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돈이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돈 아닙니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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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존심>
  
  많은 신도를 거느린 목사가 있었다.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는 옆에 부하같이 굽실대는 사람들을 대동하고 있었다. 몇 마디를 나누다가 그가 이런 소리를 했다.
  
  “나는 몇백억을 수시로 다루고 있어요. 엄 변호사가 나와 친하게 되면 좋을 거요. 도움도 되고.”
  
  그가 성직자가 아니라 탐욕 스런 사업가의 느낌이 들었다. 나의 시선이 가죽 의자에 앉아있는 그의 튀어나온 배를 보고 있었다. 그는 기독교의 지도자로 제법 이름이 나 있었다. 그의 배 속에 뭐가 들어있을지 궁금했다.
  
  “그 돈이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돈 아닙니까?”
  내가 되물었다. 순간 그의 얼굴에 비웃음과 경멸이 얼핏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성전에 있는 장사꾼이라는 생각이었다.
  
  전체 기독교를 대표한다는 단체의 회장이 나의 법률사무실로 찾아온 적이 있다. 그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함께 왔다. 그의 비서도 목사고 승용차 기사도 목사였다. 목사 사회도 그 안에서 수없이 많은 계급이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게 말을 했다.
  
  “엄 변호사가 나와 관계를 맺고 친해지면 여러 면으로 좋을 거에요.”
  
  그는 자신을 과시하며 넌지시 나에게 낚시미끼를 던지고 있었다. 현실에서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변호사들마다 황금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 노다지를 발견하면 노예적 굴종을 서슴지 않기도 했다. 그게 세상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내 입에서 엉뚱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는 성직자들이 하나님의 영(靈)을 받아 성화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머리를 숙이고 존중합니다. 만약 성령이 없다면 그 인간은 별 볼일 없는 초라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지적 능력이 있는 엘리트가 신학대에 몰리는 것 같지 않습니다. 자기 손으로 땀흘리는 노동을 해서 밥을 얻는 사람이 아니면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혹독한 말들이 입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인간적으로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됐다. 그런데도 속에 있는 어떤 존재가 내 입을 그렇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와 친한 재벌 회장이 있다. 그는 내게 평소에도 호의적이었다. 그가 집안의 큰 사건을 맡기면서 내게 말했다.
  
  “변호사비는 우리 집안에서 알아서 줄께. 엄 변호사는 아뭇소리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
  
  명문 재벌인 그 집안에서 뒷골목 개인 변호사인 나에게 사건을 맡긴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영광이었다. 거기다 돈은 알아서 주겠다는 말 속에 그 집안의 넉넉한 마음과 배려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싫었다. 그걸 수락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이 노예가 될 것 같았다. 노예는 진실과 세상을 똑바로 볼 수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나는 정확히 땀 흘려 일한 만큼만 돈을 받겠습니다. 더 주지도 말고 노동한 만큼만 줘요. 나는 지식노동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해야만 나는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변두리 초등학교에서 명문이라고 불리던 경기중학에 합격했을 때였다. 회사의 말단직원이었던 아버지는 정말 좋아했다. 직원의 아들이 입학한 사실을 알고 사장은 나의 등록금을 대주겠다고 제의했다. 아버지는 그걸 거절했다. 작은 월급이지만 아들은 스스로 번 돈으로 키우고 싶은 아버지의 자존심 같았다.
  
  중학교 삼학년 때 부잣집 아이에게 내가 폭행을 당해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그 집에서 합의금 조로 돈을 보내왔다. 가난했던 어머니는 돈이 절실해도 그걸 받지 않았다. 아들의 피값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돌아가는 그들의 등에 대고 말했다. 내 아들을 당신들보다 더 훌륭하게 키우겠다고.
  
  개결한 자존심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오기 쉽지가 않았다. 그럴 때면 나는 인생의 나침반으로 성경 속 인물들을 본다. 바울은 스스로 일을 해서 먹고 살았다. 전도를 한다고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도움을 받으려고 비굴하게 굴면 자기가 전하는 진리도 비천하게 될 수 있다는 자존심인 것 같았다. 그는 자존심을 지켰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죽는 쪽을 택하려고 했다. 나는 변호사를 하면서 자존심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자기들 때문에 먹고 산다는 판검사가 있었다. 나는 나의 작은 지식노동으로 그 땀의 댓가로 밥을 먹으려고 애써왔다.
  
  그래도 잘 살아왔다. 내면에 있는 그 분이 평안을 주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항상 감사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 2021-10-07, 05:0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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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파   2021-10-09 오후 10:32
엄 변호사님, 목회자의 입장에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목회자의 타락은 첫째 본인 책임이지만,
두 번째는 성도들의 책임도 많습니다.
변호사님과 같은 성도들이 많아 지는 것이 진정한 교회의 부흥입니다.

사람들은 들어야할 설교를 듣지 않고
듣고 싶은 설교를 듣기 위해 상기와 같은 교회와 설교자들을 찾아다닙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복도 누리고, 이 땅에서 즐거움과 호의호식을 누리고 싶은 것입니다.
기복신앙, 번영신학, 삼박자 오중축복은 어떤 면에 있어서 이단보다 더 무섭습니다.

이단들은 언젠가 깨우치고 나올 수도 있지만 잘못된 복음과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들은 더 이상 회개하지도,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부모님을 두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RedBuster   2021-10-07 오전 8:51
"많은 신도를 거느린 목사가 있었다. " 라는 엄 변호사의 표현엔 쪼까 거부감이 생깁니다. '거느린' 이란 단어를 '섬기는' 으로 바꾸든지 아니면 '목사' 라는 말 대신 '교주' 라고 하시든지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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