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의 금수저라도 결국은 운(運)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댓글에서 ‘재능의 금수저’란 단어를 봤다. 좋은 머리를 가지면 정말 하루아침에 일등을 하는 것일까. 작은 노력으로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일까.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몇 명의 모임이 있다. 그들이 재능의 금수저라면 나는 흙수저쯤 될 것이다. 그들은 서울법대와 고시에 합격했다. 그것도 수석으로 신문을 장식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앞서가는 엘리트 판사로 고위 법관직까지 올랐다. 그중 검사 출신이 한 명 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서울법대 시절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근무했지. 그런데 사무관보다 검사가 좋아 보이는 거야. 사법고시를 봐서 검사가 됐어. 검사가 되니까 사무관보다 재미 없더라구. 사무관은 국가 정책을 만지는데 검사는 하루종일 잡범만 상대하더라구. 이번에는 허버드 대학에 가서 공부하는 게 좋아 보이더라구. 그래서 유학가서 좋은 성적을 받았지. 돌아올 무렵 방송국에서 큰 시사프로그램을 맡으라고 하더라구. 그걸 하니까 얼굴이 알려지고 인기가 상승하는 거야. 주위에서 서울시장을 하고 대통령을 하라고 하더라구.”
  
  승승장구하는 사람에게는 악령이 시샘을 하는 법이다. 그는 구름 위로 오르던 그는 스캔들로 추락을 했다. 그가 이런 인생의 결론을 말했다.
  
  “내가 사무관을 할 때의 동료들은 대부분 장관을 지냈어. 검사 동료들 대부분이 검찰총장이나 법무장관을 지냈지. 하버드 동창들은 대형 로펌을 성공시키거나 대학총장을 지내기도 했지. 그런데 더 좋은 걸 찾아서 새처럼 이 가지 저 가지 날아다니던 나는 그 어떤 것도 끝을 보지 못한 것 같아.”
  
  금수저인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았다. 그는 운이 따라주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재능 금수저인 그들의 노력이 궁금했다. 천재면 공부하지 않고도 일등을 하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사법고시에서 수석을 하고 판사 시절 독일에 유학을 가서 최단 기간 내에 박사학위를 따서 독일인 교수들을 경악하게 한 분에게 어떻게 공부했느냐고 물었다.
  
  “한여름 더울 때 다락방에서 공부했었어.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궁둥이 살이 물러서 팬티하고 붙어버린 거야. 그래서 병원에 가서 피부하고 범벅이 된 섬유 조각들을 떼어냈어. 책에 몰입하다 보니까 나도 그렇게 된지 몰랐지. 그리고 판사 시절 독일 유학에서 박사학위를 빨리 따게 된 배경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독일어가 재미있었어. 독일어 단어와 문장을 외우는 게 취미였어. 그게 도움이 되더라구.”
  
  그에게서 나는 몰입을 배웠다. 앞에 책을 놓고 건성으로 보는 건 공부가 아니었다. 또 그는 재미를 말했다. 재미로 하는 공부를 따를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다만 그도 마지막 대법관을 앞두고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를 시기한 사람들의 모략으로 그는 법원을 떠났다. 나는 그 내막을 안다. 그는 온유하고 청렴한 판사였다. 재능의 금수저라도 결국은 운인 것 같았다. 그 모임의 좌장격인 고교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그는 성품이 온유하고 제일 앞서가는 엘리트 판사였다. 대통령들이 그를 좋아해서 청와대로 불러 항상 옆에 두고 자문을 구했었다. 그 역시 기본은 공부 선수고 재능의 금수저를 타고 났다. 그가 이런말을 했다.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 거의 자리를 뜨지 않았어. 나도 모르는 등이 의자 등받이에 쓸려서 입고 있던 런닝셔츠까지 올들이 해지고 풀린 거야. 고향 집에 갔더니 어머니가 등 부분이 해진 내 옷들을 보고 우시더라구. 머리가 좋아서 하루아침에 일등을 했다? 그건 거짓말이야. 노력이 재능이야. 다만 공부를 잘하려면 요령이 있어. 어떤 책을 대하든 바로 그 핵심을 포착하는 능력이야. 그게 없으면 일등은 할 수 없을 걸.”
  
  그 역시 마지막에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총리급으로 내정이 됐었다. 그러나 발표 하루 전 대통령 측근의 모략으로 임명이 취소됐던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얼마 전 그 모임의 멤버중 한 분 부부가 내가 묵는 실버타운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사법고시 수석을 하고 사법연수원에서도 수석을 했다.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그 부인이 이런 말을 했다.
  
  “남편이 헤이그에서 칠 년간 국제형사재판관을 했어요. 매일 새벽 세 시면 일어나 영어로 된 그 두꺼운 형사기록을 자로 줄을 치면서 공부했어요. 남편은 그런 사람이에요.”
  
  나는 그가 당연히 대법관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동서가 대법관이 됐다. 같은 집안에서 대법관이 두 명 나온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는 그 자리에 가지 못했다. 재능의 금수저들을 보면서 나는 알았다. 어떤 재능도 운을 능가하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건 하늘에 계신 그 분의 뜻인 것 같다. 고시에 열 번 떨어지고 헤매던 한참 후배가 대통령이 됐다. 가난한 공장노동자 출신이 변호사가 되고 여당 대표가 됐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도 했다.
  
[ 2022-11-23, 22:5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