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뿐인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FREEDOM 교양영어 (181) :Moby Dick (Excerpt: 발췌)/인생은 3분의 2가 (바다처럼) 어둡고 3분의 1이 (육지처럼)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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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애(悲哀)에 지혜가 있다. 그러나 광기(狂氣)에는 비애가 있다
Call me Ishmael. Some years ago―never mind how long precisely―having little or no money in my purse, and nothing particular to interest me on shore, I thought I would sail about a little and see the watery part of the world. It is a way I have of driving off the spleen, and regulating the circulation. Whenever I find myself growing grim about the mouth; whenever it is a damp, drizzly November in my soul; whenever I find myself involuntarily pausing before coffin warehouses, and bringing up the rear of every funeral I meet; and especially whenever my hypos get such an upper hand of me, that it requires a strong moral principle to prevent me from deliberately stepping into the street, and methodically knocking people’s hats off―then, I account it high time to get to sea as soon as I can. This is my substitute for pistol and ball. With a philosophical flourish Cato throws himself upon his sword; I quietly take to the ship. There is nothing surprising in this. If they but knew it, almost all men in their degree, sometime or other, cherish very nearly the same feelings towards the ocean with me.
  
  There now is your insular city of the Manhattoes, belted by wharves as Indian isles by coral reefs―commerce surrounds it with her surf. Right and left, the streets take you waterward. Its extreme down-town is the Battery, where that noble mole is washed by waves, and cooled by breezes, which a few hours previous were out of sight of land. Look ant the crowds of water-gazers there.
  
  Circumambulate the city of a dreamy Sabbath afternoon. Go from Cholears Hook to Coenties Slip, and from thence, by White-hall, northward. What do you see?―Posted like silent sentinels all around the town, stand thousands upon thousands of mortal men fixed in ocean reveries. Some leaning against the spiles, some seated upon the pier-heads; some looking over the bulwarks of ships from China; some high aloft in the rigging, as if striving to get a still better seaward peep. But these are all landsmen; of week days pent up in lath and plaster―tied to counters, nailed to benches, clinched to desks. How then is this? Are the green fields gone? What do they here?
  
  나를 Ishmael이라고 불러다오. 몇 해 전에―정확히 얼마나 되었는지는 신경 쓰지 마시라―지갑에 돈이 없어서 아니 한 푼도 없어서 그리고 바닷가에는 특별히 나에게 특별히 흥미 있는 것이 없어서 나는 배를 타고 돌아다니며 세상의 바다로 되어 있는 부분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울화통을 몰아내고 생각의 순환을 정리하는 방법이다. 내 자신이 점점 더 우울해지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내 영혼에 11월의 축축한 가랑비가 내릴 때마다, 나도 모르게(involuntarily) 내가 棺(관) 창고 앞에서 걸음을 멈출 때, 내가 마주치는 모든 장의 행렬의 끝에서 갑자기 멈출 때마다, 특히 우울증이 나를 하도 심하게 압도하여서 고의적으로 거리에 들어가서 능숙하게 사람들의 모자를 쳐서 떨어뜨리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강력한 도덕적 원칙이 필요할 때마다―그러면 나는 가능한 한 빨리 바다로 가야 할(배를 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나의 권총자살을 대체하는 것이다. 철학적인 화려한 말을 하며 Cato는 자신의 칼 위에 몸을 던진다; 나는 조용히 배를 탄다. 이렇게 하는 것에 특별한 것이 없다. 만약 사람들이 이것을 알게 되면 언젠가는 거의 모든 남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나처럼 바다에 대해 거의 동일한 감정을 품게 될 것이다.
  
  저기 산호초에 둘러싸인 인도양 작은 섬들처럼 부두에 허리띠처럼 둘러싸인, Manhattoes(Manhattan섬 주민들)의 섬 도시가 있다―상업 활동(상점들)이 파도처럼 그 섬을 둘러싸고 있다. 오른쪽으로 가든 왼쪽으로 가든 거리는 당신을 바다 쪽으로 데리고 간다. 시내 중심 끝에는 the Battery(공원)가 있으며 그곳에는 저 당당한 방파제가 파도에 씻기고 미풍에 시원해지고, 이 미풍은 몇 시간 전에는 육지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바다를 응시하는 사람들의 무리를 보라.
  
  꿈꾸는 듯한 주일날 오후에 그 도시를 걸어다녀 보시라. Corleas Hook로부터 Coenties Slip까지, 그리고 그 곳으로 부터 Whitehall 옆으로 해서 북쪽으로 가보시라. 무엇이 보이는가?―도시 외곽의 말없는 파수병처럼 자리를 잡고 바다의 환상에 사로잡혀서 수천의 사람들이 서 있다. 어떤 사람들은 기둥에 기대어 서있고; 어떤 사람들은 부두 끄트머리(pier-heads)에 앉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중국에서 온 배의 방호벽 너머를 바라보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마치 훨씬 더 좋은 바다 조망을 가지기 위해 분투하는 것처럼 마스트 밧줄 더미 속에 올라가 높이 떠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모두 육지 사람들이다; 평일에는 건물 벽(lath and plaster)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다―계산대에 묶여서, 벤치에 못 박혀서, 책상에 고정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이냐? 녹색의 땅은 사라져 버렸나? 그들은 여기에서 무얼 하고 있는가?
  
  * 해설
  
  Stubb와 Ahab과 Ishmael 각각은 ‘Moby Dick’에 나타나는 세 가지 인생관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Melville은 이 세 인물의 인생관을 평가하는 기준을 바다와 육지의 隱喩(은유)를 통해 제시한다.
  
