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사 뼉다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고작 몇십 년 동안 이 꿈같은 세상에서 약간의 쾌락을 누리다가 마침내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면 정말 허무한 인생이 아닐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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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삶이 전부일까?>
  
  늦은 밤 유튜브를 보는데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던 사람이 말하는 한 마디가 우연히 귓속을 파고 들었다.
  
  “평생을 성직에 계시던 분도 죽음이 닥치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어떤 분은 ‘죽으면 모든 게 끝이지 뒤에 뭐가 있겠어?’라고 그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놀랐다. 죽음 이후의 세상을 알리며 세일즈하던 그는 평생 사기를 친 것일까. 그의 성직은 밥을 먹기 위한 도구였고 겉포장이었을까. 자기 확신이 없는 말을 왜 평생 남에게 해 왔을까.
  
  요즈음의 드라마를 보면 귀신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죽으면 존재가 소멸하지 않고 귀신이 되어 인간들과 공존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소파 옆에 점잖게 앉아 있기도 하고 더러는 다른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 그를 통해 이 세상에서의 삶을 계속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다음부터는 그런 귀신이 되어 몇백 년이고 이 세상 거리를 방황하며 존재를 계속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나와 친하던 고등학교 선배가 있었다. 군대 훈련 때 몇 달 동안 같은 내무반에서 같이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연병장을 뛰고 산을 넘어다니다가 친해졌다. 제대 후 그는 검사가 됐다. 그의 활약은 눈부셨다. 폭력조직을 소탕하고 소매치기 조직을 일망타진했다. 매일 신문 사회면의 톱으로 그의 활동상이 소개됐다.
  
  그는 호탕하게 세상을 즐겼다.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주고 세상 눈치 보지 않고 사랑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검찰총장을 하고 장관이 될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는 예상같이 날아오르지 못했다. 뛰어난 그의 능력과 활동을 시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설친다고 오히려 윗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좌천됐다. 어느 날 그와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였다. 그는 집게로 고기를 집어 빨간 숯불 위의 석쇠에 놓으며 말했다.
  
  “인생이란 게 별 게 아닌 것 같아. 가족이나 좋아하는 친구들과 이렇게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사는 게 즐거운 게 아닐까? 지나고 보니까 짧은 인생인 것 같아. 그리고 죽으면 영원한 무(無)로 돌아갈 텐데 말이야.”
  
  그 얼마 후 그는 사직을 하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 능력이 탁월한 그는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뛰는 것 같았다. 그는 친한 서울시장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광고 선전물이나 빌리는 트럭들의 비용을 혼자 전부 대기도 했다. 그는 검사로 성공하지 못한 보상을 정치에서 받고 싶은 것 같았다.
  
  어느 날 그의 사무실을 들렀던 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예전의 키 크고 덩치가 우람하던 그가 아니었다. 예전에 입던 옷 속에 그는 작은 아이가 되어 들어있었다. 암으로 바짝 말라 있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서울의대 교수로 있는 의사 친구들이 담도암이래. 수술을 하면 완쾌될 수 있다고 그래. 아직 주변에 전이되지 않아서 다행이래. 내가 최고의 의사들을 친구로 두고 있지.”
  
  그는 의과대학 교수의 말에 간절히 매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머리를 빡빡 갂고 모자를 쓰고 다니는 그의 얼굴에서 나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 있었다. 어느 날 내가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형, 나도 죽어보지 않아서 몰라. 그렇지만 이 세상 살아온 몇십 년이 다인지 아니면 그 뒤에 펼쳐지는 또 다른 운명적인 세상이 있는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잖아? 우리의 목적이 고작 몇십 년 동안 이 꿈같은 세상에서 약간의 쾌락을 누리다가 마침내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면 정말 허무한 인생이 아닐까?”
  
  나는 그에게 천국 소망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도 요즈음 그렇게 생각해.”
  
  그가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그역시 말은 안하지만 죽음을 직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말을 계속했다.
  
  “성경을 보면 바울이라는 사람은 이 세상의 삶이 전부고 죽음이 끝이라고 한다면 자기 인생은 정말 쓰레기 같은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더라구. 짧은 인생 그냥 즐기는 게 답이라는 거지. 그런데 그는 그게 아니라는 거야. 이 세상 몇십 년은 앞으로 다가올 영원한 세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짧은 예비기간이라는 거지. 죽음 이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 지금의 삶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 다르다는 거야.”
  
  “무슨 소린지 알겠어. 나도 정말 후회해. 타고나면서부터 검사 뼉다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출세해 보겠다고 엉뚱한 짓을 했었어. 정치판도 그렇고 말이야. 네가 권하는 대로 앞으로 믿을께.”
  
  그 얼마 후 그는 아직은 빠른 나이에 저 세상으로 건너갔다. 나는 그의 육신이 타오르는 화장터 불가마 앞에서 생각했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에 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인생은 차이가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 2022-05-09, 22: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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