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 이기심(利己心)의 역설
FREEDOM 교양영어(183): Wealth of Nations (Excerpt)/공산주의가 실패하고 자본주의가 성공한 것은 이기심과 공공의 이익에 관한 Smith의 생각이 옳았기 때문이다.

朴承用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In almost every other race of animals each individual, when it is grown up to maturity, is entirely independent, and in its natural state has occasion for the assistance of no other living creature. But man has almost constant occasion for the help of his brethren, and it is in vain for him to expect it from their benevolence only. He will be more likely to prevail if he can interest their self-love in his favor, and show them that it is for their own advantage to do for him what he requires of them. Whoever offers to another a bargain of any kind, proposes to do this. Give me that which I want, and you shall have this which you want, is the meaning of every such offer; and it is in this manner that we obtain from one another the far greater part of those good offices which we stand in need of. It is not from the benevolence of the butcher, the brewer, or the baker, that we expect our dinner, but from their regard to their own interest. We address ourselves, not to their humanity but to their self-love, and never talk to them of our own necessities but of their advantages. Nobody but a begger chooses to depend chiefly upon the benevolence of his fellow-citizens.
  
  거의 모든 다른(인간을 제외한) 종의 동물에서, 각 개체는 자라나서 성숙해지면 전적으로 독립적이 되고 자연 상태에서는 다른 어떤 생명체의 도움을 받을 필요(occasion)는 없다. 그러나 인간은 거의 항상 동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고, 인간이 도움을 받을 때 동포들의 자비심만을 바랄 수는 없다. 그가 그에게 유리하도록 그들의 이기심(self-love)을 자극할 수 있고, 그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그를 위해 해주는 것이 그들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는 더 많은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있다. 모든 종류의 계약을 타인에게 제의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이렇게 할 것을 제안한다(자기를 도와주는 것이 그들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이것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라는 것이 모든 이런 제안의 의미이며,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좋은 제안(offices)의 대부분을 서로서로 획득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방식을 통해서다. 우리가 저녁 먹기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과 釀造者(양조자) 또는 제빵업자들의 자선 때문이 아니고 그들 자신의 이익에 대한 그들의 관심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애(humanity)가 아닌 그들의 이기심에만 관심을 두며 우리 자신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결코 말하지 않고 그들의 이득에 대해서만 그들에 대해 말한다. 거지 외에 누구도 동포의 자비심에 주로 의존하기로 선택하지 않는다.
  
  * 해설
  
  Smith는 이기심을 숭상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선을 찬탄할 만한 것이며 위대한 미덕으로 간주하였다. 그는 같은 인간에 대한 동정의 본능을 바탕으로 문명된 행위가 형성되고 동정을 문명의 초석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그의 가장 위대한 통찰은 사람들이 자발적 경제활동에 서로서로 자유롭게 참여만 할 수만 있다면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자선은 사실상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자선이 필요 없는 이유는 자선은 종종 공급부족 상태에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다행이라고 그는 지적하였다. 반면에 이기심은 그렇지 않다. 이기심이 공급부족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자선의 양은 항상 모자라고 이기심의 총량은 항상 공급과잉이라고 하겠다.
  
  만약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이끌어지는 이기심이 본의 아니게 공익에 기여한다면, 그렇다면, 사람들이 항상 자선심에 의해서만 움직이지는 않는데도 사회가 번영하는 이유를 알기는 쉽다. 공산주의가 실패하고 자본주의가 성공한 것은 이기심과 공공의 이익에 관한 Smith의 생각이 옳았기 때문이다.
  
  탐욕과 이기심은 같은 것이 아니다. 단어의 일반적 의미에서 탐욕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계산적이지도 않다. 탐욕에 완전히 몰두하면 탐욕은 사람을 우둔하게 하고 파산으로 몰고 간다. 공익을 증진시키는 그런 종류의 이기심은 합리적이고 계몽된 것이다.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이기심은 개인이나 회사로 하여금 회사의 정직성과 공정한 거래에 대한 명성에 대해서, 회사의 부채 지불과 협정 존중에 대한 명성에 대해서 신경을 쓰게 한다. 이기심은 단기간을 넘어서 앞날을 대비한다. 이기심은 내일의 이득을 위해서, 혹은 5년 뒤의 이득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한다. 이기심은 좋은 이웃을 만든다.
  
  또한 도덕적으로도 탐욕과 이기심 사이에는 다른 세계가 있다. 탐욕의 세계는 비록 자멸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여전히 이기심을 비천하게 악용하는 세계이다. 이러한 차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래서 보다 더 깊은 생각도 없이 私企業(사기업)은 더럽혀져 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 우둔이다. 탐욕은 추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타인의 복지에 대해 동정적 관심을 가지면서 (대부분의 경우에 그런 것처럼) 자신의 복지를 증진시키려는 조용하고도 온건한 욕망에 대해서는 저열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다. 그리고 Smith가 지적한 것처럼 이기심은 대단히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이기심이 없으면 세상은, 특히 경제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2022-11-04, 08:4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