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진땀 뺀 북한의 대학입학 시험
담화교수는 몇가지 수학 공식을 묻고 내가 막힘이 없자, 갑자기 내 주먹의 부피를 계산해 내라는 문제를 냈다

이민복(대북풍선단장)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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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는 수능시험으로 대학진입이 결정되는 것으로 안다.
  북한에서는 대학뽄트를 받기 위한 시험을 친 후 순위에 들어야
  대학배정을 받고 해당대학에 가서 입학시험을 또 치러야 한다.
  입학은 대학에 가서 입학시험을 치러야 결정되는 것이다.
  사실 이것도 다가 아니다. 이를 끝말에서 설명하련다.
  
  대학입학시험은 필기와 담화(면담)가 있다.
  김책공대 필기시험에서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물리시험에서 반도체란 무엇인가 였다.
  평시 그렇게 많이 보았던 것이 시험에 나와서
  책처럼 구체적으로 써냈던 것이다. 운이 너무 좋았다.
  
  대학입학은 필기시험보다 담화가 결정적이다.
  필기점수가 좋아도 담화에서 불합격이면 거의 끝난다.
  필기가 단면이라면 담화는 전면이기 때문이다.
  어떤 수험생은 담화에서 쩔쩔매다 엉엉 울면서 나오기도 했다.
  나 역시 담화에서 정말 진땀을 뺐다.
  
  담화교수는 너 얼마나 잘 아나 두고보자는 식으로 까다로웠다.
  내가 들어간 반도체공학부는 김책공대에서 핵물리공학부와
  쌍수를 이루는 핵심학부이기에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북한은 수학을 대수, 기하 과목으로 분리하여 공부하였다.
  대수, 기하 공식문제를 집중하여 묻다가 막힘이 없자
  그 공식들로 계산하라는 뜻처럼 갑자기 너의 주먹 부피를 계산해내라는 것이다.
  대수의 공식과 기하의 부피 공식으로는 굴곡 많은 주먹 부피를
  계산해낼 수 없었다. 한다는 것은 목측밖에 없어 보였다.
  정확한 계산 공식이 떠오르지 않았고 진땀이 흘렀다.
  여기서 손들엇! 해야 하는 절망 끝에 신의 한 수가 나를 살렸다.
  
  그 신의 한 수는 교과서에는 없는 것이었다.
  신의 한 수는 도서관에서 본 책 중에 있었다.
  나는 그러기에 자녀들을 학원보다 도서관에 보낸다.
  도서관이 빌게이츠를 낳은 것처럼 나 역시 지금의 내가 된 것은
  학교나 대학공부보다 도서관이었다.
  
  교과서나 시험문제하고는 먼 곳에 있었지만
  도서관에서 책 본 중에 –고대 수학자가 금 왕관제조 진실을
  목욕탕에서 고안해냈다는 것이 떠오른 것이다.
  가득 채운 물컵에 주먹을 담그면 그 부피만큼 흘러나온 물 부피가
  주먹 부피라는 정확한 대답을 듣고도 그 교수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다음 질문으로 이어간다.
  
  이번에는 대학시험하고는 너무나 먼 엉뚱한 질문이다.
  전 세계에 사회주의 나라가 몇 개냐는 것이다.
  당시 17살 나이 학생들에게는 너무나 어른 같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
  13개국인데 유고가 수정주의로서 제외하면 12개라고
  구체적 설명까지 곁들여서 단숨에 대답하였다.
  부친께 배당된 당기관지 <로동신문>을 매일같이 본 덕분이었다.
  
  그 다음에도 너무나 지나친 철학적인 질문을 하신다.
  물질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눈에 보이는 것들이 물질입니다.라고
  대답했더라면 불합격이었다.
  이것도 순풍에 돗 단 배 가듯 거침없이 대답하였다.
  물질이란 - 의식 밖에 존재하는 객관적 실체이다.
  이것은 철학에서 정의된 것인데
  이는 부친의 공산대학 철학 교제(주체철학)를 본 덕분이었다.
  
  그제서야 담화 교수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신다.
  외우는 지식이 시험고수로 평가되던 시기
  교과서보다 책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로
  또 지식보다 창의성을 더 중요시한 진정한 교육자였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대학입학 최종결정은 대학이 아니라 당이다.
  중앙대학은 중앙당에서 지방대학은 도당에서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학생과 교수가 날고뛰어도 안 되는 영역이다.
  나는 그 영역에 들어가지 못하는 대상이었다.
  부친이 남조선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생 최대의 불행이었지만
  전 인생으로 볼 때는 그게 행복이 되었다.
  이런 불가항력적인 북한을 탈북하면서였다.
  이게 수천대 1 정도로 들어가는 중앙대학 정도가 아니라
  2천만 북한사람 중의 하나꼴로 맞는 로또 인생이었다.
[ 2021-11-20, 11: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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