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부인들이 좋은 남편 만든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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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아내들>
  
  인터뷰로 유명한 최보식 기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갯마을 차차차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뜨는 남자 탤런트에 대해 사귀던 여자가 낙태 사실을 폭로하면서 비난하는데 결혼에 대해 한번 글을 써 보시는 게 어때요?”
  
  그와 우리의 결혼문제, 성 문제의 이중성과 위선에 대해 몇마디 나누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까 남자 측이 사과하면서 빨리 진화가 된 것 같았다. 잘 모르겠지만 이미 마음에 금이 간 그들이 결혼을 한다고 앞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주례를 여러 번 섰었다. 밝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서 있는 신랑과 신부를 보면서 그들이 오랫동안 손잡고 함께 걸어갈 길을 떠올리기도 했다. 결혼이란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변호사로 삼십여 년 동안 일하면서 이혼 법정에도 참 많이 나갔다. 부부가 법정에서 서로 증오하며 상대방을 할퀴고 상처내는 순간 그들의 표정은 지옥에서 허우적거리는 악마였다.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독이 법정의 공중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좋은 남편도 보고 나쁜 남편도 봤다. 또 좋은 아내도 보고 나쁜 아내도 봤다. 좋은 아내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고위 공직에 있던 선배가 있었다. 그 부인은 좋은 집안에서 자라 명문 여고와 대학을 나온 엘리트인데도 참 겸손했다. 그리고 소박했다. 그녀는 고관이나 재벌부인들의 사교모임에 가지 않았다. 그 부인은 남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대신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보충해 주기 위해 재래시장에 가서 좌판을 놓고 야채를 파는 할머니나 팥죽 장사 아주머니 같은 서민들의 얘기를 듣고 와 남편에게 사회 밑바닥의 어려움을 얘기해 주었다. 남편을 존경하며 희생하는 모습이었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존중과 사랑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병원장을 하는 친구가 있다. 명의로 알려진 그는 쉴새 없이 수술을 했다. 그의 아내는 병원의 행정업무를 하고 겨울에도 입원환자들의 옷들을 빠느라고 손이 부르트곤 했다. 사모님으로 편히 지내지 않고 왜 직접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었다. 남편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수술을 하면서 고생을 하는데 그 고통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었다.
  
  명문 여고와 대학을 나온 그녀는 어떤 모임에서도 자신을 가장 낮은 자리에 놓았다. 옷도 재래시장에서 파는 싸구려만 입었다. 오랜 시간 그녀를 지켜봤다. 위선적인 겸손이나 소박이 아니라 내면에서 나오는 진정한 겸손이었다. 그녀는 남편을 하늘처럼 떠받들었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잘 맺어진 좋은 부부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좋은 부인들이 좋은 남편을 만드는 것 같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의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남편의 양말을 깁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녀는 대통령 관저의 커튼까지 돈이 든다면서 일제강점기에 설치한 것을 그대로 두고 생활했다. 최규하 대통령의 부인 홍기 여사가 다림질을 하는 사진을 신문기사 한 귀퉁이에서 본 기억이 있다. 영부인으로 드러나지 않고 그늘에 숨어 남편을 돕는 순박한 모습이었다. 영부인으로 높은 연단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앞서가는 모범적인 양의 모습 같아 좋아 보였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니까 돕는 배필을 짓겠다고 했다. 좋은 가정을 보면 부부 사이에 희생이 있고 존경이 있다. 진정한 사랑은 존경이 있는 곳에서 싹이 텄다. 결혼 자체가 희생이기도 하다. 그때부터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산다. 결혼의 행복은 그런 희생의 행복이아닐까.
  
  나는 결혼을 한 후 지금까지 아내의 도움 위에서 살아왔다. 넥타이 하나 양말 하나의 선택까지도 모두 아내를 의지했다. 자식의 교육도 집안 살림도 모두 아내의 몫이었다. 오갈 곳 없는 전과자를 집안으로 끌어들였을 때도 밥을 해대고 국수를 삶아 댄 것은 아내였다. 아내는 법정의 방청석에 앉아 지켜보면서 변론을 하는 나의 태도를 교정해 주기도 했다. 아내는 거푸집이었고 나는 그 안에 녹아든 주물이었다. 아내는 기나긴 인생길을 함께 걸어온 동지였고 좋은 친구이기도 했다. 아내가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결혼은 순간적인 감정과 계산에 따라 맺어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준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게 아닐까.
  
[ 2021-10-23, 17:0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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