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제는 남한에서 반란 일으키려는 것"
통혁당 연루 對北전문가 윤상환씨 인터뷰: "연방제는 통일방안이 아니라 무력赤化통일로 가는 중간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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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환씨.
'北, 남한 내 혼란 조성 후 지원 명분 남침할 것'
  
   김정일 정권과 남한 내 추종세력들의 “연방제 실현”발언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북한의 연방제는 ‘남한 내 친북세력을 강화시켜 용공(容共)정권을 수립한 후 이 용공정권과 연방제를 함으로써 한반도를 공산화시키겠다’는 對南적화전술의 일환으로 주장돼왔다.
  
   북한은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社會主義)의 완전한 승리를 보장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과업을 수행하는데 있다”고 하면서 ‘최종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共産主義) 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고 당 규약전문에서 밝히고 있다. 북한은 이 같은 한반도 공산화를 위해 국가보안법철폐, 주한미군철수, 연방제통일을 선동해 왔는데, 북한의 不法행위에 대한 국제압박이 거세지면서 북한의 대남선동 역시 격렬해지고 있다.
  
   북한의 연방제는 남한 내 용공정권을 수립해 평화적(平和的)으로 한반도를 공산화하겠다는 전술이다. 그러나 이 같은 평화적 적화(赤化)가 여의치 않을 때는 남한 내 혼란을 조성해 무력(武力)으로 한반도를 공산화겠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는 것이 북한의 연방제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연방제의 본질적 의미는 오히려 후자(後者)에 있다고 말한다.
  
   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5년의 실형을 받은 후 전향한 윤상환씨는 “북한의 연방제는 통일의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윤씨는 85년 도미(渡美) 후 일반인들이 접촉하기 어려운 북한 내 원전과 해외자료들을 중심으로 김정일 정권을 연구 및 비판해 온 對北전문가이다.
  
   그는 “북한의 연방제는 통일방안이 아닌 통일을 위한 수단(手段)이며, 북한이 말하는 통일이란 기본적으로 무력적화통일”이라며 “연방제는 결국 무력적화통일의 구실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민의 가장 큰 착각 중 하나가 연방제를 통일방안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념이 달라 갈라진 남북이 이념이 다른 상태에서 연방제를 한다고 통일이 될 수는 없죠. 무엇보다 북한의 연방제는 남한 내 폭동(暴動)을 일으킨 뒤 남한 내 애국자들을 돕는다는 구실로 무력남침하겠다는 의도로 주장해온 것입니다.”
  
   윤상환씨는 남북정권이 연방제에 합의하게 되면 그날부터 ‘평화로운’적화통일의 순서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한 내 친북세력들의 反美집회와 統一시위가 격렬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미군기지를 공격하며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폭력 집회와 4*19당시처럼 평화통일을 외치는 격렬한 시위가 전국을 뒤덮을 것입니다. 북한은 이러한 집회*시위를 통해 고의 또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고(事故)를 만든 후 폭동(暴動)으로 진행시킬 것입니다. 남한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서 미군마저 철수하면 북한은 남한 내 민족주의자, 애국자들을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무력 개입할 것입니다. 이것이 연방제 이후의 실제 모습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윤상환씨는 통일에 관한 김일성*김정일의 주장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父子는 건국 이래 무력통일의 정책을 바꾼 적이 없으며, 그래서 국력을 군비생산에 집중하고 핵개발에 치중해 왔다”는 설명이다.
  
   “김일성은‘연방제의 二國체제로 있을 순 없다. 피를 안 보고는 혁명완수가 될 수 없다’고 숱하게 강조해왔습니다. 中共과 越盟의 무력통일을 모델로 삼아 온 김일성은 1975년 4월18일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남조선에 혁명이 일어나면 같은 민족의 입장에서 방관할 수 없다. 남조선 인민을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일의 발언을 비롯한 북한자료들은 이 같은 대남혁명관이 바뀌지 않았음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윤상환씨는 “결정적(決定的) 시기가 오면 언제든지 南으로 진격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마친 것이 현재의 북한”이라며 “결정적 시기란 남한사회 혼란과 분열, 주한미군철수에 의한 전력의 약화”라고 말했다.
  
   “북한은 건국 이래 무력통일의 정책을 바꾼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국력을 군비생산에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은 요즘 결정적 시기가 멀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北을 압도할 수 있는 군비강화와 이를 위한 한미동맹 강화입니다”
  
  (2) '결정적 시기에 총공격해야' 金日成 교시
  
   '결정적 시기 되면 전국적 총파업 무장봉기 일으키라'
  
   김일성은 “남조선 혁명은 어디까지나 남조선인민들 자체가 주동이 되어 수행하여야 한다. 그러나 북반부 인민들은 같은 민족으로서 남조선 인민들의 혁명 투쟁을 적극 지원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70. 5차당대회보고 등)”며 남한 내 지하당이 주도하는 친북세력 양산에 주력해왔다.
  
