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자나 노숙자를 위해 밥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단체를 도와준 적이 있다. 출발이 참 소박했다. 재래시장 안의 재단사, 옷가게 주인, 고물상 주인 등이 한 달에 조금씩의 돈을 각출해서 쌀을 사기도 하고 반찬값을 내놓기도 했다. 그 활동의 중심에 있는 사람도 헌신적이었다. 폭력 전과가 있던 그는 목사가 되어 거리의 바닥에 버려져 있는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수은주가 영하 십도 아래로 내려가고 칼바람이 불던 일월의 어느 날이었다. 전과자 노숙자들의 목자가 된 그는 교통사고로 심하게 다친 사람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내게 밤중에 전화를 건 것이다. 입원비가 없으니 보증을 서 달라는 것이다. 밤중에 일어나 옷을 챙겨입고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쯤 걸리는 변두리의 병원으로 갔다. 원무과에 가서 입원보증서류에 사인을 한 후 중환자실로 갔다. 육십대 중반쯤의 노숙자가 침대에 눕혀져 있었다. 나는 그의 치료비는 소송을 통해 자동차 보험회사에서 받아야 한다고 그에게 알려 주었다.
법률서류에 환자의 서명이 필요했다. 환자는 서류에 사인하기를 주저했다. 순간 불쾌감이 일었다. 내가 교통사고 환자들을 찾아다니는 악덕 변호사로 오해받은 느낌이었다. 돈을 받고 소송을 해주겠다는 게 아니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내가 제시한 서류에 사인을 하면서 은밀한 얘기를 할 게 있다는 표정으로 내게 손짓했다. 내 귀를 그의 입 가까이 가져갔다.
“나중에 소송에서 나온 돈을 저 사람이 가로챌지 모르니까 전부 나에게 직접 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속으로 화가 끓었다. 그는 교통사고를 당한 후 시립병원에 갔었다. 병원에서는 노숙자 신분인 그를 행려병자로 취급해 사실상 방치하고 있었다. 다친 뼈에서 고름이 나오고 있었다. 그가 묵던 노숙자 시설의 담당자인 목사가 그를 힘들게 찾아내 그나마 좋은 병원으로 옮겨 입원시킨 것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그의 의심과 불신을 보면서 나는 한밤중에 일어나 냉기 서린 바람을 맞으면서 왜 그곳에 와서 보증을 서고 무료변호까지 제의하나 회의가 일었다. 잠시 후 그 목사와 나는 속을 풀기 위해 병원 근처의 허름한 국밥집으로 들어가 마주 앉았다.
“왜 저런 사람을 위해 한밤중에 이래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회의가 듭니다.”
내가 솔직한 심정을 그에게 털어놓았다. 그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더니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변호사님은 그 노숙자 노인을 보고 일을 하십니까? 저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또 폭력 전과가 여러 개 있고 오랫동안 징역을 살았습니다. 목사라고 해도 가방끈이 짧아서 제대로 된 명문 신학교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을 할 때 사람을 보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보고 해야 한다는 건 압니다. 많이 배운 변호사님은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뒤통수를 쇠망치로 내려치는 듯한 그 한 마디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껍데기 믿음이고 그는 고통과 몸으로 얻은 진리의 알맹이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성자(聖者) 같아 보이는 그에게 다음부터 절대 복종했다. 그보다 위인 나이도 배움도 의미가 없었다. 그가 부탁하는 무료변호 사건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여겼다. 소박한 사람들이 시작한 그 단체는 세월이 흐르면서 커지고 시설도 확장됐다. 정부에서의 지원금이 풍족하게 내려왔다. 그 목사는 힘들고 어려운 전과자 노숙자들의 대부가 되어 사회 명사급으로 존경을 받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가 변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진 시설을 관리하다 보니까 하나님을 말하던 그의 입에서 돈을 걱정하는 소리가 더 많아지는 것 같았다. 그를 만나면 큰 돈을 내지 못하는 나는 죄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 날 내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시설의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이사장을 시키면 안된다고 말하고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확인해 보니까 사실이었다. 그는 이사장으로 그 단체의 사실상의 소유자가 되고 싶은 집착이 강한 것 같았다. 나는 기도했다. 하나님의 이런 음성이 내면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모든 피조물로부터 위로와 보상을 찾으려고 하지 말라. 그래야 하나님인 나를 대하는 참 맛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무엇을 했다고 자만하지 않을 것이요, 남이 뭐라고 한다고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담담하라.’
성경은 그런 경우 주저하지 말고 신발을 털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다. 나는 그 단체를 소리 없이 나왔다.
한 노숙자 후원 단체 체험기
-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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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03, 08: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