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의 30·40代가 선도(先導)하는 '포인트 오브 노 리턴'(Point of No Return) 위기(危機)
전교조의 理念 공세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던 30代와 40代가 보여주는 기행적(奇行的) 思考 패턴이 수수께끼 같은 文在寅 지지율을 이해하는 키(Key)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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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갤럽은, 盧泰愚 대통령 때부터 ‘지지율 집계’를 해왔다. 보통, 취임 무렵 60~70% 以上의 지지율로 시작해 임기 말에 크게 추락한다. 골수 지지층이 두터운 金大中 대통령(임기:1998~2003)조차 임기 말에 24%까지 추락했다. 李明博 대통령(2008~2013) 또한 23%까지 추락한 상태에서 임기를 마쳤다. 盧武鉉 대통령(2003~2008)은 말년에 16%까지 추락했다가 막판 급등하여 27%로 마감한 특이 케이스다. 세 명은 준수한 편이다. 盧泰愚 대통령(1988~1993)은 임기 말 지지율이 16%였다. 그런데, 盧泰愚 대통령도, 金泳三 대통령(1993~1998), 朴槿惠 대통령(2013~2017)에 比하면 그래도 준수하다. 金泳三 대통령은 6%라는 처참한 지지율로 임기를 마감했다. 더 심했던 것은 朴槿惠 대통령이다. 탄핵정국 여파로 한국갤럽 집계 역대 最低 4%라는 기록을 세웠다.
  
  文在寅 대통령의 임기 말 韓國은, 그의 예언대로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가 되었다. 외교·안보, 법치, 서민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곡(哭) 소리가 난다. 오죽하면 친文 맘카페(3040 여성)에서조차 ‘문재인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성토(聲討)가 나올까. 따라서, 文在寅 지지율은 지금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수치’가 나와야 자연스럽다. 朴槿惠 대통령 기록(4%)을 깨거나, 적어도 근처에라도 가 있어야 말이 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초기 ‘오픈빨’에 이어 제2의 전성기를 구가(謳歌)하듯 고공행진 중이다.
  
  7월 23일 한국갤럽 발표에 따르면 지지율이 40%가 나왔다. 수 주(週) 동안의 횡보 후 상승이다. 응답자가 꼽은 가장 큰 지지(支持) 이유로는, 첫번째가 ‘코로나 대처’이고, 두 번째가 ‘외교’였다. 연령층으로는 30代와 40代 지지율이 각각 50%씩 두드러지게 높게 나았다. 7월 19일 발표된 리얼미터 집계에서도 40代(44.9% 지지)와 30代(33.7%)의 文在寅 지지율이 각별했다. 30代와 40代 리얼미터 지지율을 평균으로 뽑으면 39.3%가 나온다(44.9+33.7/2), 이는 여타 연령층 평균값 20.2%를 거의 두 배로 압도하는 수준이다.
  
  이렇다 할 성과는커녕, ‘처음 경험하는 고통’만 선사하는 文在寅을 놓고 이런 式의 지지(支持)를 보내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해석의 키(Key)는, 文在寅 스타일을 유독 선호하는 30·40代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렸다.
  
  5년 前쯤으로 돌아가 보자. 2016년 11월 말 朴槿惠 대통령 지지율은 한국갤럽 역대 最低 4%를 찍었다. 이때 20代와 30代의 지지율은 0%로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그때의 20代 후반(26살~)과 30代 후반(36살~)은 5년 경과한 오늘날 각각 30代와 40代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文在寅 스타일을 열렬하게 추종하는 핵심층을 형성했다. 10년 前으로 가 보자. 2010년 서울시장 선거 때 30代 유권자의 60%가 좌파 성향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상당한 쏠림(偏向)이다. 이들 유권자들은 오늘날 40代로 편입되었다. 이런 式으로, 오늘날 30~40代 연령층은 몹시 튄다.
  
  이들로 하여금 ‘文在寅 스타일’에 열광하도록 만든 배경으로는 무엇보다 ‘전교조’(全敎組, 全國敎職員勞動組合)를 비중있게 꼽을 수 있다. 전교조는 1989년 2만여 명의 조합원으로 출범했다. 不法이었기 때문에 정부는 조합 탈퇴 권고를 했고, 거부한 1500여 명의 교사는 해직됐다. 전교조는 정부에 맞서 곳곳에서 데모했다. 당시 ‘참교육’을 기치로 내건 전교조에 동조하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았다. 光州 지역 고등학생 1만 5000여 명은 ‘전교조 지지, 해직교사 복직’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고 학생 중 일부는 가두행진을 하고, 경찰과 투석전까지 벌였다. 이로 인해 800명 이상의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됐다. 서울의 일부 학교에서도 전교조를 지지하는 학생들의 농성이 있었다. 馬山에서는 일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전교조 교사 해임 반대 시위를 위해 성당(聖堂)에 모이기도 했다. 전교조 교사가 실시하는 수업만 듣고 다른 교사의 수업은 거부하는 움직임까지 생겨났다. 적지 않은 학부모들도 이런 분위기에 호응했다.
  
