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은 마적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국가라면, 지금이라도 마적단에게 보복 군사작전을 전개하겠다는 단호한 메시지를 보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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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정부협상 - 한국인 세계 범죄집단의 ‘밥’으로
  
  예견된 ‘마적단’ 탈레반의 몸값 1명당 50만불
  
  
  지난 15일 카불 근교에서 독일경찰 3명이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이 중 한명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수년 간 수행한 경호원이었다고 '빌드'신문은 16일자로 보도했다. 18일 토요일 ‘베를린 돔’에서 장례식이 내부무장관의 참여로 치러진다.
  
  16일 독일 외무부차관 게르노트 에르럴(사민당)은 “세 명의 독일 치안경찰이 목숨을 잃은 것은 대단히 슬픈 일이지만 독일의 아프간 개입정책에는 전혀 변화가 없을 것이다”고 단호하게 발표했다. 국제안보지원군(ISAF)의 독일참모장 브루노 카스도르프 소장은 '벨트'(Welt)지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의 아프간 개입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테러문제 전문가 롤프 톱호벤은 현 4만 명(3300 독일군)의 ISAF를 15만 내지 20만 명으로 증원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6일 ‘벨트 온라인’에 의하면 가까운 시일 내에 독일 인질 루돌프씨의 석방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현지소식통을 인용하여 보도하였다. 동시에 벨트지는 한국의 11일 만의 탈레반과의 대면협상 재개를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
  
  17일 국내언론을 통해서 탈레반 1명당 50만불을 요구한다는 기사가 올랐다. 이 몸값은 피랍자 맞교환과 별개로 요구되고 있다고 한다. 다른 통신에 의하면 당초 그들은 1인당 100만불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설사 50 만불이라 해도 총 950만 달러(88억7000만원)이다.
  
  독일인과 한국인이 하루 차이로 탈레반의 인질이 되어 지금까지 세계의 이목을 끌면서 양 정부의 테러리스트와 대결이 보도되고 있다. 같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양 정부의 대처방식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라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한국 대다수 언론은 인질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이구동성으로 즉각 철군하고 군사작전은 절대 배제한 오직 ‘대화협상’으로만 대응하라고 하였다. 정부의 대응은 한 수 더 떠서 대통령이 직접 테러리스트와 협상하자고 전세계 매스컴에 호소하였다.
  
  이런 한국정부의 탈레반과의 직접협상에 아프간정부와 서방 언론은 테러리스트를 정치적으로 합법적 집단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대단히 부정적으로 보았다. 혹자는 우리 인질은 19명이고 독일은 1명이기에 군사작전을 하더라도 인명피해가 적기에 군사작전까지 고려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소리도 들린다. 이는 원칙을 모르는 무지일 따름이다.
  
  지금 아프간의 한국군은 200명이지만 독일의 경우 군인 3300명, 민간 지원단은 우리의 23명보다 훨씬 많이 상주하면서 ‘단기선교봉사’가 아니라 ‘장기지원프로그램’으로 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라크에는 독일을 비롯한 수만 명의 전세계 민간인이 이런저런 목적으로 재건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 기업과 보따리장수도 상당히 나와 있다. 이들 모두 엄격히 말하면 모두 탈레반 같은 테러리스트의 ‘잠재인질’로 노출되어 있다.
  
  탈레반이 채찍(인질총살)과 당근(몸값)으로 공격하는 것을 한국정부처럼 무조건 평화적으로 협상하자 하고 당근으로만 대응한다면 테러리스트뿐 아니라 ‘범죄집단’조차도 앞으로 ‘인질장사’를 할 것이다. 테러리스트의 채찍(총살위협)에 동일하게 군사보복작전으로 응수하지 않을 경우 인질의 목숨은 그야말로 파리 목숨이 될 것이다.
  
  
  필자는 수년간 이슬람지역에 상주하여 이들과 먹고자면서 많은 거래를 하여왔다. 피랍자 대표들이 두바이로 가서 아랍의 여론에 호소하겠다는 기사를 보면서 그 부모의 심정은 이해는 하지만 너무나 이슬람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탈레반의 측에서 보면 두바이는 이슬람의 최대 부패지역이며 집단이라는 사실이다. 이슬람은 민족이 아니라 여전히 종족과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어 단일한 ‘민족국가의식’이 전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란은 하나이지만 중세의 종교전쟁시 ‘개신교’와 ‘가톨릭’이 서로 죽이고 죽이는 싸움보다 더 치열하게 싸우고 있으며 그 방법도 악랄하기 그지없다. 한 예가 탈레반이 ‘라마단’이 끝난 뒤 양잡는 ‘명절’때 가능한 양이 고통없이 죽여야 한다는 규례를 지키면서도 같은 이슬람인 쿠르드족은 양보다 못하게 잔인하게 몰살시켰다는 사실이다. 이때 탈레반이 여자와 노약자, 어린이도 가리지 않고 모조리 몰살한 사실을 진보 反美주의자들은 모른단 말인가?
  
  아랍족인 사담 후세인이 독가스로 쿠르드족을 학살한 것이나 페르시아족인 터키가 자국의 쿠르드족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여자, 어린이, 노약자라도 제외는 없었다. 탈레반의 저항명분이 이슬람의 근본을 지키는 ‘神政통치’인데 이것의 근간을 뒤흔드는 ‘선교봉사’을 어떻게 고맙게 생각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자기들을 도와주었다는 것은 우리의 일방적 해석이지 그들의 입장에서는 反動세력인 카불괴뢰정부와 외세의 아프간 장악에 일조하는 부역세력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을 납치하고 사살하는 것은 정의로운 행위인 것이다.
  
