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부근 벤치의 정물(靜物)이 되었던 老신사
민원(民願)이 있었는지 구청에서는 마침내 그 벤치를 없애버린 것 같았다.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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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식의 닻줄>
  
  오늘 오전 목욕을 하기 위해 온천탕으로 내려갔을 때였다. 휴게실에서 옷을 입고 있던 두 노인이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는 정치 뉴스를 소재로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갑자기 한 노인이 싸움이라도 할 듯 소리쳤다.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너 빨갱이 아냐?”
  흥분한 노인은 당장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였다.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사상적으로 몰아붙이다니? 빨갱이가 뭐야 빨갱이가. 지리산에서 투쟁을 하던 빨치산이 없어진 지가 언젠데?”
  “아니야, 대통령을 쫓아내려는 광화문 집회를 두둔하는 걸 보니까 너는 빨갱이가 틀림없어 에이 나쁜 놈.”
  
  “자기 의견하고 다르면 무조건 빨갱이라고 하는 거 보니까 당신은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야. 기껏해야 좌향좌 우향우 하는 제식훈련의 자유만 알겠지 뭐.”
  빨갱이라고 욕을 하던 한쪽 노인이 가버렸다. 남은 노인이 나를 보더니 물었다.
  
  “선생님, 무조건 자기 생각만 옳다고 우기고 상대방을 빨갱이라고 하는 저런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제 저런 인간은 이 사회에 십 퍼센트도 안되는 소수인 걸로 아는데요.”
  “저는 사상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양심으로 판단해야 된다고 믿습니다만. 그리고 이태리나 프랑스 독일에서 사회주의 정당이 정권을 잡은 경우도 많지 않나요?”
  
  나는 대충 그렇게 대답해 주었다. 빨갱이라고 욕을 먹은 노인의 표정이 내 말에 위로를 받은 듯 약간은 편안해진 것 같았다. 인간이란 닻줄에 매여있는 배같은 신세인지도 모른다. 몸이나 정신이 고정관념이나 편견, 사상, 욕심 등에 매여있어 거기서 벗어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우리들의 정신은 반공 프레임 속에서 형성됐다. 공산당이 빨갱이였고 그들은 무조건 때려잡아야 하는 존재였다. 문둥병보다 무서운 게 빨갱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였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세대나 그 위는 그렇게 세뇌됐었다.
  
  어린 코끼리의 발을 쇠사슬로 말뚝에 묶어서 키우면 나중에 그 쇠사슬이 끊어져도 코끼리는 그곳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새장의 새는 사람이 주는 모이를 먹고 그곳에서 자란다. 푸른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본 적이 없다. 자기가 새인 줄도 모르면서 산다. 그런 새는 어느 날 새장의 문이 열려도 하늘로 높이 높이 날아갈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인간도 그 의식이 일정한 틀 속에 갇혀 있으면 그 틀을 깨고 나오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리들은 어렸을 때 판검사나 국회의원 같은 특정 직업만 좋은 것으로 인식했다. 사회와 어른들의 편견이 그런 가치관을 심어준 것이다. 거기에 묶여 평생 법 책을 옆에 두고 사는 고시낭인들도 많았고 나이 팔십이 되도록 선거 때만 되면 가족 몰래 입후보 등록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들은 경주마같이 눈가리개를 단 채 장애물을 넘고 앞으로 뛰어가는 훈련만 받았다. 그 트랙을 벗어나면 초원이 있다는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 트랙이 우리의 존재 자체였다. 그리고 거기 묶였다.
  
  팔십대의 선배 변호사가 있다. 그는 지금도 매일 아침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고 사무실에 나와 앉아 신문을 손에 들어야 마음이 안정이 된다고 했다. 수십 년 동안 사무실에 있다 보니까 그 자신이 사무실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매일 자기의 텅 빈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있다가 간다. 대학 교수들 중에는 평생 지내던 자기의 연구실을 정년퇴직 후에도 내놓지 않아 후배들을 애먹이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아직도 트랙에 머물기를 고집하는 것 같다. 그런 묶여있음은 어느 정도를 확보한 사람에게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강남역 부근의 길가 벤치에 육십대쯤의 신사가 앉아있는 걸 본 적이 있다. 두툼한 검은 코트에 반들거리는 구두를 신고 있었다. 며칠 후에도 몇 달 후에도 해가 바뀌어도 그 남자는 해가 저물 무렵이면 정물같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남자는 풍화되고 부스러져 가는 것 같았다. 점점 초라해지면서 노숙자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어떤 날은 누구에게 얻어맞았는지 얼굴 피부가 벗겨지고 코가 허물어져 있는 걸 본 적도 있다.
  
  주민들의 민원이 있었는지 구청에서는 마침내 그 벤치를 없애버린 것 같았다.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었다. 나는 지금도 그 남자가 왜 그 자리에 집착했는지 궁금하다. 그는 줄에 묶여 있는 우리들의 상징 내지 은유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나는 내 의식을 묶고 있는 닻줄을 걷어 올리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그게 되지를 않는다. 나는 어리석고 불쌍한 인간이다.
  
[ 2022-11-01, 03:4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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