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엄마가 돌아왔어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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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를 슬퍼하는 마음>
  
  한 목사님이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었다. 그는 한 여성신도와의 불륜을 내게 말하면서 전 교인 앞에서 그 사실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했다. 변호사인 나는 그를 말렸다. 다른 더 큰 피해가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그와 상대한 여성의 가정도 있었고 그 목사의 가정이나 교인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을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러 그런 스타일의 사람들이 있었다. 오랫동안 교직에 있던 분이 있다.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학생들도 따르고 교사들 사이에서도 그 강직한 성품이 인정된 분이다. 내가 막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던 무렵 어느 날 그 분이 나를 찾아와서 이런 하소연을 했었다.
  
  “아내가 아이들을 놔두고 집을 나가버렸어요. 내가 혼자서 아이들 밥을 해 먹이고 학교에 데리고 가고 있어요. 벌써 여섯 달째 아내한테서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이제 더 이상 나하고는 살지 않으려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그 선생님이 나의 사무실로 찾아와 말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들르는 동네 작은 식당이 있는데 그 식당을 하는 여자도 딸 하나 데리고 혼자 살고 있어요. 서로 비슷한 처지라 이런저런 사정을 얘기하다 보니 정이 든 것 같아요. 합쳐서 가정을 꾸리기로 했어요.”
  
  나는 그 선생님의 재혼을 마음으로 축하해 주었다. 원래의 부인도 착한 여자였다. 집을 나간 이유가 궁금했다. 처음에는 고집이 센 남편의 마음을 꺾기 위해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흘러가자 그런 생각도 점점 퇴색했다. 이삼 년쯤 흐른 어느 날 그 선생님을 다시 만났다. 그 자리에서 그가 절망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 엄마가 돌아왔어요. 이혼을 하지 않고 다시 살겠다고 그래요. 벌써 다른 여자하고 합쳤는데 이걸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딱한 상황이 됐다. 먼저 전처와 법적으로 이혼절차를 밟고 새로 만난 여자와 결혼을 했어야 하는데 그 정리를 소홀히 한 것이다. 본처는 이혼을 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새로 만난 여자와 그 딸을 쫓아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 사이에 합의가 된 것 같았다. 본처가 새로 만난 여성의 존재를 인정하기로 한 것 같았다. 마음이 넓은 본처가 김치를 담그면 새 여자에게 연락을 해서 가져가라고 하는 삶이 시작됐다. 그들 사이에 형님 동생의 관계가 설정된 것 같았다. 두 집 살림을 하게 된 그 선생님은 깊은 죄의식에 빠진 것 같았다. 그가 어느날 나한테 이렇게 고백했다.
  
  “교직에 있는 나의 일생은 완전히 얼룩지고 실패해 버렸어요. 세상에서는 새로 만난 여자를 첩이라고 하죠. 그리고 나는 첩을 둔 교사가 됐고. 그 어떤 제자가 더러운 선생을 존경해 주겠어요? 나는 정말 부끄러운 자격 없는 선생입니다. 아무 할 말이 없어요.”
  
  나는 그의 결벽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결코 육체적인 욕망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정이 많은 사람들이 더러 그런 운명의 실에 꿰이는 수가 많았다. 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하면서 위로해도 그 선생은 짙은 죄의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제자들의 연락이 뜸해도 그 원인을 자신의 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를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평생 흠이 없는 개결한 생애를 유지하는 교직자가 많다. 그와 같이 운명적으로 껍데기에 얼룩반점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은 그 얼룩진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실까. 그게 죄일까? 의인보다 회개한 죄인을 더 사랑하셔야 하는 게 아닐까. 겉으로 약점이 없는 사람들은 남의 티를 잡고 정죄하면서 냉정한 면이 있다. 하나님은 결백한 것을 자랑하는 것보다 죄를 슬퍼하는 마음을 더 사랑하셔야 하지 않을까.
  
  예수의 제자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마감했다. 베드로는 자신의 어리석은 잘못을 가슴을 치면서 회개하고 어쩔 줄 모르면서 울부짖었다. 자신만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하나님과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하나님은 같은 것일까. 죄를 씻어주는 하나님이 의를 기뻐하는 하나님보다 큰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봤다. 변호사인 나는 법정신도 그래야 한다고 본다.
  
  
[ 2022-05-28, 08: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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