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 간 사람들의 對人관계에 대하여
우상이 됐던 재벌회장이 단 한 명이라도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권력을 잃은 대통령이 애착을 가지고 누구에겐가 마음을 드러낸 적이 있을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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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급할 때 내 전화를 받아줄 사람은?>
  
  판사와 법대 학장을 지낸 고교 후배와 차를 나누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아주 절실한 순간 전화를 걸면 급하게 달려와 줄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 것 같아?”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한 명도 없을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나도 그와 똑같은 감정이었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오랜 감옥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봤다. 긴긴 세월 누군가 면회 한번 오지 않는 지독히 고독한 존재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은 석방이 되도 혼자였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교도소 앞마당에서 어디로 갈지 정처가 없다. 그런 사람들이 공기마저 메마른 빈 방에서 목을 매고 죽는 걸 종종 봤다. 그들은 죽기 전에 한없이 울었다. 어떤 슬픔이었을까.
  
  수십만 명의 우상이었던 재벌 회장이 있다. 성공 과정을 강연하면 청중들의 갈채가 쏟아졌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었다. 그 회장이 감옥으로 들어간 지 십 년이 넘었다. 사업가들은 교도소의 담벽 위에서 위태롭게 걷는 사람들이다. 어둠침침한 감옥으로 가서 그에게 물어보았다. 옆에 몇 명이 남았느냐고. 그는 돈이 떨어지니까 단 한 명도 없다고 했다. 그는 가족도 없었다. 그를 신(神)같이 모시던 그 많은 사람들은 무엇이었을까.
  
  임기가 끝나고 나서 힘을 잃은 대통령이 뇌물 사건으로 구속됐었다. 그의 가족이 우연히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와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가족은 대통령에게 목숨걸고 충성하겠다던 수많은 장관들 중 그 누구 하나 전화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연락하면 전화를 받지 않거나 피한다고 했다.
  
  대통령 재임중에는 입에 혀같이 굴던 재벌 회장들이었다고 한다. 임기가 끝나도 영원히 형님으로 모시겠다는 약속들을 했었다고 한다. 그런 재벌들이 대통령직에서 퇴임을 하자마자 뇌물을 바쳤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는 것이다.
  
  감옥에 가는 것은 인생의 막장으로 굴러떨어지는 것과 흡사하다. 불행이 닥친 인간에게 진심으로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물론 명사나 권력가의 경우 인사치레로 면회를 가 주는 사람은 있었다. 그건 후일 자신을 위한 행동이지 알맹이인 진심이 없었다.
  
  감옥에 있는 사람들의 인간관계를 보면서 나는 많이 배웠다. 사교적이고 형식적으로 사람들을 만날 필요가 없음을. 진심으로 내 말을 들어주고 도와줄 단 한 사람만 있어도 행복한 것을 말이다. 그런 경우를 봤었다. 감옥에 들어가 오랜 세월 징역이 예정된 조폭 두목이 있었다. 충성을 맹세하던 부하들이 다 떨어져 나갔다. 그 세계도 정으로 뭉친 게 아니었다. 그런데 목숨을 걸고 그 조폭 두목을 돕는 시인 한 명이 있었다. 산 속의 낡은 집에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왜 그렇게 헌신적으로 돕느냐고 물었다. 그 조폭 두목은 질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시인은 내게 이렇게 대답했다.
  
  “어려서 서울에서 제일 가난한 달동네에서 같이 컸죠. 저는 성장해서도 가난했고 그 친구는 조폭 두목이 됐어요. 제가 어느 날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았어요. 급히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었죠. 그때 조폭 두목인 친구가 와서 나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어요. 그리고 수술을 하게 해 줬죠. 남들이 나쁜 놈이라고 다 그 친구를 손가락질 해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거에요. 그 친구가 살인범이라고 해도 나는 끝까지 도울 겁니다.”
  
  진한 사랑을 베풀어야 그 사랑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 말을 들으면서 우상이 됐던 재벌회장이 단 한 명이라도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권력을 잃은 대통령이 정말 애착을 가지고 누구에겐가 마음의 바닥을 드러낸 적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내가 돈이 절실했던 적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우정을 나누어왔다고 생각한 친구에게 돈이 있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친구에게 돈을 부탁했다.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적금을 해약하면 이자를 손해본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 손해를 나중에 보상해 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거절했다. 오랜 시간의 관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건 우정이 아니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허물없는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그는 내 말을 듣자마자 알았다고 하면서 바로 나의 계좌로 송금해 주었다. 고마웠다. 내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존재와 하나님이 친구로 보내준 사람은 다른 것 같았다.
  
  변호사를 처음 시작할 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상상해 봤었다. 황량한 인생 들판 깊은 구덩이에 사람이 빠져있다. 울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쳐도 주위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런 때 그에게 나타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분이 보내는 그의 친구가 되어 그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고 싶었다. 그런 일도 괜찮은 게 아닐까.
  
  
  
  
[ 2023-09-14, 10:2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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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르는강물처럼   2023-09-14 오후 12:56
어쩌다 엄 변호사님의 칼럼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글들이 그동안 제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만들고 많은 것들을 생각 하게 합니다.
그후로 항상 재미와 더불어 새로운 느낌으로 일고 있습니다. 건승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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