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를 낳은 엄마는 왜 아이를 버렸을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아이가 없는 여성들>
  
  친구 부부와 만나 점심을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그 부부는 결혼한 지 삼십 년이 가까워 오는데도 아이가 없었다. 나이 육십인 친구의 아내는 육체적으로 이미 출산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밥을 먹는 동안 그녀는 계속 아들 얘기를 하면서 자랑을 하는 것이다. 어떤 옷을 입히고 아들이 어떤 재롱을 피는지 계속 자랑이었다. 그 부부를 못 보던 사이에 애를 낳았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제 아들을 한번 보여드릴까요?”
  
  그녀가 내 표정을 의식했는지 스마트폰 속에 들어있는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선글래스를 쓰고 잘 차려입은 개가 한 마리 보였다. 요즈음 애완견들은 이미 동물이 아니었다. 그 집의 아들이고 딸이고 가족이었다.
  
  “아, 아드님이셨군요. 잘 생겼습니다.”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사는 칠십대 중반의 친척 누님이 있다. 젊어서부터 자식이 없었다. 얼마 전 그 누님의 집을 찾아갔을 때였다. 누님은 개 세 마리를 자식 삼아 돌보고 있었다. 누님과 얘기를 하던 중 옆에 있던 개가 심하게 떨고 있는 모습을 봤다. 심하게 겁을 먹은 듯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기죽은 눈초리로 나를 훔쳐 보면서 오줌까지 쌌다.
  
  “네가 자기를 어디로 데리고 가는 걸로 오해하고 겁을 먹어 떨고 있나 보다.”
  
  친척 누님의 말이었다. 조지 오웰이 쓴 동물농장에서 돼지가 인간이 되듯 개들도 사람의 아들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아이가 없는 여성들이 애완견을 입양해서 자식같이 기르고 있는 세상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육십년대 태어났던 불쌍한 아기들의 모습이 오랜 기억 저쪽에서 떠올랐다. 어린 시절 한밤중에 문 앞에서 어린아이가 우는 소리가 종종 나곤 했다. 누군가 아이를 낳아 버리고 가버린 것이다. 아이들은 막 태어나고 먹을 것은 없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찬바람이 부는 스산한 십이월 초 어스름이 내리는 저녁 무렵이었다. 골목길 끝에 있는 우리 집 녹슨 철문 앞에 몇 달 된 아기가 차디찬 철문을 잡고 서 있었다. 손이 빨갛게 얼어있었다. 아기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를 보고 ‘살려주세요’ 하고 절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아기를 데리고 들어가 아랫목에 눕히고 어머니와 함께 우유를 먹인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기들을 여러 번 맞아들였다. 우리 집도 키울 형편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그 아기들을 자식이 없는 이웃의 여성들에게 안고 가서 건네주는 걸 보기도 했었다. 그 아이들이 잘 자라서 키워준 어머니를 끔찍이 모시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큰 것 같았다. 자녀가 없는 여성들이 부모 없이 슬퍼하는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같은 건 아니었을까.
  
  남의 집에서 입양아로 큰 고교 동창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학교 도서관 옆자리에서 내게 생택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소개한 문학적 천재성을 가진 소년이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유명일간지의 기자가 되어 평생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정년퇴직을 했다. 어느날 저녁 빈대떡에 막걸리잔을 앞에 놓고 대화를 할 때였다. 그가 불쑥 자기의 어린 시절을 털어놓았다.
  
  “내가 다섯 살 때였어. 엄마가 손을 잡고 나를 재래시장으로 데리고 갔다가 버리고 가버렸지. 어린 나는 갑자기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거 같았어. 너무 우니까 바로 그 앞에 있던 시장의 옷가게 아저씨가 나를 자기 가게로 데리고 간 거야. 그 날부터 그 아저씨 밑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컸지. 그래도 그 집 아저씨가 초등학교를 보내줬어.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어. 그 집 아저씨는 ‘이놈 봐라?’ 하면서 변두리 중학교를 보내줬어. 중학교에 갔는데 공부하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 수학도 재미있고 영어는 책을 다 암기했어. 전교 일등을 하니까 선생님이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쳐 보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그 당시 제일 좋다는 경기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된 거야. 고등학교 때 양아버지 재단 일을 하지 않고 공부만 할 수 있었다면 난 서울대 수석도 할 자신이 있었어.”
  
  그는 천재였다. 그를 낳은 엄마가 왜 버렸을까는 두고두고 의문이었다. 자녀가 없는 여성들이 슬퍼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하나님이 주는 착하고 우수한 아이를 선물로 받아 사랑으로 키우라고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봤다.
  
  
[ 2021-10-24, 17: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