시 운전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요즈음은 개인택시를 하기가 너무 쉽게 제도가 변경됐어요. 무면허 기록 오 년에 일정 시간 교육만 받으면 되니까.”
  
  “승객중 이상한 사람들은 없었어요?”
  내가 물었다.
  
  “더러 목적지까지 가서 택시비가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죠. 그러면 나중에 계좌로 입금해 달라고 하는데 그 몇푼도 떼먹는 사람이 있구요. 어떤 여자는 택시비가 없다고 하면서 몸으로 대신 때우면 안 되느냐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별별 일이 벌어지는 희한한 세상을 구경합니다. 그래도 그렇게 말썽을 찾아 나서는 게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 사는 것 같아요.”
  
  노인 택시기사의 구수한 입담에 어느새 차가 목적지인 서초동에 도착하는 것도 몰랐다. 서머셋 모옴이 쓴 소설 ‘면도날’의 주인공 래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에서 택시운전을 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저한테 택시는 수행 수단이에요. 탁발수행자의 지팡이와 탁발그릇처럼 말입니다.”
  
  희랍인 조르바는 소설 속에서 산다는 것은 말썽을 찾아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나를 태워다 준 기사도 소설속의 주인공 같은 어떤 것을 느낀 것이 아닐까.
  
[ 2021-07-18, 16:1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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