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이 정치인
사람마다 광장으로 나와 저마다 한 소리씩 한다.들을 만한 깊이 있는 말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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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성된 정신>
  
  “내가 보낸 동영상 봤어?”
  치과의사인 친구가 전화로 물었다. 부정선거에 대해 그가 녹화한 자료였다. 수학적 확률까지 제시한 나름대로 열심히 만든 파일 같았다. 거의 한 시간 분량을 인내하면서 봤다. 동영상을 만든 그의 열정에 대한 예의였다.
  
  “끝까지 다 봤어. 수고했어.”
  내가 그렇게 격려해 주었다.
  
  “그러면 거리로 나가서 시위에 앞장서 줘.”
  그는 내가 행동에 옮기도록 선동을 하는 것 같았다. 그건 아니었다. 민주주의가 정말 그의 가슴에 스며들어 잘 숙성되어 있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남의 말 한마디 사상서적 한 권 읽고 거리로 나가거나 운동권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나는 에둘러 말하는 방법으로 그의 제의를 거절했다.
  
  “내가 굳이 나가야 할까? 사람마다 세상의 여러 문제에 대응하는 태도가 다른 게 아닐까?”
  “아니야 모두가 거리로 나가서 부정한 이 정권을 뒤엎어야 해. 너 같은 변호사가 앞장서야 해.”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는 네가 먼저 앞장서서 희생해 봐.”
  내가 약간 심사가 뒤틀어져 그렇게 말했다. 정신이 수양되어 있지 않으면 허수아비 같은 세력이 되고 만다.
  
  운동권 출신의 젊은 변호사가 있었다. 그는 전국의 학력고사에서 이등을 한 서울대 출신이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대학에 가서 운동권이 됐죠. 그런데 시위 때 보면 분명 우리가 옳은데도 사람들이 동조를 해 주지 않고 눈빛이 냉랭한 거에요. 저는 시위대에 앞장섰다가 구속이 되고 학교에서 제적을 당했어요. 앞길이 다 막혀 버린 거죠. 병까지 들어 고향에 돌아와 신문 배달을 했어요. 그런 제 모습을 보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너무 좋아했어요. 제가 서울대에 갔을 때 어머니가 너무 기뻐하고 동네에 자랑을 했었는데 그 아주머니들 샘이 났었나 봐요.”
  
  그런 게 내가 본 세상의 한 단면이다. 세상이 온통 정치로 시끄럽다. 전 국민이 정치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적막한 바닷가 노인 마을에 집을 얻어 매일 작은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려 민들레 씨같이 바람에 날려 보낸다.
  
  오후가 되면 청담색 바다 옆 모래사장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글은 마음과 마음이 소통하는 세계인 것 같다. 댓글을 보면서 영혼의 친구가 된 분들이 있다. 이런 댓글을 받은 적도 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해외에서 혼자 살고 있는 청년입니다. 엄 변호사님 블로그에 접속해 매일 같이 글을 읽는 게 이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네요. 날마다 쓰시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닫는 울림이 있어 엄 변호사님 글을 읽는 게 저에게 가장 설레는 하루 일과입니다. 지난 몇 년간 개인적으로 힘든 일, 시련, 방황이 많았는데 수필을 보고 하루하루를 이겨내려는 끈기를 얻은 적이 많았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어렵다지만 과연 엄 변호사님 세대가 겪었던 고난만큼 할까요? 수필에서 표현하시는 지혜와 따뜻한 인생관에 감동되어 저도 조금이나마 일깨워 주심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고자 오늘 처음 댓글을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하루하루가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댓글을 받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었다. 그 이름 모르는 청년의 댓글을 보면서 나는 밤바다에 떠 있는 배에 위로를 주는 녹색 불빛의 작은 무인 등대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마다 사는 방법이 다르다. 시인 바이런은 사회개혁에 앞장을 서고 그리스 독립 운동에 군인으로 직접 참가했다. 시인 워즈워드는 산 속에 은둔해서 시를 썼다. 바이런은 바이런다운 사업을 했고 워즈워드는 워즈워드다운 사업을 했다. 열정의 면에서 워즈워드는 바이런 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대가 어수선하다. 사람마다 광장으로 나와 저마다 한 소리씩 한다. 말이 들끓고 언어의 바다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들을 만한 깊이 있는 말이 거의 없다. 왜 그럴까. 암흑시대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취했던 행동 중의 하나는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전 세상을 바꾼 루터나 칼빈이 그랬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도피하기 위한 은둔이 아니었다. 암석을 파괴하는데도 먼저 중심 깊숙이 구멍을 뚫어 다이너마이크를 넣고 폭파시키듯이 수도원 안에서 세상을 개혁할 정신적 힘을 축적하기 위해서였다. 광장에서 떠드는 사람들을 이끄는 사람들의 내면이 좀 더 익은 된장같이 숙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2022-05-23, 19:4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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