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7일) 배달된 조선일보를 읽다가 전날 열렸던 의료파행 관련 국회 청문회 기사가 한 줄도 실려 있지 않는 걸 보고, 혹시 서대문 지역 배달판이라서 이런 건지 하고 오늘 편의점에 가서 몇 개 신문들을 사 가지고 와서 확인까지 했다. 의료대란으로 치닫고 있는 이른바 의료개혁에 비판적이었던 동아일보는 머리 기사였다.

<교육부 "의대 2000명 배정 회의자료 폐기">가 제목이었다. 뽑음글은 <국회 교육위-복지위 연석 청문회, 교육부 "유출로 갈등 일까 우려 컸다", 회의록 폐기 논란에 "참고자료 파쇄", 野 "공공기록물 관리법 위반" 공세>였다. 이런 청문회였다면 조선일보가 한 줄도 쓰지 않을 이유가 있어 보였다(조선일보 인터넷판엔 관련 기사가 실렸는데 정부 측 변명을 자세히 소개했다).

지난 4월16일 조선일보는 의대 신입생 정원을 파격적으로 많이 배정 받은 충북대학교 고창섭 총장을 인터뷰했었다. 고 총장은 "의대정원 4배 늘어도 교육 질 안 떨어질 자신 있다"고 말했다는 게 조선일보 제목이었다. 그는 "시설비 등으로 4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는데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늬앙스였다. 16일 국회 청문회에는 고 총장이 증인으로 나왔고 이 대학에 근무했던 배장환 전 교수도 증인이었다. 심장내과 권위자인 배 전 교수는 "제대로 교육하려면 1조 원 이상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청문회의 문답 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정보는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의료개혁을 보도함에 있어서 충직한 대변인 역할을 해온 조선일보의 그동안 보도를 부인하는 내용이 많았다. 지금은 부산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배장환 증인은 "내년엔 한국전쟁 때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의료현장에서 일어날 것이다"는 경고를 하기도 했지만 이는 조선일보 독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김준혁 의원은 배장환 전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에게 의대정원이 늘어나게 되면 해부학 수업을 비롯한 실습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신입생 정원은 기존 49명에서 200명으로 늘었다. 5명이 정원인 방에 갑자기 네 배 인원을 밀어넣으면 공부가 제대로 될 수 있는가 하는 식의 순진한 의문에 대해서 총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고 조선일보는 인터뷰를 통하여 이를 홍보해주었었다. 이 신문의 댓글창을 보면 독자들이 줄기차게 윤석열 대통령을 편들고 의사들을 공격하는 성향인데 흡수한 정보의 편향성 때문일 것이다.

배장환 증인은 “실습이 제대로 되지 않고 뒤에 있는 학생들은 카데바(해부용 屍身)가 어떤 건지 보이지도 않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했다. “수업을 약 6명씩 8개조 정도로 진행하는 것은 적정 수준이 아니라 그게 최대한 수용할 수 있는 교육 수준이다. 거기에서 한두 명만 더 늘어도 뒤에 있는 학생들은 카데바 인대가 전혀 보이지도 않고 간을 싸고 있는 조직 구조를 볼 수 없는 상황이다”고 실감 있게 증언했다.

그는 “(증원을 하면) 의료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격하시킬 것”이라며 “지금 갖고 있는 의료시설이나 학생 1인당 면적, 1인당 교수 수 등 후퇴하면 후퇴했지 절대로 전진할 수 없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배 증인은, “충북대 총장과 교육부는 200명이나 되는 신입생이 들어와도 1~2년은 예과과정이기 때문에 강의실을 증설하면 된다고 하지만, 예과과정조차도 학점의 3분의 2정도가 필수과목”이라며 “강의를 강행한다면 최소한 50~60명으로 나눠야 하는데, 서울대학교도 (한 학년) 학생이 135명인데 A반과 B반, B2반으로 분조가 되어 있다. 200명 학생을 제대로 교육시키려면 최소한 60명씩 4개 반으로 나누어야 하고 강의실을 60석짜리 4개로 나누고 교수 4명을 한꺼번에 투입해서 강의를 따로따로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한 교육부가 지방 국립대학 의대 교수를 1000명 늘리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라고 했다.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첫 번째로 지금 8월부터 지방 국립대학교 교수를 내년까지 1000명을 늘리겠다고 하지만, 계획안만 나왔고 (구체적) 계획이 아무것도 수립된 것이 없다. 1000명을 늘리겠다고 한 것도 신규 인력을 발령하는 게 아니고 기존의 병원 돈으로, 총장 발령인 기금교수를 전임교수로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어 “사실상 숫자는 똑같이 되고 직급 변경만 생기는 것”이라며 “병원에서 새로운 교수를 1000명 증원해야지 늘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거기에 대비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실상은 기금교수가 전임교수로 간다는 뜻이지, 새로운 교수를 내년에 1000명을 새로 뽑는 게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고창섭 총장은 “당초 증원을 신청하면서 200명을 한 강의실에서 강의를 받도록 한다는 계획을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충북대는 2027년 3월에 본과 1학년이 들어가는 시점에서 해부학 실험이라든가 종합 실험실이라든가를 120명 기준으로 2개 반을 편성해서 하겠다고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하여 배장환 전 교수는 재반박에 들어갔다.

