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가 너무 고소해"
배아픔은 지독한 정신적 전염병이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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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를 하다가 잠시 공무원의 사회로 들어갔을 때다. 그 사회의 분위기에 질식할 것 같았다. 정해진 근무시간에 자기가 맡은 일을 하는 게 아니었다. 인사권을 쥔 상관의 눈치를 보면서 한없이 비굴해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계속 야근이 진행될 때였다. 어떤 서기관은 상급자의 양말을 빨아주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기 전인 그때 서기관이면 군수나 지방 시장을 하는 계급이었다. 계급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 윗계급들도 진급에 인생 모든 걸 거는 노예같았다. 사회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한 재벌그룹에 입사해 계열사 사장을 지냈던 친척은 회사생활을 이렇게 회고했다.
  
  “회사에 입사한 순간 나는 오너 집안의 현대판 노예지. 내 생각이 남아 있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 까라면 까야지 그게 위법이라고 다른 소리를 했다가는 바로 목이 잘리지. 그럭저럭 사장까지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섬뜩한 순간이 많았어.”
  
  예전 해외여행을 할 때 만났던 한 선배의 얘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는 건설회사의 임원으로 사우디 공사현장에서 책임자로 일했다. 그는 자기가 당한 걸 이렇게 말했었다.
  
  “해외공사를 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하지. 본사에서 회장이 와서 사우디의 귀족에게 뇌물을 바쳤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그걸 문제 삼은 거야. 본사에서는 내가 현지 책임자로 되어 있으니까 감옥에 가라고 하더라구. 그래서 사우디의 그 더운 감옥에서 몇 년을 썩었지. 징역을 다 살고 본사에 돌아왔는데도 아무도 날 챙겨주는 사람이 없더라구.”
  
  현대판 노예의 삶이 그런지 모른다. 그러면 귀족은 누구일까. 겉으로는 귀족이 없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존재하는 것 같았다. 한 법정에서 재벌 회장은 사원은 자신의 머슴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걸 들었다. 나는 평생을 유린당한 한 여성 의뢰인을 위해 그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었다. 그 회장은 여성을 자신의 성적 노리개라고 진술했다. 그 회장은 인생 말년에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제목의 회고록을 내기도 했다. 대표적인 천박한 귀족 의식이었다.
  
  그들 말고도 곳곳에 귀족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넘쳐났다. 국회에는 입법 귀족이 있고 사법부에는 법관 귀족이 있다. 곳곳에 귀족이 평복으로 위장하고 정신에 숨어 있었다. 그들보다 더 비참한 것은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가지는 노예의식과 속에서 불타오르는 증오였다. 조선 말 동학당의 농민들이 죽창을 들고 일어났다. 그들은 양반집을 털고 관가와 싸웠다. 기록 속에서 그들의 대담장면을 읽다가 이런 부분을 보았었다.
  
  “양반들을 모두 잡아 죽이면 우리가 그 기와집에 앉아 머슴을 부리면서 양반이 될 수 있는 거지?”
  
  그런 의식은 정신적 유전자가 되어 지금도 없는 사람들의 피 속에 일부 들어있는 것 같다. 노예의 본능은 파괴이기도 하다. 얼마 전 아는 변호사 한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로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내가 종부세를 내지 않으니까 그런지 종부세가 무겁게 부과되는 걸 보니까 너무 고소해. 깨소금 맛이야. 앞으로 토지소유권도 폐지해야 하고 자본가의 이익도 제한해야 해. 그래야 진짜 사회개혁이 되는 거야.”
  
  그는 사회의 일반적인 사람들의 의식을 대변하는 느낌이었다. 대통령 선거철이다. 후보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진열장 속의 상품같이 여러 제도를 제시한다.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흐를까? 자유의 확장, 행복의 증진, 공정을 향해 갈 것 같다. 역사는 그 대세가 결코 거꾸로 흐르지는 않는다. 권력이 재벌의 영향력을 떠나 서민 쪽으로 분산될 것이다. 차별도 감소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은 대통령이나 제도가 아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먼저 자신부터 고쳐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코로나보다 더한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배고픔은 육체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배아픔은 더 지독한 정신적 전염병이다. 좌파 우파 등 파당을 만들어 목소리를 높이는 내면에는 그런 병균들이 숨어있는 것 같다. 최종의 승패는 선인과 악인 사이에 결정될 것이지 무산자와 유산자 계급 투쟁으로 결판낼 것이 아니다. 사랑과 진리에 기초를 두지 않은 개혁은 껍데기 개혁이다. 참된 혁명도 아니다.
  
  
  
[ 2022-01-10, 08: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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