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라, 직접, 장관이
대통령 3명이 다섯 번 북한엘 가면서도 그들은 풍산개만 데려왔다. 국군포로의 '국'자도 꺼내지 않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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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부장관이 보자는데도 꼼짝들을 못 하신다.
  오늘 오후에 가겠다고 했던 어르신도 갑자기 몸이 나빠져 못 가신단다.
  다니실 수 있는 또 다른 어르신은 지난주에 코로나로 고생하시다 나아지셨는데 기운이 없으셔서 못 움직이시겠단다.
  너무 늦었다.
  3~4년 전만 해도 모시면 제주도도 같이 가시고, 모이면 마이크 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도 구성지게 부르셨는데…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러나 이제라도 박차를 가해준다면 어르신들 마음이 조금은 풀리고, 나라가 어떠해야 하는지, 국가정체성이란 무엇인지, 조금은 보여줄 수 있으련만…
  어르신이 장관을 보러 못 나오시면, 장관이 그 비좁고 그 누추한 어르신들 댁으로 직접 찾아가면 좋으련만…
  
  1961년,
  아오지탄광에서
  어느 국군포로가
  한국으로의 송환과 처우개선을 주장하다 총살당하게 되자, 총살 직전에 "이승만 만세"를 부른 후부터 모든 국군포로들을 총살할 때는 입에 자갈을 물리기 시작했단다.
  
  1989년,
  유선탄광에서 평생 석탄을 캐던 강원도 정선 출신의 국군포로 이순식씨는 아내와 딸 둘을 데리고 탈북하다 중국 공안에 잡혀서 일가족이 전부 총살당했다.
  그것도 모든 국군 포로들과
  탄광마을 사람들 앞에서.
  압록강 자갈밭에 모아놓고.
  이렇게 그들은 죽으면서도 "이승만 만세"를 불렀고, 노구를 이끌고 탈북하다 잡혀 총살을 당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정부는?
  아무도 데리러 가지 않았다.
  대통령 3명이 5번 북한엘 가면서도 그들은 풍산개만 데려왔다.
  국군포로의 '국'자도 꺼내지 않고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풍산개만 애지중지하다 그마저 사료값 운운하며 버렸다.
  
  스스로 탈북해온 국군포로들은 제대로 대접조차 안했다.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아니 장막 속에 가두어버렸다.
  이들의 존재를 국민 앞에 알리지도 않았다.
  죽어도 부고조차 못 내게 가로막았다.
  학교에서는 단 한 자도 국군포로를 가르치지 않았다.
  왜?
  도대체 왜?
  
  이제라도 신경을 쓰겠다니 다행이지만, 찾아가라, 직접, 장관이.
  움직이지 못 하는 93세의 탈북 국군포로 어르신들을 장관실로 부르지 말고, 직접 찾아뵙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라.
  그래야 나라가 바로 선다.
  세미나?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이 했다.
  할 때는 한번도 안 오더니
  이제는 도처에서 세미나들을 앞다투어서 하루가 멀다하고 한다.
  국군포로?
  지금은 세미나할 때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
  행동으로!
[ 2023-09-11, 09:5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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