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란 것과 얻은 것
그는 자기의 콤플렉스와 열등의식을 만회하기 위해 꼭 의과대학을 세우고 최고의 병원을 만들어야 했을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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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란 것과 얻은 것>
  
  나는 법정에서 한 집안의 몰락을 보고 있었다. 병원 이사장인 부인과 그와 싸우던 이사인 시동생들에게 모두 무거운 징역형이 선고됐다. 그리고 그들은 법정구속이 됐다. 법정에 나온 그들의 모습은 초라했다. 가슴에 번호가 달린 홑겹의 누런 죄수복을 입고 겁먹은 표정으로 재판장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기사가 모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수백 명 직원들의 인사를 받던 호기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나를 비웃고 적대적으로 대하던 표정이 없어지고 풀이 죽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병원을 운영하는 법인의 감사로 몇 달 동안 적을 둔 적이 있었다. 그 병원을 설립한 외과의사는 의학적인 실력도 수술 기술도 사업능력도 심지어 부동산을 보는 안목까지도 탁월한 것 같았다. 다만 독선적인 성격 때문에 그가 바라던 모교의 교수로 남지 못한 게 한이 된 것 같았다.
  
  그의 야망은 자신이 큰 병원을 성공시켜 의과대학을 직접 세우는 것이었다. 그는 공단지역의 한 빌딩을 인수해 외과전문의가 이십사 시간 응급실에 대기하는 병원을 표방하고 나섰다. 그의 수술 실력은 최고 수준이었다. 공단에서 다친 노동자들이 그 병원으로 줄을 이어 몰려들었다. 환자가 많은 곳으로 의사들은 모이고 그 병원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그는 수술복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시내에 나가 일을 볼 정도로 열심이었다. 그의 카리스마와 사업적 안목으로 어느새 그의 병원은 수백 명의 의료진과 직원들을 거느린 지역의 대형병원으로 자리잡았다.
  
  넓게 자리잡은 병원부지는 주위에 전철역과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수백 배로 그 값이 뛰었다. 이제 그가 바라던 의과대학의 설립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그가 수술을 하던 도중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면서 절개 부위가 보이지 않았다. 몸에 이상이 온 것이다. 그와 수술을 같이하던 후배의사가 말했다.
  
  “선배는 의사이면서도 평생 자기 건강에는 무심했는데 한번 건강진단을 해 봅시다.”
  
  그의 마지막 완성을 가로막는 복병이 나타났다. 당뇨의 합병증으로 시력이 떨어졌고 더 충격적인 것은 폐암 말기였다.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게 의사들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부인했다. 죽을 수가 없었다. 그의 꿈을 완성시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물거품이 터지듯 버티던 그가 허망하게 죽음 저쪽으로 끌려갔다.
  
  그가 죽자 그가 하던 의료법인의 이사장 자리를 놓고 그의 부인과 동생들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자금의 횡령이 있고 식자재나 의료 기계 공사계약을 가장한 배임행위들이 있었다. 편을 갈라 병원의 직원들을 선동했고 시위가 일어나고 고소전이 펼쳐졌다. 나는 구색 맞추기로 몇 달 들어온 감사지만 그들에게 바로 말해 줄 의무가 있었다. 이사장과 이사인 그들에게 말했다.
  
  “폭풍이 일고 있는 바다로 구멍난 거대한 배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로 들어오는 물을 막을 생각은 하지 않고 침몰하는 배 안에서 서로 죽기살기로 싸우고들 계십니다. 위험이 다가오면 싸우다가도 서로 힘을 합쳐 그 위기를 벗어나야 하는 것 아닐까요?”
  
  잘나가는 병원이었다. 경영만 합리화하면 거뜬하게 항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족인 그들은 서로를 죽이기 바빴다. 조그만 상대방의 비리도 수사당국에 고소하고 자기 이익을 챙기기 바빴다. 그들에게는 죽는다는 의식이 없었다. 욕심 때문이었다. 거대한 여객선이 암초에 부딪쳐 침몰하듯이 병원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은 죄인이 되어 법의 심판을 받고 있었다.
  
  별 게 아니었다. 옆에서 그냥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너무나 명확한 결과를 보지 못하는 게 이상했다. 욕심이 눈을 가렸는지 아니면 자기가 하면 될 것 같아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 병원 설립자의 영혼은 그 재판광경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바란다는 것과 얻는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고 그는 후회하지 않을까.
  
  그는 자기의 콤플렉스와 열등의식을 만회하기 위해 꼭 의과대학을 세우고 최고의 병원을 만들어야 했을까. 그가 시골의 개인의원에서 환자들을 돌볼 때처럼 사랑이 충만한 성실한 의사로 남았으면 그건 실패였을까. 바라는 것과 실제가 다른 것은 인생의 이율배반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모순이 있다. 인생은 완전을 찾기는 하지만 그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 아닐까.
  
[ 2022-05-07, 23:0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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