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에서 만난 김일성대학 교수와의 思想 논쟁
“남조선에 갈 일이 종종 있어요. 그때 사회주의 사상이 담긴 책들 좀 구해 줄래요? 아이들 전자 영어사전을 사주시면 더 감사할 거고."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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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이 뭡네까?>
  
  북경에서 북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내가 만난 사람은 김일성대학 교수로 자본주의 경제를 연구한다고 했다. 서로간 껍데기를 빨리 벗고 진솔한 대화를 하고 싶었다.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기로 결심하고 레스토랑에서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내가 먼저 자신을 밝혔다.
  
  “나는 기독교 사상을 가진 사람입니다. 당신은 철저한 사회주의자 아닌가요? 남쪽에서는 흔히들 좌파라고 하죠.”
  
  사상 얘기는 금기시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걸 정면 돌파하기로 한 것이다. 정치인끼리 만난 것도 아니고 관료가 정부를 대표해서 협상을 하는 자리도 아니었다. 남쪽의 기독교 신앙을 가진 한 개인 변호사와 북쪽의 대학교수와의 만남이었다. 나는 김일성대학 안에 있는 육이오전쟁 때 그들이 가지고 간 자료가 필요해서 만났을 뿐이었다. 영혼과 영혼의 소통이 없으면 그 만남은 아무런 의미도 울림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북에서 온 사람은 순간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조선 인민공화국에는 좌파가 없어요.”
  그의 공식적인 딱딱한 대답이었다. 이번에는 그가 물었다.
  
  “제 아버지는 인민군 장성 출신으로 혁명영웅이죠. 아버지 덕으로 저는 평양에서 공부하고 넓은 아파트를 받아 살고 있어요. 해외여행도 여러 번 했죠. 중국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까지 가 봤어요. 엄 변호사는 어떻게 삽니까? 재산은 얼마나 됩니까? 해외여행은 해 봤습니까?”
  그는 출신성분과 아파트와 여행경험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냈다.
  
  “저는 아버지가 북한에서 내려온 가난한 회사원의 아들이었죠. 공부해서 변호사가 됐고 강남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어요. 해외여행을 많이 했어요. 전 세계를 구경했죠. 크루즈로 세계의 바다도 돌았어요. 재산도 있는 편입니다.”
  순간 그가 기가죽은 표정이었다. 다시 그가 말했다.
  
  “그렇게 잘 살면 공직에 있으면서 돈을 빼돌리거나 도둑질을 한 건 아닙네까?”
  “무슨 실례의 말씀을? 변호사는 개인 비즈니스일 뿐이에요. 땀을 흘려 열심히 일해서 정직한 돈을 벌었어요. 사회주의에서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잘사는지 모르겠네? 북한에서 살았으니까 사회주의 사상은 어려서부터 배우셨겠네? 그게 어떤 거죠? 저도 나름대로 운동권의 이념서적을 읽어 봤어요.”
  
  “저 사회주의 사상 잘 몰라요. 제가 어릴 때 소련과 사이가 나빴어요. 그때 마르크스 레닌에 관한 책들이 도서관에서 다 없어져 버렸죠. 중국과 사이가 나쁠 때도 있었어요. 그때 모택동 사상이나 중국 사회주의에 관한 책자가 모두 사라졌어요. 그 탓에 사회주의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오히려 엄 변호사가 사상적으로는 더 많이 알 것 같아요. 나한테 사회주의와 기독교 사상에 대해 설명을 좀 해봐요.”
  
  “그러면 내가 아는 상식을 말해 볼게요. 내 말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전제해 둡니다. 다양한 의견의 공존이 성숙된 세상의 모습이니까. 기독교사상과 사회주의는 한 뿌리에서 난 두 줄기라고 봅니다. 예수는 부자에게 ‘네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어요. 초대교회를 보면 재산의 공동소유가 이루어지고 다 함께 지내면서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했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줬죠. 그래서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라고 말하고 있어요. 사회주의와 비슷해 보이지 않나요? 그러나 조금 다른 게 있어요. 부자를 미워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재산을 나누어준 부자에게 하늘에서 보상한다고 했죠. 그런데도 사회주의자들은 기독교인을 원수같이 미워하잖아요?”
  