  '태양은 바다를 숨기지 않는다. 바다는 지구의 어두운 면이고 지구의 3분의 2이다. 그래서 슬픔보다 기쁨이 많은 사람은, 그런 사람은 진실할 수 없다―진실하지 않거나 성숙이 덜된 사람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진실된 사람은 슬픔의 사람이고 책 중에서 가장 진실된 책은 솔로몬의 책이다.…비애에 지혜가 있다. 그러나 광기에는 비애가 있다. 어떤 사람들의 영혼에는 협곡의 가장 깊은 데까지 降下(강하)했다가 다시 상승해 햇빛 찬란한 창공 속으로 사라지는 Catskill 독수리가 있다.’
  
  여기에 하나의 기준이 있다. 인생은 3분의 2가 어둡고 3분의 1이 밝다. 그래서 인생은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다. 그리고 여기에 세 인물의 인생관을 측정하는 準據(준거)가 있다.
  
  첫째로 Stubb처럼 진실하지 않거나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슬픔보다는 기쁨이 많은 사람이다.
  
  둘째로 Ahab처럼 슬픔뿐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셋째로 Ishmael처럼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이 잡혀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Catskill의 독수리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
  
  ‘Moby Dick’의 인물들이 직면하고 있는 삶의 본질을 가장 적절하게 상징하는 것은 흰 고래이다. 즉 백경은 불가해한 악의와 강렬한 분노, 악마의 속성, 無情(무정)한 공허와 우주의 무한성, 그리고 태초로부터 존재해 온 이유 없는 敵意(적의)를 표상하고 있다. Stubb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데에서 피난처를 찾고 의도적인 輕妄(경망)의 언행을 통해서 존재의 비극성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고 한다. Ahab의 운명은 삶의 비극적인 사실에 정면으로 맞서서 싸우는 것이다. Ishmael은 사실을 이해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실에 자신의 행동을 맞추어 나간다.
  
  Melville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태평스럽게 살아가는 Stubb를 특유의 상징적 技法(기법)으로 그리고 있다.
  
  ‘허리가 땅에까지 휘도록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음울한 행상인들로 가득찬 세상에서 Stubb로 하여금 삶의 봇짐을 즐겁게 지고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그리고 不敬(불경)에 가까울 만큼 저렇게 쾌활한 기질을 가지게 하는 것은 그의 파이프임에 틀림없었다. 그의 코처럼 짧고 검은 파이프는 그의 얼굴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나는 그가 계속해서 피워대는 담배는 적어도 그의 특이한 기질의 원인임에 틀림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육지이든 바다이든 이 세상의 공기는 공기를 내뿜으며 죽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무수히 많은 비참한 것들로 심하게 감염되어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콜레라가 창궐할 때에 사람들이 장뇌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Stubb의 담배연기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인 인간들의 고난에 대항해서 일종의 소독제로 작용할 것임에 틀림없다.’
  
  Stubb가 삶의 괴로움과 악의 감각에 이렇게 무심한 것은 그가 말하는 Ahab에 대한 평가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육지의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양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그래, 그래. 난 양심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하나님, 내가 양심이라는 것에 붙들리지 않도록 해주십시오.…생각하지 마라. 이것이 나의 열한 번째 계명이야.’
  
  Ahab이 Pequodgh의 항해 목적은 고래잡이가 아니고 모든 사람들의 공포의 대상인 흰 고래 Moby Dick에 대한 복수라고 밝혀도 Stubb는 상황의 可恐(가공)할 만한 심각성을 코미디처럼 가볍게 받아들인다.
  
  ‘하! 하! 하! 하!…나는 이 문제를 줄곧 생각해 보았는데 결론은 하하 하고 웃는 것이야. 왜냐고? 웃음이 모든 괴상하고 기분 나쁜 것들에 대한 가장 현명하고 가장 쉬운 해답이란 말이다.…무슨 일이 닥쳐올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웃음으로 그것을 맞이하겠어. 소름끼치는 공포 속에 숨어 있는 너희들의 그 우스꽝스러운 눈길이라니!’
  
  Stubb가 공포의 현실과 맞서기를 회피하고 현실을 戱畵化(희화화)하는 것은 그의 정신이 불모의 상태에 있음을 말해 준다.
  
  Stubb의 희극적 성향에 정반대의 비전을 제시하는 인물은 Ahab이다. Moby Dick 추격전에서 Moby Dick이 大破(대파)한 보트에 대해 Stubb가 時宜(시의)에 적절하지 않은 농담을 던지는 것에 대한 반동으로 Ahab은 ‘난파선 앞에서 웃고 있는 이런 놈은 영혼도 없는 인간인가? 자네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용감하다는 것을 몰랐다면 자네를 비겁한 놈이라고 욕설이라도 하겠지만.’이라고 쏘아붙인다. 영혼이 없고 기계처럼 생각이 없고 진실하지 못하며 정신이 발달하지 못한 인간―이런 인간이 바로 Stubb이다. 그는 심지어 죽음의 순간에도 농담을 하는 것이다.
  
  Ahab도 물론 神들을 향해 웃고 야유를 한다. 그러나 Stubb의 웃음은 삶을 회피하는 장난의 웃음이지만 Ahab의 웃음은 삶의 이빨 안에 던지는 불경스러운 도전이다. Ahab의 무서운 '조롱의 웃음'은 神의 권위를 조소하기 위한 웃음이다. 이것은 비애에 압도당한 사람의 광기이다.
  
  
  
  
  
  
[ 2022-10-31, 09:2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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