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눈썰매로 북극(北極) 횡단?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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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의식>
  
  고교 동기중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촬영에 목숨을 건 독한 친구가 있다. 그가 젊은 시절 방송국에 들어가 병아리 피디로 시작할 때 했던 이런 말이 지금도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다.
  
  “대장 피디가 촬영을 하러 높은 산으로 올라가면 나는 그 무거운 삼각대와 카메라를 들고 따라 올라가야 해. 그런데 정상에 다 올라가서 골짜기를 내려다보면서 대장 피디가 하는 말이 카메라에 노란 필터를 달고 찍는 게 더 낫겠다면 나는 가슴이 서늘했어. 그 산을 다시 내려가서 차에서 필터를 가지고 와야 하니까.”
  
  그의 피디 생활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사십 가까운 나이가 되도록 결혼도 못하고 방송국의 편집실에서 매일 밤을 꼬박 새는 것 같았다. 그는 오지 탐험을 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한번은 그가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정상을 올라 간 등산대를 따라 갔다 와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등산대를 따라갔지. 해발 오천 미터 육천 미터 칠천 미터로 올라가니까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는 거야. 사람마다 증세가 다른데 내 경우는 불면증이야. 조금도 눈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잠이 안 오고 신경이 곤두서는 거야. 사람 미치는 거지. 낮에는 하루종일 만년설 위를 걷는 거야. 밤이면 두꺼운 빙산 위에 일인용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자는데 난 거기서 폐쇄 공포증이 뭔가를 느꼈어. 밤에 작은 텐트 안에 혼자 있으면 지독히 농밀한 어둠이 유체 같은 덩어리가 되어 나를 덮어 누르고 밀어내는 것 같았어. 그리고 내 텐트 아래서 빙하가 갈라지는 소리가 ‘쩡 쩡’ 울리면서 히말라야 계곡에 울려 퍼졌지. 정말 무서웠어. 나는 텐트 밖에 머리만 내밀고 작은 플래시를 켜서 그 빛을 보면서 밤새도록 숨을 헐떡였지. 그러면서 끝까지 카메라를 들고 따라갔어.”
  
  그는 그렇게 독한 프로였다. 한번은 그가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와서 이런 상담을 했다.
  
  “엔진 달린 눈썰매를 타고 북극 대륙을 횡단하는 기획을 했어. 기름을 도중에 넣을 수가 없으니까 태양광 에너지로 가는 구상을 했어. 그래서 성남에 있는 한 공업사로 그걸 만들어 줄 수 있느냐고 물으니까 할 수 있다는 거야. 그런데 납기가 되도 도대체 만들어 주지를 않는 거야.”
  
  서울 변두리의 엉성한 공업사에서 만든 태양광 장치의 눈썰매를 타고 북극을 횡단하겠다는 그는 무모해 보였다. 그 몇 달 후 그가 눈썰매에 짐을 매달고 북극의 눈밭을 횡단하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는 걸 봤다. 그는 돌아와서 만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몰라서 그걸 시도했지. 여러 사람 잡고 나도 죽을 뻔했어.”
  
  그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가 갔던 히말라야 등반팀에 함께 했던 조선일보 최보식 기자의 말을 들은 기억도 났다. 최 기자는 내게 그때 고통스럽던 상황을 이렇게 말했었다.
  
  “저도 해병대 출신이고 산을 좋아해서 견딜 만큼 견딜 수 있는 사람인데 히말라야 베이스 캠프를 지나고부터 머리가 뽀개지는 듯 아픈 게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요. 그러더니 어지러워지면서 자꾸만 토하더라고요. 더 이상 버틸수가 없어 하산했죠. 그런데 혼자 내려와야 하는 거에요. 등산대는 셸퍼마다 자기 임무가 있으니까 내가 내려가는 데 안내해서 도와줄 사람이 없는 거에요. 지치고 아픈 몸을 이끌고 끝없이 하얀 눈길을 혼자 내려오는데 나는 거기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철저한 프로의식을 가진 사람이고 모험가였다. 언제 어디가 인간들의 마지막일까. 며칠전 ‘자산어보’라는 영화에서 흑산도에 귀양을 가서 어류에 관한 책을 쓰다가 죽은 정약전을 보면서 아름다운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준의 드라마를 보면서 환자를 치료하다가 침을 손에 든 채 죽은 것도 괜찮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거기서 죽는다는 것 어쩌면 그게 가장 행복한 것일지도 모른다. 히말라야를 등산하는 사람은 그 봉우리의 만년설 속에서 숨을 거두는 게 아름다운 마무리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디가 그 자리일까?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책상에서 잠들 듯이 떠나는 게 행복 아닐까.
  
  
  
  
[ 2021-07-19, 15:2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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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stkorea   2021-07-20 오전 11:48
I think the fate of our lives generally works out
the way we think.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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