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殮)장이 유씨
“대책 없이 죽는 사람도 많아요. 영정사진 한 장 없는 사람도 있었어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내가 어렸던 시절은 동네 어귀에 ‘장의사’란 검은 글씨로 쓴 우울한 간판을 단 가게들이 있었다. 가게 바닥에는 죽은 사람이 들어가는 관이 쌓여있었다. 가게의 구석에는 작은 방이 있었고 거기 염쟁이들이 혼자 묵고 있었다. 밤중에 사람들이 죽으면 그에게 연락해서 장사를 지내는 절차가 진행되는 것이다.
  
  한밤중에 채널을 돌리다가 ‘종이꽃’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화면에 저승사자같은 영감의 얼굴이 확대되어 나오고 있었다. 골 깊은 주름이 얼굴에 가득했다. 심통맞게 다문 것 같은 그의 입은 양쪽 밑으로 축 처졌다. 고독하고 칙칙한 염쟁이 영감의 회색빛 일상이 나오고 있었다.
  
  어느 날 영감이 동네 반(半) 지하방에 엄마와 둘이 사는 유치원에 다니는 계집아이가 골목길에 혼자 앉아있는 걸 봤다. 아이의 엄마는 파출부 일을 하러 나갔다. 낮이면 혼자 있던 아이가 쓰레기 더미 사이에 죽어있는 길고양이를 보고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
  
  영감은 버려진 박스에 죽은 길고양이를 담아 아이와 함께 자기의 장의사 가게로 갔다. 영감이 죽은 길고양이를 구석의 받침대에 눕히고 물이 묻은 종이로 뭉쳐있는 털들을 깨끗이 닦아주었다. 옆에서 아이가 말없이 보고 있었다. 영감은 깨끗한 하얀 종이로 죽은 고양이의 머리와 사는 동안 골목길을 힘겹게 다녔을 고양이의 네 발을 종이로 싸 주었다. 잠시 후 동네 야산비탈의 방금 삽으로 파낸 붉은 흙이 옆에 보이는 작은 구덩이 앞에 영감과 아이가 서 있었다. 상자에 담긴 죽은 고양이가 잠자듯 눈을 감고 있었다. 영감이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고양이가 천국에 가길 바라니 아니면 지옥에 가길 바라니?”
  영감의 표정은 무뚝뚝하다.
  
  “천국이요”
  계집아이가 영감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그러면 기도하거라”
  계집아이가 커다란 눈을 감고 기도한다. 아이의 간절한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비치고 있다.
  
  며칠 후 영감은 우연히 알게 된 남자의 염을 해 주기도 한다. 노숙자들에게 공짜 국수를 주던 착한 남자였다. 그가 갑자기 죽었다. 노숙자들이 슬퍼하지만 죽은 그 남자의 장례를 치러줄 능력은 없었다. 영감은 그 죽은 남자의 시신을 자신의 가게로 데려가 대 위에 올려놓고 발부터 깨끗이 닦아준다. 거친 세상을 힘겹게 걸어온 굳은 살이 박혀있다. 영감은 그가 마지막으로 입고 갈 옷을 입혀준다. 영감이 죽은 사람을 자기의 봉고차 뒤에 싣고 화장장으로 간다. 운전대를 잡은 영감의 주름진 얼굴이 화면 가득 나타났다. 첫화면에 비쳤던 음산한 얼굴이 아니었다. 골 깊은 주름 사이로 그윽함과 따뜻함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작은 영화 한 편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졌었다.
  
  한 텔레비전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진짜 염쟁이가 경험을 얘기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 염쟁이는 최규하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이 죽었을 때 그 시신을 처리한 사람이었다. 그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법정 스님을 비롯해 성직자들과 삼천 명 이상의 시신을 처리했다는 사람이었다. 사회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직업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예전에는 ‘염쟁이’라고 해서 약간 하대하는 분위기였는데 요즈음은 장례지도사라고 한다면서요?”
  “저를 보고 사람들이 ‘염장이 유씨’라고 불렀어요. 장인이라는 소리니까 그렇게 부르셔도 괜찮아요.”
  
  “어떻게 그 직업을 택하게 되셨어요?”
  “서른여섯 살 때 사업에 실패하고 방황했어요. 그때 장의사를 하는 친구에게 갔는데 죽은 사람 염을 하면서 나에게 일을 시키더라구요. 그래서 죽은 시신의 팔을 닦으라고 하면 팔을 닦고 다리를 닦으라고 하면 다리를 닦았죠. 그렇게 시작이 된 거죠. 운명이죠.”
  
  “죽은 사람을 대하다 보면 신비한 경험은 없으셨어요?”
  “한번은 관 옆에서 삼십 분 가량 기다렸어요. 그때 영정사진 속에 있는 죽은 사람을 바라보면서 좋은 데 가시라고 기도해줬어요. 그런데 다음날 밤에 자려고 하는데 뭐가 나타난 거예요. 잠을 잘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죽은 사람들의 세계에 대해 잘 아는 분에게 가서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죽은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 상관하지 말고 네가 하는 염이나 잘하라고 하더라구요. 죽은 사람은 다 생전에 자기가 한 대로 자기 길을 가는 거라고 하면서 말이죠.”
  
  “장례식을 많이 주관하셨던데 옆에서 지켜본 죽음의 절차들이 어떻습니까?”
  “제가 탤런트 여운계씨하고 친했어요. 그런데 그 분이 살았을 때 자기가 죽으면 장례식장에 여러 종류의 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흰색이나 노란색의 국화만 있는 게 쓸쓸하고 안 좋아 보인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분이 돌아가셨을 때 염을 해 드렸는데 여러 색깔의 꽃으로 장례식장을 화사하게 만들어드렸죠.”
  
  나도 탤런트인 여운계씨가 살았을 때 몇 시간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좋은 배역을 맡지 못했다고 했다. 탤런트가 되고 주위 사람들에게 텔레비전에 나온다고 선전을 했는데 처음 돌아온 역할은 교통사고로 죽은 시신 역할이었다고 했다. 가마니를 덮고 발만 삐죽이 내놓은 시신 노릇을 하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었다고 했다. 그러던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은 가마니가 아니라 화사한 꽃들이 웃음으로 전송한 것 같았다.
  
  “인생의 마지막 무대인 장례식에서 느낀 점이 있으면 말해주시죠.”
  “대책 없이 죽는 사람도 많아요. 영정사진 한 장 없는 사람도 있었어요. 감동적인 장례식도 있었죠. 살아계실 때 주위에 많이 베푸셨다는 분이 있어요. 노래를 한다는 사람이 찾아와서 자기는 삼십 년 동안 그분한테 얻어먹기만 했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러면서 보답으로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감동이더라구요. 조문 대신에 판소리나 시낭송을 하기도 하고 대금을 불어 주는 경우도 있었어요. 참 좋더라구요.”
  
  그는 대통령들의 시신이 된 마지막 모습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대신 주변 사람들에게 베푼 사람의 죽음 곁에 흘러든 정에 대해 얘기했다. 어쩌면 살아서의 권세나 직위보다 베푼 사랑들이 더 귀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2021-09-16, 21:0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