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세상
"재벌회장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중의 하나가 수시로 사람에게 싫증을 내는 것 같았어"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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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서운 세상이다. 법률사무소를 하다 보면 더러 악마가 찾아온다. 서로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하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했다. 원수가 되어 모략까지 했다. 수사를 받던 한 변호사 부인을 선배 변호사와 공동으로 변론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의 불화가 생기자 한밤중에 남편의 사무실로 들어가 분풀이를 했다. 모든 사건기록을 차에 싣고 가서 불태워버렸다. 그 기록들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증거가 있었다. 그녀에 대한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판사 출신인 선배 변호사는 법원에서 같이 근무하던 영장담당 판사에게 사정해서 구속이 되지 않도록 했다. 그녀는 감옥에 가지 않게 됐다면서 고마워했다.
  
  이상했다. 변호사 직업상의 육감이라고 할까. 고급미용실에서 머리와 화장을 하고 명품 옷을 입고 와도 그녀의 주위에서는 뱀 같은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녀가 미소를 지어도 원인 모를 독이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선배 변호사에게 재판이 열리지 않은 초기 단계니까 그 사건을 맡지 말자고 했다. 선배 변호사도 동의했다. 내가 그녀를 불러 사정상 변론을 맡기 곤란하니까 다른 변호사를 알아보시라고 권했다. 그녀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도중에 변호를 그만두시면 재판장에게 제가 나쁜 인상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미 제출한 변호사선임계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그대로 놔두시면 안 될까요. 부탁입니다. 제 남편이 판사를 할 때 옆에서 봐서 압니다. 변호사가 도중에 그만두는 피고인은 분명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구요.”
  
  그 정도는 들어주어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그녀의 기억이 희미해진 일년 쯤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법원에서 소장이 날아왔다. 그녀가 나를 상대로 위자료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청구원인 부분을 보았다. 변호사로 사건을 맡고나서 단 한 번도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는 게 사유였다. 참 무서운 세상이었다.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드골은 사람을 많이 대할수록 개와 더 친해 진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며칠 후 사건을 같이 한 선배 변호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여자가 와서 협박을 하더라구. 자기 구속영장을 기각해 달라고 내가 후배 판사에게 청탁을 했으니까 사건을 봐준 그 판사를 상대로 진정을 하겠다고 말이야. 전관예우 아니냐는 거야. 자기가 덕을 봤는데 어떻게 그걸 약점으로 잡고 공갈을 칠 수 있어? 돈을 내놓으라는 거야. 정말 보기 드문 악마야. 돈을 뜯겼어. 나를 도와준 후배 판사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잖아.”
  
  그녀의 악마성은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에게도 발휘됐다. 그녀는 자는 남편을 칼로 찔렀다. 그 남편은 피를 흘리면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목숨은 잃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과 섞여사는 무서운 세상이다. 그런 비틀린 여성의 무서움은 차라리 원색적이다. 곳곳에 분야마다 그런 무서움들은 형태를 달리해서 존재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재벌그룹의 비서실에서 일을 했던 친구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비서를 하면서 회장을 수행하다 보면 여러 재벌회장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 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중의 하나가 수시로 사람에게 싫증을 내는 것 같았어. 네가 최고다 하고 막 추켜세우고 일을 시키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목을 잘라 버리는 거야. 그리고 다시는 찾지 않아. 그러면 그 사람은 일생이 허망하게 되는 거지.”
  
  그 말을 들으면서 동화 속의 토끼 인형이 떠올랐다. 아이가 가지고 놀다 싫증이 나서 던져버린 토끼 인형은 쓰레기통 속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대학을 가고 스펙을 쌓아도 토끼인형같이 될 수 있는 무서운 세상이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나는 마지막에는 사장까지 올라갔지만 피가 마르는 것 같았어. 한 달에 한 번 사장단 회의가 있는데 실적이 나쁘면 거기서 바로 잘리는 거야. 회장의 신임이라는 것도 뜬구름 같은 것이더라구. 믿을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지. 그런 걸 생각하면 이 세상이 무섭고 사는 게 쓸쓸하지. 그런 게 인간 세상인데 그렇지 않다고 착각을 했었지. 재벌들이나 정치인들 보면 이권 때문에 증오의 이빨을 드러내고 서로 끝간 데 없이 싸우잖아? 무서운 세상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게 기적이지.”
  
  무서운 세상에서도 싱글벙글 웃으며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삼십대 중반 공직에 있을 때였다. 옆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작달막한 대머리 남자가 있었다. 공무원들 역시 출세하기 위해 상상하기 힘든 굴종과 인내의 시간을 견디다 버려지는 게 운명이었다. 그런 속에서 항상 편안한 얼굴의 옆 사무실 남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나님 빽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걱정도 하지 않아요. 하나님을 모르면 이 무서운 세상을 살아가기가 힘들지. 이런 견딜 수 없는 세상에 태어나서 사랑의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은 불행의 극치니까. 그러니 엄 변호사도 한번 예수를 믿어보는 게 어때요?”
  
  그는 내게 다가온 전도자였다. 그리고 살아 보니까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칠십대 중반의 노인이 된 그는 지금도 지방도시의 허름한 집 방에서 혼자 살면서 싱글벙글 웃으며 산다.
  
[ 2021-11-20, 23:1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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