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특수부대 출신 노인의 실버타운 생활
"죽으려고 여기 바닷가에 들어온 거에요. 여든다섯 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죽어지지가 않아.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나 원 참"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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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황혼>
  
  실버타운의 식사 때가 되면 옆의 식탁에서 혼자 밥을 먹는 노인이 있다. 머리와 눈썹에 하얀 세월의 눈이 쌓이고 걸음걸이도 휘청거리지만 부리부리한 눈에서는 아직도 만만치 않은 투지의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해군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했다. 그는 늙었어도 군인 투의 말에 행동도 거칠다. 주위 노인들은 그를 주먹 출신이라고 했다. 젊어서 싸움을 해서 감옥도 여러 번 들어갔었다고 한다. 그가 한번 내게 법률상담을 하자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매일 그 은행에 가서 소리치고 행패를 부렸더니 그 놈은 전근을 가고 지점장은 날 보면 벌레 보듯 얼굴을 찡그리더라구. 내가 야구 방망이를 들고 가서 은행원 머리들을 날려버릴 힘은 아직 있어.”
  
  그는 아직도 분을 참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필리핀의 바다에서 일을 하면서 국내의 은행 담당 직원에게 송금을 부탁했는데 직원이 사기를 쳤다는 것이다. 부탁받은 송금을 하면서 돈의 액수를 올려 그 부분을 착복했다는 것이었다. 몇 년 후 그 사실을 안 노인은 고소를 했지만 공소시효가 끝나 처벌할 수 없다는 통지를 받았다. 실버타운의 직원은 그 노인이 사기를 당한 게 맞는 것 같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정말 화가 나고 억울할 것 같았다. 세상에는 그런 기생충이 많았다. 잡기도 힘들다. 그 노인은 이미 포기한 것 같았다. 그 노인은 밥때가 되면 절뚝거리며 혼자 와서 부지런히 밥을 먹고 나가곤 했다. 귀가 들리지 않아 자신의 말만 할 뿐 남의 말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래서 법률상담도 글로 써서 크게 확대해서 보여주었다.
  
  어느 날 그의 마음이 잔잔해졌는지 평안해진 얼굴로 옆의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평생을 수심 사십 미터가 넘는 깊은 바다에서 살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온몸에 골병이 들었어요. 일흔일곱 살에 온 몸이 고장이 났어요. 당뇨도 있고 고혈압에 내장이 성한 데가 없었지. 그래서 죽으려고 여기 바닷가에 있는 실버타운에 들어온 거에요. 그런데 여든다섯 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죽어지지가 않아.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나 원 참.”
  
  다른 사람의 말로는 그 노인은 성공한 아들이 있다고 했다. 자주 찾아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노인은 항상 외로워 보였다. 어느 날 그가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국 건더기와 닭고기 남은 걸 나무젓가락으로 골라내어 가지고 온 비닐봉지에 담는 걸 보았다. 그가 지나가면서 보는 나를 발견하고는 멋쩍은 듯 말했다.
  
  “뒤쪽에 있는 개들에게 먹이려고….”
  
  실버타운의 한구석에는 하루 종일 끈에 묶인 채 엎드려 있는 개들이 있다. 사랑받지 못하는 개들 같았다. 노인은 먹을 걸 들고 개들에게 찾아가 친구가 되고 싶은 것 같았다.
  
  어느 날부터 노인이 마을의 작은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노인은 갑자기 실버타운의 노인들을 보면 예수 믿고 교회에 나가라고 하고 다녔다. 한번은 그 노인이 내게 물었다.
  
  “목사가 나한테 집사하래요. 그거 장로에 비하면 한참 쫄데기 계급장 같던데? 장로한테 경례 붙여야 하나? 군대에서도 그렇게 했는데….”
  
  제복과 계급사회에 익숙한 그의 사고방식은 노인이 되어도 그런 것 같았다. 부활절 교회에 갔다온 그 노인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교회는 돈만 받아먹고 주지는 않는 곳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상해요. 내가 헌금이라고 해서 전부 합치면 이만 원 정도 했는데 목사가 나보고 쓰시라고 하면서 상품권 삼만원을 주더라구요. 이렇게 해도 장사가 되는지 모르겠어.”
  
  한겨울에 들어온 실버타운에 봄이 오고 무더운 여름이 왔다. 실버타운 내에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넓은 야외풀장이 있다. 마을의 아이들이 놀러 오기도 하고 실버타운 노인들의 손자 손녀가 방문해서 놀게 만들어준 장소였다. 어제 산책길에 풀장 주변을 돌 때였다. 풀장의 물 밑으로 낯익은 뒤통수가 보였다. 해녀가 전복을 따듯 뭔가 바닥에서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머리통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잠수부 출신 그 노인이었다. 그 노인이 싱긋 웃으면서 가지고 있던 그물망을 들어 보였다. 혹시나 아이들이 다칠까봐 풀장 밑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줏고 있었던 것이다. 노인의 손자 손녀들이 온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평생을 수심 사십 미터의 깜깜한 바닷속에서 익힌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외롭지만 노인의 황혼은 그런대로 아름다운 것 같아 보였다.
  
[ 2022-07-30, 09:4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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