  살해된 우리 국민의 몸에 열 발 이상의 총상을 발견하였다는 것은 단순 총살이 아니라 ‘종교적 처형’을 의미하는 것이다. 코란에도 있고 구약에도 있듯이 ‘배교자’나 ‘신성모독자’에게는 무리를 지어 집단적으로 ‘돌로 쳐죽이라’는 종교적 의식과 마찬가지로 故 심성민씨를 1명-2명이 총살시킨 것이 아니라 무리를 지어 돌아가며 종교적 처형을 하였다고 봐야 한다. 때문에 참여한 그 누구도 살인에 대한 개인적 양심의 가책을 가지 않고 오히려 ‘지하드’로 여기게 된다. 선심 쓰듯 2명을 풀어주고 뻔뻔하게 협상에 나서 또다시 엄청난 몸값을 요구하는 그들의 모습을 우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식으로만 해석하기 때문에. 예를 보자.
  
  한겨레 조정래칼럼, ‘탈레반, 당신들의 이성을 믿습니다.’(2007.7.30)
  
  “탈레반, 그뜻이 ‘이슬람 경전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라 합니다. 그 뜻을 알고 보니 그 명칭에서 경건함과 순수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지혜와 이성도 느낍니다. 이번에 발생한 사태로 뒤늦게 갖추게 된 인식입니다. … 이번 일을 자비롭게 처리함으로써 당신들은 이슬람의 고결함을 세계인에게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
  
   ‘악당’을 고귀한 독립투사로 바라보고 그들의 양심과 이성을 호소하는 조정래류의 지식인이 국민의 눈과 감정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진보를 자칭하는 인사와 대다수 언론들이 ‘이슬람은 여자와 노약자, 어린이는 해치지 않는다’는 금언을 呪文하면서 오직 그들을 자극하지 않고 잘 다루면 모두 석방될 것이다고 국민들을 호도시키고 있다. 탈레반이 제대로 된 이슬람주의자이라면 애당초 여성을 납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작금의 탈레반은 보통의 이슬람 신봉자가 아니라 부족간의 세력 장악에만 눈이 어두운 ‘마적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질’이 탈레반의 저항무기로 둔갑
  
  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자신들의 최후 근거지로 믿고 은거하고 있는 ‘부족마을’이 군사보복을 당하는 것이다. 지금 국제안보지원군은 다양한 부족출신으로 구성된 탈레반 대원들의 근거지를 외곽으로부터 조이며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과 ISAF의 군사작전이 갈수록 강화될 것이다. 이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탈레반은 이미 확보하였다. 바로 한국의 인질이다. 한국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서 노골적으로 아프간정부와 ISAF의 군사작전을 중지시키고 유엔을 끌어들이려는 요구를 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장영달 의원의 방미 귀국보고에서 이런 현상이 사실로 밝혀졌다.
  
  우리 정부가 미군과 ISAF와의 군사적 작전공조 의지를 단호하게 탈레반에게 협상에서 보이지 않을 경우 우리의 소중한 19명의 아들딸은 마적단에게 한 명 두 명 협박용으로 희생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국가라면 지금이라도 이미 2명의 우리 국민을 사살한 ‘마적단’에게 보복 군사작전을 전개하겠다는 단호한 메시지를 보내야만 그나마 우리 인질 19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묻고 싶다. 다윗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다윗은 평생 전쟁을 치르면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 사랑한 군사가, 예술가이자 정치지도자였다.
  
  [사무엘상 25장]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신세였지만 한 번은 '부자 나발'이라는 자의 양지기들과 갈멜 지역에 함께 지내면서 나발의 양들과 양지기들을 산적과 늑대들로부터 보호해주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양털을 깎는 축제날에 다윗이 나발에게 부하를 보내어 우리가 너를 도와주어 양들이 잘 자랐듯이 너도 우리에게 조금 만한 답례를 하라고 사람을 보내었는데 나발이 오히려 문전박대를 하였다. 이에 다윗은 배은망덕한 나발을 징벌하기 위해 군사보복에 나선다. 결국 나발은 하나님의 진노로 죽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다윗은 군사행동을 취했기에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중간에 협상으로 나서서 다윗의 보복을 일시적으로 유예시켰다. 그러나 다음날 다윗이 곧 보복하러 온다는 소식은 들은 나발은 제발에 질려 질겁하여 죽었다.
  
  이 역사적 사례를 자세히 보면 ‘악당’에게는 무조건적 일방적 사랑이 아니라 ‘채찍’을 들어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윗은 평생 악을 선으로 갚고자 했지만 상대가 한 번 두 번의 선의를 무시하면 그 다음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냉정하게 무력으로 보복했다. 이것이 다윗의 정의관이다.
  
  현 이스라엘의 건국정신과 목표는 바로 다윗사상이며 과거 다윗의 왕국을 재건하는 것에 있다. 당연히 모사드의 행동원칙도 다윗의 예를 따르고 있습니다.
  
  아프간의 19명의 인질, 소말리아 해적에 몇 달씩 배와 함께 잡혀있는 우리선원, 만주 벌판에 인신매매로 팔려가는 탈북동포들, 세계화와 테러리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잠재인질’로 노출되어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대통령은 ‘악당들’에게 돈으로 ‘평화’를 ‘어린 양’을 구하지 않는 ‘다윗왕’이 아닐까?
  
  
  
  
  
  
  
[ 2007-08-18, 09:5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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