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들이 커피만 먹어 다른 차(茶)들이 남아요"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인 장 발장 같은 사람이 출소해도 대한민국은 바로 밥과 잠자리를 정부에서 준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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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퍼주는 사회>
  
  노숙자 합숙소를 찾아가 법률상담을 한 적이 있다. 거기서 한 노숙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그거 안 내도 되는 거죠? 그냥 있으면 정부가 다 갚아주는 거 아닌가요?”
  “돈을 꿨으면 갚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현재 돈이 없으면 일해 벌어서 갚아야 하구요.”
  법 이전에 당연한 상식이었다.
  
  “이상하네? 가난한 사람은 정부가 다 갚아주고 다 먹여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변한 의식구조였다. 건설노동자 출신이라는 그는 일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노동 능력을 갖춘 것 같았다. 노숙자 합숙소의 담당자가 내게 홍차와 쌍화차 가루가 들어있는 병과 비닐에 담긴 마른 누룽지를 선물로 주면서 말했다.
  
  “노숙자들이 커피만 먹어요. 그래서 다른 차들이 남아 돌아요. 밥도 너무 남아서 누룽지로 만들었어요. 변호사님이 좀 가져다 드세요.”
  
  내가 거꾸로 그들의 먹거리를 선물로 받았다.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복지는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 와서 청소를 해주는 아주머니가 아들의 일자리를 부탁했다. 사지가 멀쩡한데 나이가 마흔이 넘도록 일하지 않고 게임방에서 산다는 것이다. 그 아들에게 산에서 나무를 심는 일을 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보았다. 농장을 하는 친구가 일손이 딸려 사람을 구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들인 그 청년은 거절했다. 자기는 노동을 하기 싫다고 했다. 그런 사람도 나라에서 먹여주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 삼십육년간 이민 생활을 하다가 잠시 귀국한 친구를 만났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세탁소를 해 왔는데 건물주가 나가래서 가게 문을 닫았어. 그러니까 정부에서 돈을 주는 거야. 요즈음은 그 돈으로 살고 골프까지 치니까 정말 편한 거야. 그동안 왜 그렇게 죽기 살기로 일해왔는지 모르겠어.”
  
  미국 정부의 돈이 그의 사고를 바꾸어 버린 것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미국은 주거비가 비싸고 모기지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는 경우가 많아. 그때부터 바로 노숙자가 되는 거야. 처음에는 살림을 다 가지고 나오는데 하나씩 버리기 시작하지. 정부가 주는 돈으로 살면서 점점 적응이 되는 거야. 세금 낼 일도 없고 일 안해도 되고 편한 거야. 한국인들은 처음에는 노숙자가 되는 걸 부끄러워했는데 이제는 한국인 노숙자들도 엄청 늘어났어. 우리 아파트 앞도 노숙자들이 인도를 점령하고 있어. 요즈음은 맥도날드도 화장실 문을 잠가놔. 손님이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면 그때 열쇠를 줘. 화장실이 없으니까 도로에 노숙자들의 똥 오줌이 가득해.”
  
  미국 사회의 미세한 한 조각이 보이는 것 같았다.
  
  며칠 전 김진홍 목사가 썼다는 시국문이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는 걸 봤다. 그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성경에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일하지 않는 자에게 마구 퍼주고 있다. 북한에 퍼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면 일하는 자만 바보가 된다. 국민은 감나무 아래 누워서 입만 벌리고 있으면 된다. 이것을 고상한 말로 무상복지라고 한다.’
  
  반면에 정말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돕는 좋은 복지도 보았다.
  
  거창의 외곽에서 혼자 살고있는 팔십대의 친척 누님이 있다. 자식도 없고 돈도 없다. 더 이상 일을 할 수도 없다. 그 누님이 이런 말을 했다.
  
  “정부에서 돈도 주고 쌀도 준다. 주민센터 공무원이 가끔 들여다 봐 주고 급할 때 119구급대가 자식보다 낫다고 한다. 그런대로 나같은 사람 살 만한 세상이다.”
  
  노인복지가 잘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몇 년 전 암에 걸려 혼자 죽어가는 가난한 시인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저 같은 가난한 사람이 이런 좋은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목욕을 시켜주는 사람도 있고 밥과 반찬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모르지만 그의 복지정책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몇 달 후 그 시인이 죽었다. 아픈 사람에게 좋은 나라가 된 게 확실한 것 같다.
  
  감옥에서 십오년 만에 출소한 살인죄를 저질렀던 사람이 있었다. 내가 조금씩 영치금을 보내주던 사람이었다. 그가 내게 전화를 걸어 이런 말을 했다.
  
  “주민센터를 찾아갔더니 일자리를 마련할 때까지 매달 돈을 지원해 주겠다고 하더라구요.”
  
  전과자들을 위한 복지 예산도 책정되어 있었다.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인 장 발장 같은 사람이 출소해도 대한민국은 바로 밥과 잠자리를 정부에서 준다. 노인이나 병자 그리고 당장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전과자에게 복지혜택을 주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 됐다는 얘기로 들렸다.
  
  일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이웃사랑이다. 그러나 놀고먹는 근성을 만들어주는 복지는 나라를 망친다. 톨스토이의 소설에서 노동하는 사람을 식탁의 상석에 앉히듯 일하는 사람들을 돕는 복지사회로 가야 하지 않을까.
  
  
  
[ 2022-11-20, 05:5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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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타임즈   2022-11-20 오전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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