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에의 길 ―ⅩⅢ, 북한작가 반디의 '고발'(3)
FREEDOM 교양영어(56)

朴承用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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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control of the production of wealth is the control of human life itself.
  ―Hilaire Belloc.
  
  Most planners who have seriously considered the practical aspects of their task have little doubt that a directed economy must be run on more or less dictatorial lines. That the complex system of interrelated activities, if it is to be consciously directed at all, must be directed by a single staff of experts, and that ultimate responsibility and power must rest in the hands of a commander-in-chief, whose actions must not be fettered by democratic procedure, is too obvious a consequence of underlying ideas of central planning not to command fairly general assent. The consolation our planners offer us is that this authoritarian direction will apply "only" to economic matters. One of the most prominent American planners, Mr. Stuart Chase, assures us, for instance, that in a planned society "political democracy can remain if it confines itself to all but economic matter". Such assurances are usually accompanied by the suggestion that by giving up freedom in what are, or ought to be, the less important aspects of our lives, we shall obtain greater freedom in the pursuit of higher values. On this ground people who abhor the idea of a political dictatorship often clamour for a dictator in the economic field.
  〈Friedrich Hayek, The Road to Serfdom〉
  
  “재화생산을 통제하는 것은 인간의 삶 자체를 통제하는 것이다.”―Hilaire Belloc
  
  그들의 과업의 실질적 양상을 진지하게 고려해본 대부분의 계획자는 지도(통제)경제는 다소의 독재적 노선에 따라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데에 거의 의심을 두지 않는다. 상호 관련 된 활동으로 구성된 복잡한 시스템은 조금이라도 의식적으로 지도를 받으려면 하나의 전문가 참모진에 의해서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궁극적 책임과 권력은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 행동을 구속받지 않는 최고사령관의 손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중앙계획(통제)의 기저가 되는 사상의 너무나 명백한 결과이기 때문에 국민 전체의 동의를 요구할 수 있다. 계획자들이 우리게 제공하는 위안은 이 독재적 지도가 경제 문제에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미국의 가장 유명한 계획가들 중의 하나인 Stuart Chase는 계획사회에서 “계획이 경제문제에만 한정된다면 정치적 자유는 존속할 수 있다.”라고 우리를 확신시킨다. 그러한 보장은 우리 생활의 보다 덜 중요하거나 덜 중요해야 되는 분야에서 자유를 포기함에 의해서 보다 더 높은 가치의 추구에서 보다 더 큰 자유를 획득하게 될 것이라는 제안에 의해서 보통 동반된다. 이를 근거로 해서 정치적 독재사상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종종 경제영역에서 독재자를 갈망하게 된다.
  
  * 해설
  
  이중사고
  〈고발〉의 이중사고는 대단히 구체적이고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다. 상반되는 감정이나 생각을 동시에 자동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自感(자감)훈련이라는 것을 군부대에서 실연하였던 경험을 아버지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처절하기도 하고 코믹하다. 훈련은 바늘에 찔리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동시에 기쁘게 웃어야 하는 내용이다. 아버지는 평소에 체제의 모순과 수령 숭배에 불만을 느끼고 고민하고 있는 보위부 간부이다.
  
  〈“에또…제목은 뭐랄까? 응! 〈아프다 하하하〉,〈간지럽다 엉엉〉에 우선 제1장 〈아프다 하하하〉!
  
  나는 터지는 웃음소리를 등 뒤에 들으며 닫힌 두 막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몸뚱이는 보이지 않게 얼굴만 빠끔히 내밀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즉흥극이 어떻게 그처럼 거침새 없이 흘러나왔던지 나 자신도 지금 다 알 수가 없습니다.
  
  “에- 여러분!”
  나는 열에 들떠 외쳐댔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보이지 않는 내 뒤에서는 한 줌이나 되는 바늘묶음으로 알몸뚱이인 내 잔등에다 살짝살짝 바늘침을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출가의 지령은 ‘웃어!’입니다. 자 누구든 연출가가 되어주시오.”
  
  “웃어!" 하고 누군가가 객석에서 소리쳤습니다. 그 소리와 함께 나는 입을 짝 벌림과 동시에 이맛살을 한껏 찌푸렸습니다. 이어 “으으, 흐흐, 하하”하며 괴상한 표정과 목소리로 울음이 점차 웃음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재주껏 그려냈습니다.
  
  “자, 그럼 이번엔…, 그렇지! 이 자감 연습극의 23학년생인 강꺽대 동무가 재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호호, 23학생이라는 건 또 뭐예요?”
  구석에서 어느 여동무가 소리쳤습니다.
  
  “그건 에 또…,아, 아 그런건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며 나는 연출을 시작하였습니다.
  
  “제2장의 제목은 〈간지럽다 엉엉〉. 자! 보들보들한 손이 꼼지락 꼼지락 겨드랑이 사이로 기어들기 시작한다. 꼼지락 꼼지락 꼼지락...”
  “핫하하하하. 으으…, 어어 엉…>(계속)
  
  
[ 2022-01-10, 09:1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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