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려죽일 용기'보다 '맞아죽을 각오'가 더 강하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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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십년대의 태권도장>
  
  손녀와 손자가 태권도 학원을 다닌다. 요즈음의 태권도 학원은 세련된 로고의 간판과 친절한 사범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을 귀한 고객 다루듯 하는 느낌이다. 손녀와 손자가 태권도장을 다니는 걸 보니까 오래된 세월 저쪽의 검은교복을 입고 도장을 다니는 까까머리 소년이었던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중학교에 입학하고나서였다. 어머니는 내가 뚱뚱하고 물러터졌다면서 삼촌을 시켜 나를 유도도장에 보냈었다. 따로 사범에게 부탁해서 하루에 이십여 번을 패대기치라고 부탁까지 했다. 그렇게 지금도 종로이가에 있는 와이엠씨에이 유도 도장을 몇 달을 다녔었다.
  
  중학교 일학년 겨울이 다가올 무렵이었다. 학교에서 나오다 보면 조계사 건너편 뒷골목에 ‘청도관’이라는 태권도장이 있었다. 그때는 당수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해가 어스름할 무렵 그 앞을 지나치다 호기심에 도장 안을 구경하게 됐다. 하얀 도복을 입은 사람들이 공중에 뛰어올라 긴 다리로 이단 옆차기를 하는 동작이 놀랍고 신비스러웠다. 도복을 입은 빼빼 마른 사람이 매 같은 날카로운 눈으로 상대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둘이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순간 몸을 옆으로 비틀면서 한발 앞으로 성큼 나가면서 다른 다리로 상대방의 옆구리를 길게 밀어 붙였다. 그 기세에 상대방이 도장의 열린 문 쪽으로 나가떨어지는 모습이었다. 강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에 매료됐다.
  
  그해 겨울 나는 광화문 뒷골목에 있는 도장에 들어갔다. 막상 가서 보니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싸움을 주업으로 하는 건달들이 와서 신체를 단련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지금으로 치면 일진의 아이들 같은 주먹들이 싸움의 기술을 익히기 위해 오기도 했다. 그 외에 구두닦이들도 있었고 당구장에서 카운터를 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모두들 스포츠가 아니라 싸움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온 것 같았다.
  
  나는 운동신경이 둔했다. 그 도장으로 나보다 네 살 위쯤 되는 공업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있었다. 사나운 인상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교복을 입고 도장에 들어서는 나만 보면 눈에서 파란 증오의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가장 밑바닥급인 하얀띠였고 공고에 다닌다는 그 아이는 유단자가 가까운 빨간띠였다. 그에게 잘못하거나 건방을 떨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 아이는 내게 항상 적의(敵意)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적대적인 눈빛을 뿜어내며 내게 말했다.
  
  “너하고 자유대련을 하게 되면 꼭 이빨을 두 대 부러뜨려 줄 테니까 각오해.”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자유대련이라는 게 당시는 말만 그렇지 험한 사람들에게는 싸움이었다. 감정싸움이 되고 싸우다가 쭉 뻗어버리는 경우도 흔했다. 나는 미련했다. 도장을 그만둘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이빨이 부러질 걱정이 앞섰다. 열심히 운동을 해서 불쌍한 나의 이빨을 살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수은주가 영하 십사도를 밑도는 냉장고 안 같은 도장에서 다섯 시간 동안 샌드백을 차고 또 찼다. 몸이 둔해도 하고 또 하면 조금은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나의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십대 건달들이 “야 임마 그런 노력이면 넌 뭐든지 하겠다”라고 말하면서 인정을 해 주기도 했다. 건달들은 교실의 빈 공간에서 싸우는 요령을 내게 말해주기도 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 같았다. 광화문쪽 당구장에서 일한다는 싸움을 잘하는 아이와 자유대련을 하게 됐다. 싸움귀신이라는 그 아이는 나를 도장의 벽 쪽에 몰아넣고 옆차기로 갈비뼈 쪽을 질렀다. 그 자리에서 나가 떨어져서 거품을 물었다. 일주일 동안 숨만 쉬면 가슴이 결려서 누워있었다. 또 다른 주먹을 잘 쓰는 짱구라는 아이가 있었다. 근육질에 권투까지 했다고 했다. 변두리 고등학교에서 싸움으로 날린다고 했다. 그 아이의 주먹에 맞아 기절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도장을 그만둘 생각을 못했다. 그냥 버텨 나가야 하는 운명으로만 알았다. 어느 날 드디어 내 이빨을 두 개 뽑아주겠다는 공업고등학교 아이와 붙는 시간이 됐다. 그 아이가 품은 증오는 내가 아니라 내 교복과 뱃지가 알리는 명문(名門)에 대한 것이었던 걸 희미하게 느꼈다.
  
  이미 기절도 하고 종류별로 다 당해 봐서 그런지 겁이 덜 났다. 안 맞으려고 하니까 고민이지 이빨을 뽑히겠다고 각오를 하니까 무섭지가 않았다. 나는 대련이 시작되자마자 즉각 공격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빨간 띠의 그 공고에 다니는 아이가 도망을 다니고 있었다. 그날 나는 이빨이 뽑히지도 않았다. 그 시절 도장에서 귀한 진리를 얻었다. 때려죽일 용기보다 맞아 죽을 각오가 더 강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로부터 삼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구치소에서 최고의 전국구 건달 두목으로 알려진 사람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는 인기드라마의 조폭 두목의 모델일 정도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갑자기 내가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하나님에게 같이 죽게 해 주십시오 기도하고 나서 당신과 맞짱을 뜨면 어떨까? 둘이 그렇게 싸움을 한다면.”
  “그러면 당연히 내가 지죠. 조폭 두목도 이거 눈치하고 기싸움으로 하는 거니까.”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디자인이 된 도복을 입고 다니는 손녀와 손자는 태권도장에서 어떤 걸 배웠을까 궁금했다.
[ 2021-09-14, 10:2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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