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은 판사도 움직인다
“양형 기준상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사건이지만 나는 그 사람을 석방하려고 합니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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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조종자>
  
  재판을 받는 사람들은 담당 판사의 마음을 궁금해한다.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나도 판결을 선고해 본 적이 있다. 대개는 기준이 있어서 그 범위 안에서 기계적으로 하면 됐다. 그러나 한계선상에 있어 이럴까 저럴까 결정을 못하고 망설이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때 아는 사람들이 부탁하면 아무래도 마음이 그쪽으로 가기도 했다. 그래서 ‘전관예우’나 ‘로비’라는 용어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또 어떤 때는 죄는 무겁지만 이상하게 살려주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아무 관계도 없는데 그랬다. 내가 결정하는 것 같지만 마음이 보이지 않는 어떤 다른 존재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한 재벌 회장의 변호를 맡았던 적이 있다. 벌써 이십 년 가까이 되어간다. 대단한 능력을 가진 회장이었다. 그는 검사마다 판사마다 로비 담당 변호사를 붙였다. 법정에서는 변론 기술이 최고인 변호사가 뛰고 있었다. 증거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담당 직원도 있는 것 같았다. 회장은 그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각계각층의 수많은 사람들이 제출하게도 했다. 수많은 직원들이 그를 석방시키라는 시위도 했다. 회장이 계획하는 방향으로 재판이라는 거대한 배가 흘러가는 모습이었다. 재판장도 법정에서 그 회장에게 호의적인 따뜻한 태도를 보였다. 사실 파렴치범도 아니고 사업의 실패로 볼 수도 있었다. 어느날 법정에서 여러 명의 변호사중 한 젊은 변호사가 내 옆에서 속삭였다.
  
  “저는 주심 판사에 대한 로비를 맡았어요. 고교 동기고 사법연수원도 같이 나왔거든요.”
  
  그는 유명한 대형로펌 소속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 회장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아무도 그 배경을 알 수 없었다. 그런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리고 나서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민사법정에서 서로 상대가 되어 우연히 만난 변호사와 함께 걸으면서 법원문을 나올 때였다.
  
  “엄 변호사님 저 모르시겠어요? 변론하셨던 그 재벌 회장 재판 때 제가 주심판사였잖아요?”
  “아, 그러세요?”
  
  법복을 입고 있었던 그를 나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묻지도 않았는데 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다.
  
  “그 회장을 재판할 때 저는 상당히 동정적이었어요. 형을 가볍게 하자는 결심을 굳히고 있었죠. 재판장인 부장님한테도 그런 제 의견을 말씀드렸더니 같은 마음이라고 하면서 관대한 형을 선고하자고 하시더라구요. 사실심리가 끝나고 선고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어요. 고등학교와 사법연수원을 같이 나온 친구가 전화로 연락을 한 거에요. 꼭 만나서 할 얘기가 있다는 겁니다. 친구가 그 회장 사건의 변호사로 되어 있어서 만나지 않으려고 했죠. 그랬더니 심리 때 말 못한 사유가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만나 얘기를 들어봤더니 별거 아닌 거예요. 서면으로 써서 제출하면 충분한 사항이었어요. 그 순간 그 친구가 내게 로비하러 온 거를 알아챘어요. 다음날 출근해서 재판장인 부장님께 그 사실을 얘기하면서 형량을 올려야겠다고 했어요. 부장님도 알았다면서 고개를 끄덕이셨어요. 그래서 그때 무거운 형이 선고된 겁니다.”
  
  혹을 떼러 갔다가 오히려 혹을 붙인 꼴이었다. 변호사 생활에서 그 반대의 경험도 있다. 오래 전 아는 목사의 소개로 전과 오십범의 소매치기 사건을 맡은 적이 있었다. 구치소를 찾아가 만난 그는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이놈의 버릇은 죽기 전에는 못 고칩니다. 마음으로는 안한다고 해도 손은 어느새 남의 주머니 속을 헤집는 경우가 있어요. 마음 따로 손 따로죠. 이놈의 손모가지를 도끼로 자르기 전에는 나는 못 고쳐요.”
  그의 말은 진심인 것 같았다.
  
  “지금 저에게 하신 말을 판사에게 그대로 한번 해 보면 어떨까요?”
  내가 그에게 제의했다. 차라리 진실과 그의 솔직한 마음을 재판장에게 보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에이 그렇게 말하면 더 형이 나오죠.”
  범죄인들이 판사에게 하는 말과 변호사와 둘이 있을 때 하는 말이 달랐다. 범죄의 곰팡이는 마음속 음습한 곳에서 자란다. 그걸 빛에 드러내면 없어지는 수도 있었다.
  
  “그래도 한번 해 보세요.”
  그의 내면에 분명 어떤 참회가 있는 것 같았다. 솔직하면 판사의 내면에 미세한 감동이라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중형은 피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재판정에서 그는 판사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자신의 죄성을 고백했다. 재판은 간단히 끝났다. 그 소매치기를 위해 기도했다. 소개한 목사도 기도했다. 그 사건의 선고 전날 재판장이 나를 개인적으로 판사실로 불러 이렇게 말했다.
  
  “양형 기준상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사건이지만 나는 그 사람을 석방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거 얼마 안 되지만 그 노인에게 전해 주세요.”
  그는 돈이 든 봉투를 내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법정에서 그에게 집행유예의 선고를 했다.
  
  변호사로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얻은 노하우가 있다. 마음만 비우면 판사의 눈빛이나 말 한마디에서 결론이 보이기도 했다. 판사들이 아무리 포커 페이스로 표정을 관리해도 돈 욕심에 매이지 않으면 그들의 내면이 들여다보이곤 했다. 나는 판사가 혼자 결론을 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의 마음을 지배하는 어떤 존재가 있는 것이다. 흔히들 로비로 판사의 마음을 사려고 하지만 내게는 강력한 다른 방법이 있다. 그건 진실과 기도였다. 미신 같다고 비웃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나는 확신한다. 인간의 간절한 마음은 하늘에 닿는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섭리를 이루신다.
  
[ 2022-11-16, 22:0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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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타임즈   2022-11-16 오후 10:57
Ai 판사가 公正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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