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과시키면 반란군, 막으면 관군(官軍)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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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 숨 쉬는 자>
  
  천구백칠십구년 이십대 중반의 나는 국방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육군 중위로 수도군단에 근무하고 있었다. 친구들도 비슷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날 갑자기 임금같이 생각해 왔던 대통령이 죽고 계엄령이 선포됐다. 비상이 걸리고 부대에서 밤낮으로 대기해야 했다. 어느 날 저녁 친한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한강다리를 군인들이 통제하는데 무슨 일이냐고. 사령부 내 작전장교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하는 이런 얘기를 들었다.
  
  “공수부대가 우리 작전지역을 지나가려고 하는데 통과시키면 반란군이 되고 막으면 관군이 되어 한바탕 전투를 벌여야 하는데 지금 명령을 내릴 장군이 안 계시니 어떻게 하지.”
  
  사령관인 장군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었다. 그날 밤 군단 예하 사단의 병력이 여의도 방송국으로 출동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비로소 나는 졸지에 반란군이 되었구나 하고 알아챘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든 것 같았다. 노태우 장군이 사단장인 구사단의 소대장이었던 친구는 한밤중에 중앙청으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했다. 중앙청에 배치된 그는 상황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묻고 나서야 자기가 가장 선봉에선 반란군 소대장이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그 친구는 빈민운동을 하던 야성이 강한 친구였다. 알오티씨 장교로 입대에 의무복무를 하던 중이었다.
  
  보안사령부에서 전두환 장군의 당번병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중고등학교, 대학 시절을 같이 흉허물이나 비밀이 없는 친구였다. 그는 남대문 시장에 전두환 장군이 좋아하는 외제 은단을 사러 가곤 했다. 한번은 그가 내게 당번병의 힘든 상황을 털어놓기도 했다. 장군이 사복을 입으려고 양복을 가져오라고 명령을 할 때 힘들었다고 했다. 양복장 안에는 여러 벌의 양복이 있는데 뭘 가져오라고 구체적으로 지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반란이 일어나던 날 밤에 대해 그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그날 밤 보안사령부 대령이 전국의 장군 명단이 담긴 수첩을 들고 자기 옆에 서 있으라고 하더라구. 뭘 하나 봤더니 전국의 부대에 전화를 걸어 지휘하는 장군들에게 어느 편인지 선택하라고 하더라구. 중간은 없다고 하면서 말이야. 그리고 나에게는 우리편과 적편을 수첩에다 체크하라고 했어. 밤새 그 작업을 했어.”
  
  대한민국의 장군들이 한밤중에 그렇게 편가르기가 된 것 같았다. 공수부대가 그날 밤 육군본부와 공수부대를 점령했다. 다음 날 아침 육군본부에서 전날 당직장교를 한 훈련 동기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어보았다.
  
  “공수부대 하사관 다섯 명이 막사 앞에서 문을 두드리더라구. 그래서 열어줬더니 나보고 ‘손드세요’ 하더라구. 뭔지 모르지만 일단 손을 들었지. 그런데 궁금해서 ‘무슨 일이냐?’라고 물었어. 그랬더니 공수부대 아이들이 ‘우리도 몰라요’라고 대답하더라구.”
  
  얼마 후 또 다른 장교 동기생은 내게 조용히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육군본부의 벙커를 지키는 대위가 있었어. 공수부대가 다가오니까 지휘본부인 벙커를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었대. 그래서 밤새 기관총으로 반란군을 막았대. 그런데 자기 혼자서만 싸우고 있고 장군들이 다 도망치고 없더래. 반란군이 군권을 잡고 자기는 저항한 관군이니 이제 자기 앞날은 진급도 안되고 캄캄할 것 같다고 그러더라구.”
  
  그런 상황은 전두환 장군과 노태우 장군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었다. 영원한 역사 앞에서 단임제 권력은 순간이었다. 민주화의 아이콘이었던 김대중 의원과 김영삼 의원이 대통령이 되어 새역사 만들기를 했다.
  
  세월이 강물같이 흘렀다. 이십대 청년장교였던 나는 머리에 하얗게 눈을 덮어쓰고 칠십 고개에 서 있다. 김대중 대통령도 김영삼 대통령도, 얼마 전에는 한 달 사이에 노태우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이 모두 저세상으로 갔다. 그분들의 늙고 병들고 지친 모습을 직접 보기도 하고 신문 사진으로 보기도 했다.
  
  역사를 만드는 이는 정치가와 군인이라고들 말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인간 세상의 표면에 물결을 일으킨 정도가 아닐까. 사람들은 그들을 거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코로 숨 쉬는 자’라고 하신다. 물결 저 아래의 심연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예언자들에게 나타내 보여주신 거룩한 뜻은 아닐까.
  
[ 2022-01-13, 13: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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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 날개   2022-01-13 오후 7:19
공수부대가 그날 밤 육군본부와 공수부대를 점령했다
>>>>공수부대가 그날 밤 육군본부와 특전사령부를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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