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픽션을 능가한다
애통하고 분통한 그 사연을 들고 나는 내일도 과거사위원회,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로 나간다. 벌써 5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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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은 픽션을 능가한다.
  있을 수 없는 일,
  있어서도 안 되는 일들이
  현실엔 부지기수, 넘쳐나기도 한다.
  그런 일이 만일 영화나 소설이라면
  사람들은 너무 심한 플롯이라며
  '현실성이 없다'고 외면할
  그런 일들이 우리 곁에는 너무 많다.
  
  정식 군인도 아니었다.
  그래도 전쟁이 나서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소년은
  자진해서 국군을 따라다니며
  열심히 수송작업을 도왔다.
  그러다 중공군의 포로가 됐다.
  중공군은 흑룡강성까지 끌고가
  이런저런 사상교육을 시키다가
  북한군한테 넘겨버렸다.
  
  북한은 1958년 소년을 반당분자,
  남조선 간첩이라는 명목으로
  수천 명의 인민 앞에서
  인민재판을 연 뒤 그를 고문하고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지옥같았다.
  
  그러다 48년 만에 죽기를 각오하고
  천신만고 끝에 탈북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를
  참전용사로 인정도 안 하고
  국군포로 인정도 안 했다.
  
  그는 누구인가?
  1950년 대한민국엔 의사가 귀했다.
  그는 서울을 미처 빠져나가지
  못 한 상태에서 인민군한테 발각돼
  끌려가 인민군을 치료했다.
  그러던 중 의사들과 함께
  인민군 몇 명을 감금했다가 붙들렸다.
  그 후 그 병원으로 쓰던 성당은
  학살현장으로 변해버렸다.
  무고한 생명이 스러져갔다.
  
  당연히 의사들도 학살됐으리라
  생각했지만 시신은 없었다.
  납북된 것.
  그러나 납북 증거가 없다고
  정부는 학살도, 납북도 인정 안 한다.
  경찰관들이 6.25 때
  공산당원한테 맞아 죽거나
  총살되었음은 공지의 사실.
  제적등본과 학적부에도
  A씨는 인민군에 의해 학살됐다고
  기록되어 있음에도
  이 정권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애통하고 분통한 그 사연을 들고
  나는 내일도 과거사위원회,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로 나간다.
  벌써 5번째.
  무고한 이들.
  억울한 이들의 한을 풀어주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나는 신발끈 다시 매고
  과거사위원회의 뻔뻔하고도 높고
  두터운 문을 맨손으로 두드리러
  나간다, 과거사위원회로!
[ 2021-11-23, 22:2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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