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을 기준으로 지지할 입후보자를 선택해야

한나라당에서 이름을 바꾼 새누리당은 당명만 바꾼 것이 아니라 사상적 경향에서도 무시 못할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 관련 전문가들이 매스컴에 등장하여 유권자들의 지지 입후보자 선정 기준에 관해 이런 저런 말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입후보자들이 제시하는 정책(공약)을 기준으로 해서 지지할 입후보자를 선정하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입후보자의 인물 됨됨이를 기준으로 지지할 입후보자를 선정하라고 말한다. 많지는 않지만 정당들의 사상을 기준으로 지지할 입후보자를 선정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지할 입후보자를 올바로 선정하는 것과 관련하여 모든 국가의 모든 선거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보편적 기준은 없다. 지지할 입후보자를 선정하는 올바른 기준은 각 선거가 진행되는 시점에 있어서의 국가의 정치상황에 비추어 정해진다.

선거가 정당들이나 입후보자들 간의 사상의 차이도 분명하지 않고 정책의 차이도 분명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진행될 경우엔, 지지할 입후보자를 선정하는 올바른 기준은 입후보자의 인품이다. 선거가 정당들 간의 사상의 차이는 현저하지 않고 정책의 차이만 현저한 상황 속에서 진행될 경우엔, 지지할 입후보자를 선정하는 올바른 기준은 입후보자들의 인품이 아니라 정당들의 정책이어야 한다. 선거가 정당들 간의 사상의 차이가 현저한 상황 속에서 진행될 경우엔, 지지할 입후보자를 선정하는 올바른 기준은 입후보자들이 소속된 정당들의 사상이 되어야 한다.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들 간의 사상적 입장의 차이가 현저할 경우에는 정당들의 정책이나 입후보자들의 인품은 중요한 선택기준이 되지 못한다. 정당들의 정책이나 입후보자의 인품은 정당들이 취하고 있는 사상적 입장에 종속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당들이 선거에서 내건 정책공약들은 그 정당이 가지고 있는 사상적 입장에서 파생된 것이며, 겉으로는 동일한 정책공약이라도 그것이 의미하는 실질적인 의미는 사상적 입장에 따라 천양지차가 있게 된다.

이를테면 모든 정당들이 다같이‘평화’정책을 공약한다고 할 경우, 그‘평화’의 의미는 정당들의 사상적 입장에 따라 상이해진다. 어떤 정당의 평화는‘적에게 투항하는 평화’를 의미하고, 어떤 정당의 평화는‘적과 평화공존하는 평화’를 의미하고, 어떤 정당의 평화는 ‘적을 정복한 평화’를 의미한다. 이는 선량한 노인이 어린애를 예쁘다고 쓰다듬는 것과 유괴범이 어린애를 예쁘다고 쓰다듬는 것이 외형상으로는 동일한 행동이지만 그 실질적 의미는 크게 다른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오는 11일에 투표하게 되는 우리나라 총선에 입후보자들을 낸 정당들의 사상적 입장의 차이는 매우 크다.

한국 정당들의 사상적 분포도에서 가장 왼쪽에 위치하는 통합진보당은 1980년대 후반부터 사회주의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온 사람들이 주도하는 정당이다.

통합진보당 주도세력의 대부분은 자기들이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한다는 사실을 집단적으로 천명한 바는 있어도, 그 혁명 포기했음을 집단적으로건 개인적으로건 분명하게 선언한 적이 없다. 통합진보당의 강령에는 이 나라의 사회주의화를 추구할 것을 명시적으로 천명한 구절은 없지만, 그러한 강령은 통합진보당의 사상경향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들에게 있어서 강령은 합법성 확보를 위한 최소강령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통합진보당이 결성되기 전 민노당은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 세력 내에서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 즉 종북세력이 당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진보당은 민노당계가 주도하고 있는 정당이므로, 통합진보당 역시 종북세력이 이끌고 있는 정당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통합진보당 다음으로 왼쪽에 있는 민주통합당은 과거의 민주당 및 그 계통의 정당들과 질적으로 판이한 정당이다. 2012년 1월 노무현추종세력과 기존 민주당이 합당하는 통합전당대회를 거치면서 당의 주도세력이 구조적으로 변해버렸다.

1995년부터 2011년 12월까지의 기간 중에 현재의 민주통합당의 선조 정당들에 해당하는 정당들이 시기별로 다양한 당명을 가지고 존재했었다. 그 정당들은 모두 호남의 지역감정을 중심으로 형성된 호남 정치세력과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세력 내의 김근태-장명국계 및 전대협계가 접합하여 이루어진 정당들이었다. 김근태-장명국계와 전대협계는 아무리 부드럽게 표현하드라도 친북세력이다. 호남 정치세력은 좌익사상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친북세력과의 접합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김대중이라는 정치마술사의 마술 덕분에 그것이 이루어졌다.

그러한 접합은 2012년 1월의 통합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사실상 해체되었다. 당권에서 50% 정도는 유지하던 호남 정치인들은 당권에서 사실상 배제되고, 당권 블럭 중에서 다수파가 된 김근태-장명국계와 전대협계는 이번 총선의 당 입후보자 공천과정에서 호남 지역의 우경 정치인들을 청소해버렸다. 민주통합당은 호남지역의 우경 정치인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정당, 다시 말해서 친북세력과 그들에 대해 수용적 태도를 가진 호남 정치인들의 정당이 되었다.

민주통합당의 주된 지지기반인 호남의 유권자들은 사상의 좌우를 떠나 호남의 지역감정에 입각하여 그 당을 지지하는 데 반해, 민주통합당의 당권 블럭은 호남지역의 우경 유권자들을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정당들의 사상적 분포도에서 오른쪽에 위치한 정당은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이다. 자유선진당은 출발부터 충청도 지역정당으로 출발한데다가 이번 총선에서는 그 지역정당적 성향을 더욱 강하게 드러내고 있어서 그 당의 사상적 경향은 진지하게 언급할 대상이 못 된다.

한나라당에서 이름을 바꾼 새누리당은 당명만 바꾼 것이 아니라 사상적 경향에서도 무시 못할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우선 당 정강에서‘보수’란 단어를 삭제하려고 기도했고(실제로는 삭제가 미수에 그쳤다), 복지에 대한 소극적 입장을 적극적 입장으로 바꾸고,‘북한을 자유민주주의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구절을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지속한다’는 구절로 대체하는 의미 있는 변화를 단행했다. 다음으로 이번 총선에 출마할 당의 입후보자를 공천하는 과정에서 반좌익투쟁에 앞장서온 사람들을 모조리 청소해버렸다.

새누리당의 이러한 조치들은 주로 지지표 확대를 위한 선거공학적 차원에서 취해진 것이기는 하지만, 사상적 경향의 변화도 함축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인적 구성의 면에서 볼 때는 한나라당의 그것과 본질적 차이는 없는 우익성향의 정당이다. 그러나 정강·정책의 면에서는 한나라당과 상당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으며, 사상투쟁에 소극적이고 민생문제해결에 많은 역량을 투입하려는 정당으로의 변신을 추구하고 있는 정당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총선에 참여하고 있는 주요 정당들의 사상적 경향이 이처럼 크게 다르기 때문에 총선의 결과는 이 나라의 정치체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유권자들이 지지 후보를 올바로 선택하려면 정당들의 사상적 경향을 기준으로 삼아서, 유권자 자신의 사상적 경향과 일치한 정당의 입후보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지적하고자 한다.(konas)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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