   김일성은 이 같은 공개(公開)교시와 별도로 대남사업관련자들에게 내리는 비밀(秘密)교시를 통해 통일은 (1)남한 내 혼란조성을 통해 결정적 시기를 마련한 뒤 (2)무력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지령해왔다.
   일본 산케이 신문이 2004년 6월27일 보도한 김일성 비밀교시에 나오는 북한의 무력통일관련 부분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결정적(決定的) 시기가 포착되면 지체 없이 총공격을 개시해야만 한다. 전국적 총파업과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대의 도처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켜, 전신*전화*발전소*방송국 등 중요한 공공시설을 점거함과 동시에 전력의 공급중단과 함께 통신*교통망을 마비시키고, 임시혁명정부(臨時革命政府)의 이름으로 北에 지원을 요청하는 전파를 날려야한다』(1974년 12월)
  
   김일성은 무력개입 또는 무력남침을 위한 ‘결정적(決定的) 시기’를 4*19에 비유하며 이렇게 설명해왔다.
  
   『우리는 조국을 통일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두 번 놓쳤다. 그 한 번은 6·25이고 또 한 번은 4·19이다. 6·25 때에는 박헌영의 허위보고 때문에 기회를 놓치게 되었고, 4·19 당시에는 연락부가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해서 놓쳐버렸다. 그때 내가 함경도 지방에서 현지지도 하던 도중에 4·19가 터졌다는 보고를 받고 평양으로 달려올 정도로 연락부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손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심각한 교훈을 찾아야 한다. 4·19는 남조선 혁명정세가 무르익은 징조이다. (1974년 4월 대남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같은 담화에서 김일성은 “이제 다시 한번 4·19와 같은 좋은 기회가 다가오면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한다”며 “동무들도 이런 각오를 가지고 언제든지 기회가 오면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어야 하겠다”고 지령했다고 기록돼 있다.
  
   김일성은 또 “혁명의 전략적 단계에서 결정적 시기는 단 한 번 밖에 오지 않는다. 결정적 시기가 조성됐다 해도 그 시기를 포착하지 못하면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며 남한 내 현지당(現地黨) 지도부 구성의 필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4·19 때의 교훈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그때 우리가 좋은 기회를 놓쳤던 것처럼 평양에 앉아서 무전으로 보고나 받아 가지고서는 서울에서 일어나는 결정적 시기를 제때에 포착할 수 없다. 그러니까 혁명정세를 자체로 분석 평가하고 스스로 전략전술을 작성할 수 있는 노숙한 혁명가들을 파견하여 현지당 지도부를 시급히 꾸려야 한다. 조선혁명을 모스크바에서 지도할 수 없듯이 평양에 앉아서 남조선혁명을 지도한다는 것은 혁명의 원리에도 맞지 않다(1974년 1월 대남 담당요원들과 의 담화)』
  
   김일성은 1960년 4*19 이외에도 1979년 10*26 박정희 대통령 유고(有故) 당시를‘결정적(決定的) 시기’로 파악했었다. 그러나 4*19의 ‘결정적 시기’가 박정희 장군의 5*16으로 실패했듯, 10*26의 ‘결정적 시기’ 역시 전두환 장군의 12*12로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관련부분을 인용해보자.
  
   『10·26사태는 결정적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이다. 박정희가 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은 권력층 내부의 모순과 갈등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첨예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들은 지금 계엄상태를 선포해 놓고 서로 물고 뜯고 하고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연락부에서는 이 사태가 수습되기 전에 선 손을 써야 한다. 남조선의 모든 혁명역량을 총 동원하여 전민 봉기를 일으킬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해야 한다(1979년 11월호청사 부장회의)』
  
   (3) '결정적 시기 위해 시위도중 自害공작하라' 지령
  
   김일성 비밀교시의 특기할 점은 소위 “결정적 시기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야 하며”이를 위해 “정부의 강경탄압을 유도하고 심지어 시위도중 자해(自害)공작을 해야 한다”고 지령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한 내 운동권의 자해(自害)공작 또는 자해(自害)유도와 같은 행태는 실제의 선례를 가지고 있다.
  
   1991년 5월8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었던 김기설씨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했을 때, 실제 김씨의 유서는 전민련 동료였던 강기훈씨가 대필한 것이었다. 강기훈씨는 당시 김기설씨 유서대필 및 자살방조를 한 혐의로 구속됐었다. 사회 인사들은 잇따른 분신정국에 대해 ‘죽음의 굿판’‘어둠의 배후세력들에 의해 선동된 죽음’이라 비판했고 이후 운동권은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자해공작 관련, 김일성의 비밀교시를 인용해보자.
  
   『결정적 시기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혁명정세는 오직 혁명가들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 성숙되게 된다. 혁명의 객관적 정세가 아무리 성숙되었다 하더라도 혁명가들이 주동적으로 조성하지 않으면 결정적 시기는 절대로 오지 않는다.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각종 형태의 대중투쟁을 적극 조직 전개하여 적들의 강경 탄압을 유도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위도중 경찰에 의해 살해된 것처럼 위장하여 자해공작을 할 필요도 있다. 시위군중들이 동료들의 피를 보게 되면 더 격렬하게 일어나기 마련이다(1976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김성욱 기자
[ 2006-09-22, 22: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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