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친하게 지내다가 조용히 죽으려고 해"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만났다 헤어지는 인생 여행>
  
  평택항에서 아라비아 반도로 가는 LNG선을 얻어타고 싱가포르까지 간 적이 있다. 하얀 파도가 이는 청담색의 드넓은 동지나해를 지나면서 선원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정이 들기도 했다.
  
  싱가포르에서 인도양과 홍해를 거쳐 수에즈 운하를 지나 베네치아로 가는 이태리 배를 탄 적이 있었다. 그 배 안에서 만난 몇 명의 한국인이 기억에 남아있다. 주민센터의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을 했다는 독신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배를 타고 세계를 한번 흘러보고 싶었다고 했다. 평생 과수원을 하면서 사과나무를 가꾸던 노부부가 그 배에 타고 있었다. 영감의 꿈은 세계일주였다고 했다.
  
  여행길에 만난 사람들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에서 본 ‘아바이 주씨’가 있다. 함경도가 고향인 그는 옥수동 산동네에서 평생 가난하게 혼자 살고 있는 노인이었다. 그는 약간의 돈만 생기면 배낭을 하나 걸치고 세상을 흐르고 있었다. 젊어서 기술자로 일하면서 저축해 둔 약간의 돈이 있다고 했다. 그를 보면서 인생 자체가 여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들은 각자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 도중에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인생 여행의 동반자다. 그들과 혹은 짧은 세월을 혹은 긴 세월을 관계를 맺고 동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목적지는 나그네 각자에 따라 다르다.
  
  중고등학교 시절 매일 만나지 않고는 못 사는 세 명의 동네 친구가 있었다. 영원한 우정의 표시로 반지까지 똑같이 만들어 끼기도 했었다. 그런 치기 어린 동행은 삶의 어느 기간이었을 뿐 각자 인생의 목적지가 달랐던 걸 나중에 알게 됐다.
  
   한 친구는 일찍 저 세상으로 건너갔다. 일찍 천국역에서 내린 것이다. 또 한 친구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 어떻게 사는지 소식이 끊겼다. 또 다른 한 친구는 의도적으로 나와의 관계를 끊는 것 같다. 어느 날 강권해서 그를 만났다. 맺었던 소중한 관계를 잃기 싫어서였다.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사과하고 소년시절의 정을 되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내가 반갑지도 친숙하지도 않은 것 같아 보였다. 무표정하고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과거에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은 아무도 안 만나. 서울에 와도 고등학교 때 그렇게 친하던 단짝들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아. 형제도 별로 보고 싶지 않아. 그냥 지금같이 외국을 떠돌며 살다가 그곳에서 만난 이웃들과 적당히 친하게 지내다가 조용히 죽으려고 해. 이런 나를 보고 형제들은 싸가지가 없는 놈이라고 욕하지만”
  
  그의 말에는 이제 나와도 이별하자는 암시가 들어있는 것 같았다. 그의 말에 내가 이렇게 반응했다.
  
  “네 존재가 나의 과거이고 아름다운 추억 자체야. 너를 잃으면 내 소년시절이 증발해 버리는 거야.”
  
  내 말에 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시간이 한참 지나간 후에야 나는 그의 눈에 떠올랐던 어떤 감정을 나대로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소년 시절 산동네 판자집에서 살았다. 나는 그의 처절한 가난과 고독을 봤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떠났다. 그가 혼자 어두워 오는 하늘을 보면서 이럴 거면 차라리 낳지를 말지 하고 절규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는 영리하고 똑똑했다. 대학 시절 일년을 돈을 벌어서 일 년을 대학을 다녔다. 졸업 후 그는 가방 속에 천조각을 넣어가지고 마카오 거리의 중국인 가게들 문을 두드리며 장사하러 돌아다녔다.
  
  세월이 흐르고 그는 부자가 됐다. 미국과 홍콩 그리고 서울에 저택과 고급아파트를 가지고 무역회사와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그가 나의 추억인 것처럼 어쩌면 나는 그의 각박하고 힘들었던 과거를 일깨우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나와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단호하게 마음의 끈을 끊어 버리려고 하는지 모른다. 아니 오래 전에 이미 그것은 끊겨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연락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그를 위하는 행위 같았다. 인생의 목적지는 나그네 각자에 따라 다르다. 사람과 만났다가는 헤어지고 벗을 사귀고는 또 잃는다. 인생의 슬픔 그것은 우리 각자의 잘못이 아니라 인생 자체의 필연이 아닐까.
  
  
[ 2022-09-24, 01:1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