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해방 오십팔년을 맞아 변호사에게 경고한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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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사 출신 명문여대 교수와 관련된 사건을 맡은 적이 있었다. 검사를 남편으로 둔 미모의 여교수는 세상적으로는 모든 것을 갖추었다. 검사인 남편은 부유한 집의 아들이었다. 그녀는 강의를 하다가 종종 “이것도 몰라요?”라고 했다. 일등만 해 온 그녀는 간단한 것도 모르는 학생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한 마디는 듣고 있는 여대생들의 가슴에 가시가 되어 박혔다.
  
  여교수는 범죄사례를 얘기할 때 검사 남편이 다룬 사건의 케이스를 소개했다. 강의를 듣는 여학생들에게 교수의 강의가 자기 자랑, 남편 자랑으로 비틀려 들리기 시작했다. 여교수는 무심히 결혼 때 받은 다이어반지를 말하기도 했다. 이미 마음이 퍼렇게 변한 여대생들의 눈에 그 말은 교수가 부(富)를 과시하는 것으로 들렸다. 수업중 핸드폰이 오면 여교수는 그걸 받아 얘기했다. 여학생들은 그 태도를 보면서 교수가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여겼다. 인터넷 게시판에 그 여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비난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수업을 들은 여학생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 있었다. 교수를 이해해 보려고 하는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여교수의 조교가 되었다. 어느 날 여교수가 조교가 된 제자에게 어떤 일을 부탁했다. 제자는 자기의 시간을 희생해 가면서 부탁받은 일을 했다. 그런데 교수는 더 이상 그 일을 확인하거나 묻지 않았다. 얼마 후 제자는 교수가 다른 사람을 통해 그 일을 처리한 걸 알았다. 교수는 제자에게 부탁했던 사실 자체도 망각한 것 같았다. 어느 날 제자가 원망조로 교수에게 한 마디 했다.
  
  “이미 그렇게 처리하셨으면 말씀이라도 해주시지 그랬어요 교수님”
  그 말에 교수가 발끈해서 대답했다.
  
  “내가 왜 그런 것까지 네게 다 보고해야 되니?”
  
  순간 교수와 제자 사이는 커다란 금이 갔다. 제자는 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제자는 문자 메시지로 교수에게 자신의 원망과 욕을 담아 보냈다. 그걸 받은 교수가 펄펄 뛰었다. 경솔한 행동을 후회한 제자가 교수실로 가서 무릎을 꿇고 빌었다. 그러나 교수는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사실이 학생들 사이에 알려지자 잘난 척하는 여교수에 대한 증오가 들판의 불길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여교수의 핸드폰과 대학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그 여교수에 대한 저주와 욕설이 가득 찼다.
  
  교수의 검사 남편이 동료에게 수사를 의뢰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던 제자가 구속기소가 되고 재판이 열렸다. 그 사건이 새로운 양상의 싸움이 되어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있는 자와 없는 자 권력과 민중의 투쟁형태로 변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단과대학별로 대표 학생들이 재판장에게 보내는 의견서를 작성했다. 그 불길은 서울의 다른 대학들과 사법연수원까지 번지고 있었다.
  
  철없는 여교수는 그때까지도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문자를 날린 제자가 각 대학을 다니면서 학생들을 선동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여교수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과거 알던 판사를 동원해서 그 제자를 엄하게 처벌해 달라고 담당 재판장에게 부탁을 했다. 그리고 대학의 강의실마다 ‘외부인사 출입금지’라고 적힌 종이를 문에 붙이고 다녔다.
  
  나는 감옥에 갇힌 제자의 변호사였다. 어느새 모두 괴물이 되어 있었다. 구속된 제자와 그의 가족도 증오의 악령에게 잡혀 세상을 모두 미워하고 의심하고 있었다. 증오의 악령은 집단화되고 있었다. 그 명문여자대학의 한 단체는 내게 이런 경고장을 보냈다.
  
  ‘조국해방 오십팔년을 맞아 변호사에게 경고한다. 고용된 양심으로 자본주의의 첨병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인간에 대한 성찰이나 도덕과 윤리가 없는 천민자본주의와 사상으로 포장을 한 뒤틀린 증오가 부딪쳐 퍼런 불을 뿜어내고 있는 세상의 단면을 본 사건이었다. 지식만 가득 차 있다고 교수가 아니었다. 가지고 있는 걸 철없이 자랑하면 무수한 적을 만든다. 시기와 질투는 수채의 독초 같은 증오의 사상으로 번지고 있었다. 반(反)지성이 왜 지성을 누르는 사회가 됐는지 그 원인을 생각해 보게 된 사건이었다.
[ 2021-08-20, 22:1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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