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위 시절의 객기(客氣)
세상에서 가장 센 사람은 계급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 결백한 사람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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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십대 중반 법무장교 시절 최전방 철책선 부대로 가라는 육군본부의 명령을 받았다. 전방부대에서 나를 맞이한 사단장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수은주가 영하 이십도 아래로 내려가는 이곳의 철책선 안은 남과 북의 군대가 직접 대치하는 가장 위험한 장소지. 장교나 사병들이 가장 고생하는 곳이기도 하고. 법무장교지만 그 안에 들어가 직접 순찰을 돌고 병사들을 만나보게. 그게 지휘관으로서 나의 첫 번째 명령이네.”
  
  눈 덮인 철원들판은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끝이 없어 보이는 하얀 평원 같았다. 그 시절만 해도 그곳은 소리없이 적의 목을 잘라간다는 말이 도는 섬찟한 공포의 지역이었다. 적군의 초소가 바로 오륙백 미터 앞이었다. 그들이 움직이는 게 그대로 다 보였다. 순찰을 돌다가 자칫 잘못하면 경계를 넘어갈 수도 있고 적에게 잡힐 수도 있었다. 나는 순찰을 돌 때면 권총의 탄창에 실탄을 한 발 한 발 장전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혹시 잡히는 경우 내 스스로 목숨을 끊자고. 그렇게 전방의 장교 생활을 시작했다. 어느 날 결제를 받으러 간 자리에서 사단장은 내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엄 대위, 이 군대조직이라는 게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여기 근무하면서 연대장 대대장 참모들이 서로 진급하기 위해 경쟁하면서 모략하고 다투고 헐뜯는 행태들을 잘 관찰해 봐라. 그런 생리를 파악해 두면 사회에 나가서도 좋은 경험이 될 거다. 그리고 지금은 나아졌지만 내가 육군 대위로 중대장을 할 때는 정말 기가 막힌 일들을 많이 겪었다. 중대원이 백 명이 넘는 인원인데 톱하고 못 그리고 망치만 주면서 알아서 막사를 지으라는 거야. 중간에서 군수물자를 다 도둑질해 먹고 말단의 부대에는 그렇게 지시를 하는 거야. 산에 가서 나무도 막 잘라오고 바라크도 훔쳐오고 해서 막사를 지었었지. 속칭 쌍팔년도는 그렇게 살았었어.”
  
  나는 사단장의 말을 듣고 관할지역 부대들의 군수품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 무렵도 고급장교의 비리가 많은 것 같았다. 연대장중의 한 명이 부대원이 먹을 쌀을 빼돌리고 사병들의 부식인 닭고기까지 팔아서 돈으로 챙긴 사실을 발견했다. 산더미 같이 쌓인 예비용 휘발유드럼통들도 속은 다 빈 걸 알아챘다. 그곳도 일반주유소에 팔아먹은 것이다. 그런 걸 감시해야 할 헌병이나 보안부대도 부패했다. 뇌물을 받고 군수품 횡령에 눈을 감은 것이다. 군수품을 대량 횡령한 연대장은 장군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보신에는 귀신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육군본부 장군들과 줄을 댄 그를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다.
  
  사단장조차 직속 연대장인 그를 건드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군수품의 부정은 조직적이고 구조적이었다. 군수품을 횡령하는 그 연대장은 가족마저 부패한 것 같았다. 내 앞에 근무했던 법무장교는 한번은 그 연대장의 공관을 간 적이 있었다고 했다. 연대장의 부인이 다리를 뻗고 바나나를 먹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깔보는 눈빛으로 보는데 심한 모멸감을 느꼈었다고 내게 고백했다. 그 부인의 눈은 남편보다 낮은 대위 계급장만 보였던 것 같다.
  
  그런 부패한 인물은 대한민국의 장군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계급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비리가 구조적인 조직사회에서 그 두꺼운 성벽을 어떻게 허물까 고민이었다. 전에 읽었던 ‘리빠똥 장군’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그 소설 속에서 법무장교 대위는 부패한 군대 내부의 비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모습이었다. 단정하게 군복을 입은 반듯한 성격의 주인공이 부패한 리빠똥 장군 앞에서 용기 있게 그 잘못을 지적하고 법에 따라 처리해 가는 모습이었다. 힘있는 상대방의 협박에도 폭력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정의에는 계급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 연대장의 군수품 횡령 내역을 샅샅이 밝힌 챠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사단 전체 지휘관들이 모인 때 사단장 앞에서 그 사실을 공개하면서 관련자 전원을 법적으로 처리하겠다고 했다.
  
  순간 모두가 얼어붙었다. 관행으로 묵인되던 일이 갑자기 공론화 된 것이다. 사단장은 회의가 끝난 후 나를 따로 불러 그렇게 공식화 해 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난감해 했다. 장교 선후배로서 그들의 오랜 인연이 얽혀있을 것이다. 또 사단장과 연대장의 관계도 운명적일 수도 있었다. 그 관계에 매이지 않기 위해 나는 전 지휘관 회의에서 공론화해 버린 것이다.
  
  사단장은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했다. 나는 사단장이 휴가를 간 사이에 군수품인 쌀과 고기를 팔아먹은 장교와 하사관들을 구속해서 군사재판에 넘겼다. 그리고 책임자인 연대장의 처벌을 요구했다. 그는 자신과 절친한 육군본부의 장군을 통해 내게 선처를 부탁했다. 장군이 하급장교에게 사정하는 비굴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들의 청탁을 단호히 거절했다.
  
  법적처리를 끝낸 후 그들에게서 온 보복은 엄청났다. 그들은 나의 군 생활뿐 아니라 일생을 파멸시키려고 하는 것 같았다. 옳은 일을 하고 벌을 받아야 한다면 달게 받을 각오였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 하나님은 나를 보호해 주셨다. 세상에서 가장 센 사람은 계급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 결백한 사람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인생 칠십 고개에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힘들었지만 그런 대로 비겁하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 2021-09-12, 23: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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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 날개   2021-09-14 오후 7:49
최강욱이 부대내 운영비와 공금을 싹슬이 해서 착복했다는 신일순 육군대장을 구속해버린 무용담과 비슷하네요.
  정답과오답   2021-09-13 오전 10:48
우와 감탄이 나옵니다
역시 엄상익님 하는 말ㅇ 저절로 나옵니다
이즈음도 선생님 같은 분들이 보여야 하는대
전혀 구경조차 어려워 지는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을 보게 해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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