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목록을 손에 쥐고 죽은 노인
"내가 검사 뼈다귀를 타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어"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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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측정 모니터의 녹색빛 속에서>
  
  사십대 중반에 일찍 세상을 떠난 고교 동기가 있었다. 우리들 인생의 초봄 무렵인 고등학교 삼학년 시절 그 친구는 선생님의 질문마다 손을 척척 들고 정답을 얘기했었다. 칠판에 적힌 어려운 수학 문제도 앞에 나가 능숙하게 답을 적어냈다. 부럽기도 하고 은근히 시기심도 일었다. 그는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대기업에 들어가 기획조정실에서 정열을 쏟아 일했다. 그는 대기업에서 임원이 되면서 사십대를 맞이했다.
  
  어느 날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허리가 시큼해지면서 바로 낫지를 않았다. 담이 들은 걸로 생각하고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몸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 것 같았다. 그 한 달 전에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모든 게 정상이었다. 침을 맞고 하루가 지났는데도 허리의 깊은 곳에서 묵지룩한 둔통이 배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정형외과로 가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보았다. 별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도 아픈 허리는 낫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는 며칠 후 종합병원을 찾아갔다. 종합병원의 의사는 정밀검사 결과를 보면서 폐암 말기라는 진단을 했다. 암이 뼈까지 전이되어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가 입원한 병실 침대에서 옆에 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나 지금 죽어가고 있는 거지?”
  그의 얼굴에는 어두운 절망의 그림자가 가득했다.
  “이렇게 되고 생각해 보니까 여태까지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이 모두 무의미한 것 같아. 애들한테도 미안해.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의식인 것 같았다. 그 얼마 후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는 그의 부인과 전화통화를 해서 그의 죽음을 안 후 생각에 잠겼다. 그의 인생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회사에서 일만 하고 살아왔다. 그는 무엇이었을까. 사무실이고 책상이고 서랍함이었고 부장이었을까.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게 허무해지는 것 같았다.
  
  검사로 이름을 날리던 고교 선배가 있었다. 호방한 성격에 주변 사람이나 후배들을 잘 보살펴 주기도 했다. 어느 날 그는 담도암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건강을 자신해 왔던 그에게는 날벼락이었다. 영리한 그는 최신기법의 항암치료를 받고 미국에서 새로 개발됐다는 약을 구입해서 먹었다. 그래도 그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말라 들어갔다. 어느 날 수액이 빠진 바짝 마른 나무 등걸 같은 그를 만났다. 그의 몸은 입던 바지의 반밖에 차지 않는 것 같았다.그가 후회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검사로 출세해 보겠다고 참 발버둥을 많이 쳤지. 신문에 한 줄 이름을 내려고 밤을 새워서 수사를 하고 말이야. 윗사람한테는 머슴같이 굽신거리고. 막상 죽게 되니까 그까짓 세상에서의 자리가 다 뭐라고. 내가 검사 뼈다귀를 타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어. 그냥 가족이 지글지글 노릇하게 구워지는 고기를 앞에 놓고 즐겁게 떠드는 게 세상 사는 낙일 것 같은데 말이야.”
  
  그는 살아서 지옥 같은 고통을 겪는 것 같았다. 담당의사가 그의 병실을 들어가면 신음같이 죽여달라고 사정을 했다. 화장장의 불가마 앞에서 그를 마지막으로 전송했었다.
  
  인간은 정말 자기에게 중요한 걸 잡지 않고 엉뚱한 걸 추구하다가 허망하게 죽어버리는 것 같았다. 세 명의 부자 노인이 죽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려서 철공소 직원을 하면서 돈을 악착같이 벌어 부자가 된 분이 있었다. 벌기만 했지 써 본 적이 없는 분 같았다. 그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병실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도 은행통장과 돈을 매트리스 밑에 두었다. 돈을 줄 일이 생기면 호흡이 가쁜 중에서도 직접 돈을 세서 주었다. 그리고는 죽는지도 모르고 죽었다.
  
  또 다른 노인은 곡괭이 하나를 들고 서울로 올라와 속칭 노가다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나중에 그는 부자가 됐다. 죽음의 천사가 어느 날 암이라는 내용이 적힌 초청장을 들고 왔다. 노인은 자기가 사두었던 땅들의 목록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 노인은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 부동산 목록이 적힌 종이를 손에 꼭 쥐고 세상을 떠났다.
  
  죽기 직전에 뭔가를 알아챈 노인이 있었다. 부두 노동자로 출발해서 재산을 일군 노인이었다. 폐섬유증에 걸려 죽음을 앞둔 그는 이런 마음을 표현했다.
  
  “내가 번 돈을 다 마당에 쌓아놓고 불태워 버리든가 헬기에 싣고 가서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어.”
  
  그의 솔직한 심경일 것 같았다. 그는 음식점에서 남의 식탁 위의 소주병을 슬쩍 가져다가 거기 남은 술을 먹는 구두쇠였다. 수백억의 현찰이 은행에 있어도 지점장이 선물하는 켄터키 치킨을 처음 먹어보고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켄터키 치킨을 수염이 허연 영감 닭고기라고 표현했었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반면교사로 여기면서 나는 더러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생명을 감지하는 기계의 녹색빛과 쉭쉭거리는 산소호흡기의 희미한 소리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마지막에 어떤 깨달음을 얻을까. 먹고 살 수만 있으면 세상에서 지위나 돈보다 다른 것을 추구했어야 한다고 후회하지 않을까. 추구했어야 할 다른 건 뭘까. 사랑이 넘치는 기억이 아닐까. 사랑하는 순간이야말로 살아있다고 느끼고 그 기억이야말로 진정한 부(富)가 아닐까.
  
  죽음을 앞둔 한 부자는 이런 얘기를 했다. 가족 간의 사랑을 소중히 하라. 배우자를 사랑하라. 친구들을 사랑하라. 너 자신에게 잘 대해 줘라. 타인에게 잘 대해줘라. 죽음의 신의 숨결이 다가왔을 때 생각하는 걸 지금 못할 이유는 뭘까.
  
  
  
  
[ 2021-09-06, 22:0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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