  1999년 7월 金大中 정권 때 전교조는 합법화되었고, 2003년에는 조합원 수(數)가 9만 4000여 명까지 달했다. 하지만, 그 以後로 전교조는 뚜렷한 하락세(下落勢)를 보이며 2017년에는 조합원 수(數)가 5만 명으로까지 주저앉게 되었다. 전교조의 양적(量的) 쇠퇴 원인은 이념편향성(理念偏向性) 때문이다. 2002년 장갑차 사건 때 전교조는 ‘살인만행’이라며 여론몰이에 나섰고, 駐韓美軍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韓美연합사 해체, 맥아더 동상 철거 등을 요구했다. 반전(反戰)평화 수업을 빙자해 학생들에게 反美 의식을 심었으며, 2005년에는 학생들을 이끌고 빨치산 추모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2008년 광우병 난동 때도 시위에 앞장섰고 학생들을 동원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시국선언’ 참여로 정치개입을 시도했다. 2016년에는 상급단체인 민노총(民勞總)과 더불어 탄핵시위를 사실상 주도했다.
  
  보수진영은 반격에 나섰다. 2008년 '국민연합'을 결성하여 전교조를 反국가 利敵단체로 규정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그 以前인 2006년 말에는 학사모(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가, 학생을 性추행하거나, 폭행하거나, 촌지를 받는 등의 행위가 드러난 ‘부적격(不適格) 교사 62명’을 발표했는데 그 중 58명(94%)이 전교조 교사였다. 전교조의 이념 성향을 확인한 학부모들의 걱정이 커지는 가운데, 2010년 당시 한나라당 조전혁(趙全赫) 의원은 전교조 조합원 명단을 전격 공개했다. 2019년에는 서울 인헌고(仁憲高) 학생들이, 反日 구호(口號) 및 反日포스터 제작을 강요하는 전교조 교사들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전교조는 1989년 출범 以後 2003년까지가 전성기(全盛期)였다(가입자 2만 명→9만 4000명). 하지만, 특정 理念에 경도(傾倒)된 탓에 2004년부터는 외부로부터의 견제(牽制)가 본격화되었고, 내부로부터의 회의감 또한 커지면서 탈퇴 교사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전교조는 적어도, 전성기에 해당하는 2004년 直前까지의 15년 동안(1989년~2003년)은 학생들을 향한 이념적 공세를 일방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다. 전교조 교사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골고루 分布한다. 상대적으로 고등학교에 약간 많다.
  
  편의상, 중학교 학생 때부터 전교조의 理念 공세가 본격 전개된다고 보면, 1989년 전교조 출범 당시 중학교 1학년 학생인 1976년生을 시작으로, 2003년 전교조 전성기 마지막 해(年)의 중학교 1학년 학생인 1990년生까지가 전교조의 왕성한 활동 타깃이 되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에, 1989년 출범 당시 시점(時点)의 중학교 2학년 학생(1975년生)부터 고등학교 3학년 학생(1971년生)까지 또한, 꼬박 6년(中1~高3)은 아니어도, 일정기간(中2:5년~高3:1년) 전교조의 영향을 받은 後 대학진학(大學進學)을 하거나 사회진출(社會進出)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정리하면, 연령으로 봤을 때 1971년生(1989년 출범 당시 高3)부터 1990년生(2003년 전성기 마지막 年度 中1)까지가 전교조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추론(推論)이 성립한다. 今年 기준 나이로 보면, 50살(1971년生)부터 31살(1990년生)까지다. 정확히 40代와 30代로 딱 떨어진다. 2021년 7월 25일 기준 韓國의 인구(人口)는 5182만 명이다. 이 중, 유권자(滿18세 이상)는 85%에 해당하는 4400만 명이다. 연령대별 비중(比重)을 보면, 18세~20代가 전체 유권자의 18%를 차지하고, 30代가 16%, 40代 19%, 50代 20%, 60代 15%, 70代 이상 12%를 차지한다. 전교조로부터 특정 이념의 세례를 받은 30·40代가 전체 유권자의 35%를 차지한다. 이들은 10년 後에는 40·50代 유권자로서, 20년 後에는 50·60代 유권자로, 30년 後에는 60·70代로, 두고두고 韓國의 進路 선택에 차질(蹉跌)을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교조는, 해직교사를 가입시키는 등 법규를 위반하여 2013년에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後, 이에 불복해,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헌재소원, 법원소송 등 백화점式 소송戰을 전개했다. 그리고 법원 소송에서 1審과 2審에서 패했으나 2020년 9월에 대법원에서 극적인 뒤집기 승소 판결(‘전교조 合法’)을 받았다. 이미 헌법재판소가 ‘법외노조’ 처분을 합헌으로 판정했고, 1·2審 또한 ‘법외노조’ 처분을 정당한 것으로 판결했지만, '김명수'의 대법원이 모든 것을 엎어버리고 전교조의 손을 들어주었다. 法을 위반하고도 끝까지 물고늘어지면 대법원이 받아준다. 이것이 오늘날 韓國의 민낯이다.
  
