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의사(義士)의 후회
"지금 생각해 보니까 금 거북이한테 속은 겁니다. 나는 죽기 싫습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역사의 참지식>
  
  삼일운동 당시의 재판기록을 읽은 적이 있다. 민족의 지도자들이 피고인이 되어 법정에 서 있었다. 그들을 변호하기 위해 일본인 변호사도 있었다. 일본인 판사와 친하다는 변호사였다. 일본인 재판장이 삼일운동의 대표인 손병희 선생에게 물었다.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십년 전 한일 합병을 찬성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일등국과 합병을 하면 잘살 수 있는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합병하고 십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돌려달라는 것입니다.”
  
  그가 선임한 일본인 변호사는 그를 거들었다.
  
  “시위를 통해 나타난 조선인들의 뜻은 조선의 독립입니다. 여론이 그렇다면 일본은 조선을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 재판장은 다시 손병희에게 물었다.
  
  “지금 조선이 독립된다면 스스로 국가를 유지해 나갈 능력이 있다고 봅니까?”
  “지금으로서는 당장 그 능력은 없다고 봅니다.”
  
  재판장은 그 옆에 서 있던 민족의 대표였던 최린을 앞으로 나오게 했다. 초창기 일본유학생이었던 그는 동경시내에서 조선왕을 희롱하는 듯한 인형극을 보고 조선 학생들을 모아 폭동 비슷한 데모를 했던 다혈질이었다. 그는 삼일운동에서 천도교 조직을 움직인 인물이었다.
  
  “최린 피고인은 조선은 지금 독립한다면 독자적 생존 능력이 있다고 봅니까?”
  “지금 당장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힘을 키워간다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나는 그런 재판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조작된 진술 같지는 않았다. 메이지와 다이쇼 시대의 일본 언론과 사법부는 개화된 일본 민주주의를 지키는 기둥이기도 했다. 한일합병 당시 일본 언론은 한국에서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여론조사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반대의사가 그렇게 높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었다.
  
  나는 국립중앙도서관의 기록 창고에서 우연히 이봉창 의사의 재판기록을 본 적이 있었다. 이봉창 의사는 일본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고 사형에 처해진 애국자였다. 예심판사가 그에게 질문하고 대답을 적은 조서들이 두툼했다.
  
  “왜 조선의 독립을 요구합니까?”
  예심판사가 그에게 물었다.
  
  “차별 때문입니다. 영등포역 공사장에서 노동을 했는데 일본 노동자와 임금이 달랐습니다.”
  
  “일본인 노동자와 노동의 질적 차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높은 기술을 더 쌓고 정직하고 성실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당신은 동경에 와서 노동을 하면서 왜 절도 행각을 벌였습니까? 당신에게 조선이 독립되어야 한다는 진지한 사상이 있기는 한 겁니까?”
  
  일본인 예심판사에게 여러 날 조사를 받던 이봉창의 진술이 바뀌어 있었다. 그가 한 이런 진술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동경에서 상해로 가고 그곳에서 일자리를 얻으러 임시정부를 찾아갔다가 거기서 '금거북이'를 만났습니다. 금 거북이는 나에게 돈도 주고 잘해줬습니다. 금 거북이는 나에게 역사에 남을 위대한 영웅이 되지 않겠느냐고 유혹했습니다. 거사를 위해 동경으로 가기 전 금 거북이는 러시아 식당에서 내게 술을 사고 돈을 주었습니다. 헤어질 때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습니다. 금 거북이는 술에 취한 내게 글이 적힌 판을 목에 걸어줬습니다. 그리고 그가 손에 쥐어주는 폭탄을 들으며 포즈를 취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금 거북이한테 속은 겁니다. 나는 죽기 싫습니다.”
  
  '금 거북이'는 김구 선생을 말하는 것이었다. 재판기록을 통해 본 삼일운동과 일본 천황에 대한 저항은 교과서를 통해 내게 주입된 역사와는 차이가 있었다. 등뼈같이 주체성 같이 내게 들어있던 교과서의 내용들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일제강점기 발간됐던 동아일보와 월간잡지 ‘신동아’의 글과 기사들을 거의 다 읽어보았다. 동경에서 발행된 시사잡지들도 읽었다. 그 시절 한국 작가들이 쓴 소설들도 많이 읽었다. 특정된 역사관을 강요하는 교과서 보다 그 쪽이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머리 속에 들어있던 것들이 참지식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의 머릿속은 몇몇 역사학자의 관점으로 엮은 평가와 그들이 왜곡한 사실로 꽉 들어차 있었다. 나의 주관을 만들 틈도 없이 남의 사상만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것을 후회했다. 나는 뒤늦게 역사 교과서를 통해 배운 것중 쓰레기들을 버리려고 노력했다. 그런 것들을 버려야 비로소 자기의 것인 참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 2023-11-28, 22:2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흐르는강물처럼   2023-11-30 오후 12:42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이네요. 정확한 진실이 후대에 전해져야 그게 진정한 등불이 될텐데. . .
  白丁   2023-11-29 오후 8:51
윤봉길은 또 어땠을까.
  RedBuster   2023-11-29 오전 4:38
동경에서 일본인 변호사들이 서울에 와서 삼일운동 민족대표자들의 재판에서 변호인을 맡았다는 사실이 뭔가 이상한 그림으로 느껴진다. 조선인 변호사들이 죽창가 부르듯 주먹으로 허공에 '펌프'질을 하며 열띈 변호를 하는 법정 그림이어야 하는데 . . . . 조오국, 문죄인, 이죄명 류의 인간들이 이 글을 읽어 봤으면 쓰겠다.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