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한테 이 말은 정말 어떻게 할까 고민했는데…”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거짓말과 허풍의 버릇>
  
  나는 어려서 명문이라고 불리던 경기중학교에 입학했었다. 가난한 회사원이던 아버지와 뜨개질 품팔이로 생활비를 보태던 어머니는 입학식날 환한 얼굴로 학교 운동장에서 나와 사진을 찍었다. 중학교 일학년인 내가 처음으로 느낀 것은 변두리적인 자의식이었다고 할까. 열등감이었다고 할까.
  
  가정환경조사서가 공개되었다. 아버지가 회사의 사장인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말단사원의 아들은 유일하게 나 혼자인 것 같았다. 사장만 있는 게 아니었다. 판검사 변호사 장군이나 장차관집 아이들도 흔했다. 가끔씩 학부형 회의가 있다면서 담임선생은 어머니를 학교로 오시라고 했다.
  
  부자와 고관집 부인들의 나들이는 화려해 보였다. 그 시절에도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고급 옷을 입고 당당한 모습으로 아들의 학교에 나타났다. 주눅이 든 어머니는 입고 갈 옷이 없어 학부형 회의에 가지 못하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학교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 부자집 부인들은 두툼하게 돈이 든 봉투를 선생님에게 건네주곤 했다. 가난한 집 아들인 나는 명문 학교 안에서 다른 세상의 일면을 엿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부자집 아이들은 청바지에 외제 오토바이를 타고 청계천 고가도로를 질주했다. 스포츠카를 타고 여학생을 옆에 태운 채 강변도로를 드라이브하기도 했다. 그들의 공부 방법도 특이했다. 그들은 학교 선생을 통해 과외를 했다. 선생들은 아이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시험문제를 빼돌려 그 아이들에게 답을 알려주기도 했다.
  
  소년인 내게 세상은 불공평하고 공정하지 못한 것 같았다. 부모가 깔아준 넓고 탄탄한 길을 쉽게 가는 운명도 있었고 죽었다 깨도 돌과 가시덤불이 무성한 험한 광야같은 앞날만 존재하는 나 같은 부류도 있는 것 같았다. 명문은 아이들이 공부만 잘해서 명문이 아닌 것 같았다. 부모들이 힘 있고 부자여서 명문이었다.
  
  내가 다닐 학교가 아닌 것 같았다. 중학교 삼학년 시절 자퇴하겠다고 신청한 적이 있다. 선생은 이 학교의 졸업장이 나중에 이 사회에서 너에게 얼마나 든든한 방패가 될 건데 그러느냐고 하면서 비웃음 같은 표정을 지었었다.
  
  정신연령이 어렸던 나는 고등학교시절 정체성이 흔들렸다. 허풍쟁이가 되어갔다. 상상 속에서 나를 부자집 아들로 만들었다. 냉장고도 있고 전화도 있고 아버지 차도 있고 허풍이 점점 부풀어갔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한번 거짓말을 하면 그걸 속으로 외워둬야 했다. 어떤 때는 헷갈리기도 하고 들통이 나면 현장에서 적당히 둘러대야 했다. 헝클어진 실 위에서 뛰는 강아지처럼 내 허풍과 거짓에 스스로 묶여 꼼짝을 못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같은 반의 한 친구가 둘만 조용히 보자고 했다. 방과 후 학교 창고 옆에서 그 친구와 둘이 만났다. 그 친구는 같은 학년이지만 정신적으로는 한참 위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실력도 뛰어났다. 그는 전국 독일어 경시대회에서 일등을 하고 고등학생으로 독일정부의 초청으로 몇 달간 독일을 갔다오기도 했었다. 해외여행이 금지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고등학생으로 독일을 갔다 온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집안도 부자인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친구 집의 기사가 모는 고급승용차를 얻어탄 적도 있었다. 인품도 좋은 친구였다. 부자집이면서 그는 모든 걸 다 갖춘 것 같았다. 그가 신중한 표정을 지으며 힘들게 입을 열었다.
  
  “너한테 이 말은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그 순간 나는 그가 뭘 말하려는지 속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진지하고 진심을 담아 나의 거짓과 허풍을 조심스럽게 지적해 주었다. 뒤통수를 쇠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나는 발가벗기가 너무 힘들었다. 열등감이 있는 한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부자이건 아니건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마음속으로 깨달았다. 나는 못난 나 자신을 속으로 깨달았다.
  
  그러나 열등감에서 나온 거짓이 쉽게 치유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고시에 실패하고 직업 장교로 군에 들어가 전방의 철책선 부대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친구들이 나를 위로하러 먼 길을 찾아왔다. 그들은 이미 고시에 합격하고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나는 그 친구들 앞에서 군 생활도 할 만하다고 허풍을 떨었다. 열등감이 바탕에 있는 게 느껴졌다.
  
  그런 말을 하면서 찾아온 친구들의 눈을 보는 순간 나는 맥이 빠졌다. 친구들의 눈은 ‘나는 다 알고 있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돌아간 친구들이 며칠 후 박스 하나를 소포로 보냈다. 박스 안에는 그들이 고시공부할 때 핵심을 요약해 놓았던 서브노트들과 예상문제에 대한 답안들이 들어 있었다. 시간이 없을 테니까 그걸 보면서 한 번만 더 고시를 쳐 보라는 내용의 메모가 들어 있었다.
  
  맑은 눈물 한 방울이 뺨으로 흘러 내렸었다. 나는 못난 그대로 발가벗기로 결심했다. 어떤 것도 숨기지 않기로 했다. 버릇 때문에 그래도 거짓말이 튀어 나가기도 했다. 그런 때면 말을 한 사람을 다시 찾아가서 내가 거짓말과 과장을 해서 미안했다고 하면서 시정했다. 잘난체하는 것보다 단점과 못난 점만을 말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좋은 친구들을 둔 덕으로 나는 다시 만들어진 셈이다. 나의 거짓을 지적해 준 친구를 만날 때면 그때 감사했다고 인사를 한다. 그들은 씩 웃으면서 전혀 기억이 없다고 한다.
  
[ 2021-08-19, 14: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북방계   2021-08-19 오후 7:19
참으로 공감하는 훌륭한 글입니다. 비슷한 연배의 저도 유사한 경험이 있지요. 엄선생님의 글을 제가 빠뜨리지 않고 보는 이유는 진솔하게 적어내려가는 그 흐름의 마력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까지의 그 좋은 많은 글들에도 감사 드립니다.
  정답과오답   2021-08-19 오후 4:49
정말 어려운 이야기 멋지군요 감탄이 나옵니다
엄상익님을 존경합니다
솔직한 사람이 별로 없는 대한민국에
선생님 같은 분이 있다는게 신기합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보게되기를 기원합니다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