  이렇게, 전교조의 理念 공세에 무방비(無防備)로 노출되었던 오늘날의 30代와 40代가 보여주는 기행적(奇行的) 思考 패턴이 바로 오늘날 수수께끼 같은 文在寅 지지율을 이해하는 키(Key)가 된다. 내년 大選에서 정권교체에 실패하면, 韓國은 그대로 ‘포인트 오브 노 리턴’(Point of No Return, 귀환불능점) 상황으로 마감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韓國에서의 정권 싸움은, 한가한 나라들, 例를 들면, 美國 '공화당 對 민주당', 日本 '자민당 對 야당', 기타 유럽국가의 '우파 對 좌파' 싸움과 같은 성격이 절대 아니다. 이들 한가한 나라들은, 어느 쪽이 정권을 잡든 다른 쪽은, 이번에 안 되면 다음, 다음에 안 되면 또 다음을 기약하더라도 國家의 존망(存亡)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韓國의 경우는 다르다. 정권 싸움이 곧 국가의 존망(存亡)을 결정하게 된다.
  
  최근 30여 년 右派로 분류되는 지도자들을 보면, 金泳三 대통령은 ‘民族’에 빠져 미몽(迷夢)을 헤맸고, 李明博 대통령은 ‘아침이슬’에 취해 비틀거렸다. 朴槿惠 대통령은 ‘여야동수’(與野同數)로 호기(豪氣)를 부리다가 역전패(逆轉敗)당했다. 반면, 金大中, 盧武鉉, 文在寅은, 공통의 목표에 집중하고 죽자사자 뛴 후 바통을 넘기고 있다. 右派 지도자가 본분(本分)을 망각하고 답보(踏步) 내지 퇴보(退步)할 때, 左派 지도자는 진도(進度)를 쭉쭉 빼며 쾌속 순항 중이라는 이야기다.
  
  서 있는 승용차를 뒤에서 손으로 밀 때, 처음에는 많은 힘이 들어가지만 일단 차가 움직이면 적은 힘으로 손만 살짝 올려도 잘 나간다. 韓國의 左派들이 지금 이런 기분일 것이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韓國 사회를 점차 左派 세상으로 물들이는 데 성공했고 이제는 다음 단계로 나가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400 미터 릴레이 경기에서 右派 지도자들이 10 미터도 전진하지 못하고 전부 벌러덩 드러누워 있는 동안, 左派 지도자들은 국민들이 뭐라든 귀(耳) 막고 앞만 보고 달려 300 미터를 거의 완주하고 이제 100 미터만 남긴 상태다. 막판 스퍼트를 책임질 마지막 주자(走者)를 정하는 즐거운 고민만 남았다. 내년에 左派 쪽에서 마지막 走者가 나와 남은 구간(100 미터)을 마저 달리면, 게임은 끝이다. 내년이 ‘포인트 오브 노 리턴’(Point of No Return)의 元年이 될 수 있는 이유다. 내년 大選에서 진다면, 다음 5년을 기약할 여유는 없어질 것이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체제’가 도래(到來)하여, 거기에 적응하는 데 급급해질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열려있다.
  
  韓國 땅에만 머물다 보면, 역설적(逆說的)으로 韓國이라는 나라가 지금 이 순간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 中인지, 막상 韓國人들만 모를 때가 많다. 韓國은 지금, 文在寅 스타일의 지도자가 존경받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으며, 전교조의 부활(復活)로, 이러한 스타일을 존경하도록 길들여진 유권자들이 더욱 많이 배출될 가능성도 커졌다. 法治와 品位, 敎養 같은 고차원(高次元)의 가치를 중시(重視)하기보다는 民族主義的 배타성(排他性)이나 全體主義的 결집성(結集性)에 매료(魅了)된 우중(愚衆)이 눈에 띄게 증가(增加)하는 中이다. '재치'와 '아이디어'랍시고 내놓는 것들 대부분이, 허구한 날 이웃 나라를 비롯한 他國을 불필요하게 자극하고 조롱하며 모함하고 헐뜯는 것들이 主를 이룬다. 그러고도 킥킥거리며 좋아한다. 남들(他國)이 내심, 이런 모습의 韓國을 ‘천박한 발광(發狂)’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한다.
  
  오늘날 韓國이 갈수록, 천박(淺薄)한 '삼류국가(三流國家)'로 수렴(收斂)해가는 모습은, 본분(本分)을 망각한 右派 지도자들과, 불순하게 달려온 左派 지도자들, 그리고, 知識과 敎養이 부족한 국민들이 합심하여 빚어낸 '재앙적(災殃的) 변화상(變化狀)'이라고 할 수 있다. 내년에 넘어지면, 더이상 심기일전(心機一轉)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다. 잘못된 길을 너무 멀리 왔기 때문이다. 내년에 지면, 韓國은 곧장 '포인트 오브 노 리턴'(Point of No Return) 상황이 된다.
  
  https://youtu.be/mk37g0JWDyk
[ 2021-07-25, 15: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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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idn   2021-07-27 오후 6:02
펀드빌더 같은 良識의 지식인들이 자꾸 사라져 가고 있으니 오호 애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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