민주당 진선미 의원의 질의 차례에서 배 전 교수는 “의대정원을 2000명 늘리는 것이든 감원이든 근거가 없어서 반대한다”며 “인구 1만 명당 소아과 전문의는 우리나라가 OECD 평균보다 2.5배 이상 많은데 왜 그 전문의가 소아과를 계속하지 않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人海전술로 의사를 늘리자라고 하는 것은 문제를 놔두고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방법”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의대 수업이 마비상태고, 교육부에서 제시한 학년제 도입 가이드라인 등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진선미 의원의 발언에 동의한다고 밝히면서 “현재 본과 3. 4학년 학생들이 환자를 1명도 못 보고 실습을 못 했는데 그것을 2학기 때 몰아서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배 전 교수는 “총장께서 전임교수 2명만 사직했다고 하지만 임상교수들, 다시 말해 병원에서 축이 되고 교육을 담당하고 있던 교수들이 다 나가고 있다”며 “심장내과 교수 2명은 거의 은퇴급에 가까우시고 7명의 워킹 교수 중에서 저를 포함해서 3명이 사직했다. 그러니까 지금 있던 사람도 나갈 판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배 교수는 “필수의료하고 지방의료의 확충이라는 것은 평생의 명제였고 모든 의사는 거기에 찬성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추진 방법은 해결책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했다.

배 교수는 “지금 의원들과 정부가 굉장히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지만, 지금 말고 내년에 닥칠 의료대란에 대해서는 정말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내년에는 한국전쟁에서도 벌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신규)전문의가 1명도 없는 해가 되고 연차적으로 그 이후에 (신규)전임의가 없어지기 때문에 교수요원이 생기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2000명 증원에 관한 의지의 3분의 1만 해결의 의지를 가지시면 뭔가 만들 것 같다”며 “2000명이란 숫자가 의료개혁을 완전히 잡아먹은 상태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청문회를 통해서, 증원된 2000명을 대학별로 배정하는 회의가 졸속으로 이뤄졌고 이를 감추기 위하여 회의자료를 폐기했다는 의심이 짙어졌다. 대학별 현장 실사 없이 정원을 배정했던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은 현 정원을 66%나 늘린 것이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으며 의료계와 충분히 협의하여 결정한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누차 설명했는데 가처분 신청 재판을 통하여 '가짜 뉴스'에 가깝다는 사실이 법원 결정문으로도 확인된 바 있다. 2000명이란 숫자는 별다른 근거가 없고 의료계와 실질적인 협상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 청문회를 통하여 정원 배정도 합리적 검증 없이 이뤄졌음이 확인된 셈이다.
배장환 전 교수는 "2000명이란 숫자가 의료개혁을 밍쳤다"는 취지로 정리했다. 복지부와 교육부 공무원들에게는 '2000명'이 절대로 건드려선 안되는 신성불가침의 신앙대상인지 교시인지 모르겠지만 국민들에겐 부적(符籍)이나 주술(呪術)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측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김정은의 핵무장과 경쟁하고 있고, 대한민국 발전의 위대한 성과인 '좋은 제도'를 망가뜨리는 데 있어선 문재인의 탈원전 실책과 경쟁하고 있다. 동아일보를 제외한 보수언론의 일방적 '의사 때리기'와 '윤석열 감싸기'는 의료대란을 악화시켜 국민의힘 총선 참패에 기여했다. 조선일보 등의 의료대란 편파 보도는 한국언론사상 영원히 기억될 흑역사가 될 것이다. 언론이 사실보도에 충성했더라면 윤석열의 폭주를 견제, 국민도 국민의힘도 윤석열 대통령도 의사도 다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수습이 되어 共同善을 이뤘을 것이다. 언론이 객관적 보도를 포기하니 감싸주려 한 대상부터 먼저 망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조선일보의 취재력이라면, 도대체 2000명 증원을 누가 어떻게 결정하였는가 하는, 이 사태의 본질, 즉 출발점이자 해결점에 대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여 독자들에게 보고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이게 국민의 알 권리 충족 아닌가. 올해 한국에서 생산된 가장 큰 가짜 뉴스는 "2000명 증원은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대통령 주장이고 조선일보는 이 '가짜 뉴스'의 확산에서 1등을 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