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려던 사람을 살리고 자살한 살인범
“자꾸만 하나님 하나님하지 말아요. 죽으면 끝이지 뭐가 있겠어?”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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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한 날>
  
  산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스마트 폰이 진저리를 쳤다. 화면에는 내가 그 남자를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한 시골 마을 집 주인인 할머니의 번호가 떴다.
  
  “아이고 이걸 어떻게 해요?”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죠?”
  “그 사람이 목을 매달았어요. 지금 허공에 걸려있어요. 아이고 어쩌나 이걸 어쩌나.”
  그가 자살을 한 것 같았다. 살인죄로 십사 년간 징역을 살고 출소한 지 다섯 달 만이었다.
  
  “어떻게 하면 돼요?”
  집주인 할머니는 당황해서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았다. 혼자 사는 노인이었다.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할머니 정신차려요. 먼저 사람이 아직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확인하세요.”
  “무서워서 온몸이 떨려요. 공중에 매달려 있는데 움직이지 않아요. 죽은 거 같아요.”
  
  “일단 경찰에 신고하세요. 그러면 형사와 앰블런스가 와서 처리할 겁니다. 내가 바로 거기로 갈께요.”
  “난 무서워서 이제 이 집에서 혼자 못 살아요.”
  
  그 노인은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내가 부탁했던 그 남자는 살인범이었다. 빈민촌에서 자라난 그는 평생 사랑을 받아보지도 누구를 사랑한 적도 없을 것 같았다. 포악한 성격이었다. 주위에서는 그를 걸어 다니는 흉기라고 했다.
  
  그가 살인죄로 장기형을 선고받고 청송 골짜기의 교도소에 있을 때 그가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편지는 마치 냉기 서린 깊은 우물 바닥의 어둠 속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듯한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지옥에서 절규하는 소리라고나 할까. 나는 그의 신호에 응답하는 의미로 매월 약간의 영치금을 보냈다. 그가 이빨이 다 빠지고 여섯 개만 남았다고 호소했다. 나는 그에게 틀니를 해 주었다. 영화 빠삐용에서 감옥 안의 주인공이 영양부족으로 이빨이 뱉어져 나오던 장면이 떠올랐었다. 그런 존재를 남 몰래 도와주는 것이 그분이 가장 기뻐하는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그가 한겨울에 석방됐다. 그는 세상에서 현실적으로 기댈 곳이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이런 때 지혜가 필요했다. 막연히 감상적으로 대했다간 곤혹스러운 일이 닥칠 수도 있었다. 대도라고 불리던 상습절도범을 석방된 날부터 얼마간 집에 있게 한 적이 있었다. 감옥 안과 세상에 나와서의 사람이 달랐다. 나는 껍데기는 인간이라도 그 안의 영혼은 여러 종류가 있다는 생각이다. 쥐의 영혼도 있고 파충류의 영혼도 있고 야수의 영혼도 있다. 동물의 사육사처럼 사랑을 주면서도 한쪽으로는 관찰하고 조심해야 하는 면이 있다.
  
  나는 그를 시골의 방을 얻어 묵도록 했다. 그가 회개하고 자연인이 됐으면 하는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의 내면 깊은 곳에는 아직도 악마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한 사람에게 원한을 품고 죽이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감옥생활 내내 신앙같이 그 결심을 굳혀왔던 것 같았다. 그는 자기가 죽이려는 사람이 어디에 사는지 찾아다닌 것 같았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불행해지는 사태가 벌어질 것 같았다. 사십 년 가까운 변호사 생활의 직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자살했다고 전화가 온 것이다. 나는 연락을 받은 다음 날 그가 목을 매달고 죽은 현장으로 가 보았다. 창고의 대들보에는 그가 묶어놓은 줄이 중간에서 끈긴 채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줄의 끝부분이 미끄러져 풀어지지 않도록 실로 이중으로 치밀하게 감아놓은 흔적이 보였다. 실패하지 않고 죽을 각오를 오래 전부터 한 것 같았다. 그는 죽기 전 자기 방 책상 위에 수첩을 펼쳐놓았다. 그 수첩에는 그가 죽이려고 찾아다녔던 사람의 전화번호와 주소가 적혀 있었다. 죽일 수 있었는데 살려주었다는 메시지가 틀림없었다.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해독할 수 없는 메시지였다. 그가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잘한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의 시신을 화장장으로 가져갔다. 나의 마지막 서비스였다. 그의 비참한 일생이 몆 조각의 석회질 가루로 변해 있었다. 그와 마지막으로 전화하며 싸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너는 믿음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돼. 그게 네가 살 길이야.”
  그의 영혼은 계속 어둠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자꾸만 하나님 하나님하지 말아요. 난 죽어버리면 되니까. 죽으면 끝이지 뭐가 있겠어?”
  자기 생명을 경시하는 사람이 이 사회에서는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나는 그의 유골을 보면서 생각했다.
  
  ‘네가 지금 영혼이 빠져나와 내 옆에 있다면 얼마나 당황하겠니? 이제는 네 갈 길을 잘 가기 바란다.’
  우울한 날이었다.
  
[ 2022-06-20, 09:4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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