  “그거야 혁명정신이 부족하니까. 그리고 남조선의 교회들 보세요. 권력에 아부하고 없는 사람 차별하잖아요?”
  
  “그런 현실적인 모순은 북한도 있는 거 아닌가? 공산당원이라면 민중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해야 하는데 오히려 귀족이 된 거 아닌가? 이론만 앵무새같이 말하고 반대의견을 가지면 ‘반동’이라고 하고. 당성과 애국만을 방패막이로 삼아 다른 주의들은 무턱대고 반대한 걸로 알아요. 정권의 세습이 공산주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한 정통공산주의자들을 숙청했잖아요?”
  
  “기독교 사상이 뭡니까?”
  그가 물었다.
  
  “사회주의는 이 세상을 개선하기 위한 주의지만 기독교는 천국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해요. 예수는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있지 않다고 했어요. 사도 바울도 내 나라는 하늘에 있다고 했죠. 그런 점에서 기독교는 사회주의 공화주의 입헌군주정 등 이 세상의 여러 제도나 사상과 다르다는 생각이에요. 기독교는 이 세상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인간들의 영혼을 어두움에서 구출해서 하늘나라로 옮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무슨 그런 신화 같은 비과학적인 말씀을 해요?”
  그가 반박했다.
  
  “그러면 사회주의의 이상은 비현실적인 면이 없나? 한번 봅시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에서 누가 열심히 일하려고 해요? 노동자들과 대중들이 모두 성인입니까? 속성은 오히려 이기주의자들 아닌가요? 혁명으로 사회가 바뀌면 인간들이 모두 성자가 될 거라고 가상한 마르크스가 오히려 신화를 만든 건 아닌가? 혁명에 성공한 레닌도 대중들의 이기심에 무릎을 꿇고 자본주의를 일부 부활했던데? 사회주의가 더 비현실적인 비약이 있어요. 성경을 보면 공동체에서 자기 재산을 챙긴 사람들의 모습을 보이는데 그게 더 솔직한 인간의 내면에 대한 표현이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개개 인간의 영혼이 바뀌어야 사회가 바뀌고 국가가 달라진다는 겁니다. 그걸 반대로 하면 때가 많은 몸뚱이를 그대로 두고 향수 친 옷만 겉에 입히는 꼴이 된다는 생각이예요.”
  
  나는 그에게 두서없이 말해주면서 오히려 내가 깨닫고 있었다.
  
  “아이고 왜 갑자기 이렇게 골치가 아프지?”
  그가 머리를 잡고 아파했다. 나는 청심환을 한 알 꺼내 그에게 주었다. 그는 약을 손에 들고 살피면서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믿고 그냥 드시라고.”
  나의 진심이 약간 그에게 전해진 것 같았다. 말보다 약 한 알에 그의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았다. 그가 잠시 뭔가 생각하는 표정이더니 이런 부탁을 했다.
  
  “내가 북한 대표중의 한 사람으로 남조선에 갈 일이 종종 있어요. 그때 연락을 드리면 사회주의 사상이 담긴 책들 좀 구해 줄래요? 그리고 거기에 우리 아이들이 필요한 전자 영어사전을 사주시면 더 감사할 거고.”
  
  “그 정도야 뭐 당연히. 그리고 내가 두서없이 했던 말들도 틀릴 수 있다는 걸 말해둡니다. 각자 사상과 생각이 다른 걸 인정하는 사회가 열린 사회라고 생각해요. 북한은 북한대로 그냥 가세요. 서로 생각이 달라도 남과 북이 서로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때 만났던 그가 잘 사는지 궁금하다. 사회주의와 기독교 사상에 대한 내 설익은 생각을 얘기했던 게 민망한 느낌이다.
[ 2022-05-09, 04:4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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