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평화협력지대의 문제
현대사 강좌 제55회 '前 해군작전사령관의 NLL해설' 녹취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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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7일자 <조갑제닷컴> 보도]

(趙甲濟 대표) 오늘 강연하시는 金成萬 제독님이 앞에 계시는데, 제가 먼저 20-30분 정도 공지사항과 지난 일주일의 요약, 내년의 강연계획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올해의 마지막 강연인데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에 많이 왕림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有終(유종)의 美(미)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장소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300m직진하면 옛날 고려병원(지금은 삼성강북병원이죠) 맞은편 문화일보 건물 안에 있는 강당입니다. 여기보다 약간 크고 좋은 자리입니다. 요일도 토요일에서 월요일로 변경이 되었습니다. 토요일은 느긋하게 강연을 들을 수 있는데, 월요일은 한 주의 시작으로 조금 딱딱하고 정신을 차리는 날이 되겠지요. 매주 월요일 오후 2시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토요일에서 월요일로 바뀐다는 게 의미가 있지 않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토요일의 분위기와 월요일의 분위기는 다르죠. 

 

우리 보수 세력이 지난 10년 동안 권력을 놓치고 비판자, 도전자의 입장에서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는데 이제는 다시 주인이 되었으니까 주인된 입장에 걸맞은 대안도 내고, 전문적인 이야기도 있어야 될 것이고, 그동안 좌익들과 싸우면서 놓쳤던 문학이나 예술부분 같은 교양에까지 강연 영역을 넓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1월은 일종의 겨울 방학이 되겠습니다. 조금 긴 셈입니다만 이 기간 동안에 저도 2008년에 대한 설계를 하고 여러분들도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저희의 시민교양 강좌에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2008년의 첫 번째 강연은 2월11일 오후 2시입니다. 이쪽으로 혹시 잘못 오시는 분을 위해 안내하는 사람들도 배치를 하겠습니다. 교통편은 나눠드린 유인물에 잘 적혀있으니까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의 공지사항은 국민행동본부가 2년 동안 신문에 낸 광고를 모아서 책으로 냈습니다. ‘싸웠다, 그리고 이겼다!’는 책인데 출판 기념회 겸 후원회의 밤을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1월11일 오후6시에 합니다. 그리고 지금 나눠드린 안경본(대한민국 안보와 경제 살리기 운동본부)에서 1월21일 오후5시에 한국기독교기념관 4층 제1강의실에서 李明博 대통령 당선자 축하대회를 한다고 합니다.


 지난 일요일에 제가 안성에 갔다가 밤에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었어요. 한남대교를 건너고 터널을 지나 을지로 쪽으로 들어와서 좌회전을 해서 서울시청 광장 쪽을 지나갔습니다. 그게 한 시간 걸렸어요.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해서 지나가며 살펴보니 이유를 알겠더군요. 서울시청 광장이 지금 스케이트장으로 되어있고, 청계천의 루체비스타까지 끼어서 주말 밤에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온 사람들이 차를 간선도로에 2차선으로 세워놓았어요. 서소문로, 세종로, 서울시청 광장을 빙 둘러서 1차선 내지 2차선을 점거했습니다. 그렇게 불법주차를 하고서는 자기 아이들 스케이트를 타게 하는 거죠.

 

보니까 주로 40대 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지하철, 버스가 그렇게 잘 되어있는데 왜 자가용을 가지고 와서 다른 시민들이 불편을 겪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지하철을 타고가면 아이들한테 아버지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하나 봐요. 아마 오늘 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 근방에 교통체증이 굉장할 겁니다. 우리가 그 동안 불법시위대가 광화문 거리를 점령해서 교통체증 일으키는 것을 욕했는데, 그것하고 똑같은 현상이 시민들에 의해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불법 시위대나 불법 주차나 국민들한테 폐를 끼치는 것은 마찬가지죠. 그걸 보면서 ‘보수정권이 들어선다고 해서 좌파정권이 끝난다고 해서 갑자기 우리의 행복이, 질서가, 법치가 향상되는 것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불법 주차와 똑같은 문제가 노점상 문제 아닙니까? 노점상은 생존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법치 파괴 차원의 문제가 되었죠. 노점상 하는 사람들은 세금도 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법의 힘으로 몰아내는 것이 그렇게 힘들다고 보도하는 TV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법을 회복한다는 것은 보수정권이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입니다. 그런데 그 법을 시민들이 스스로 어기고 있어요. 자꾸 일본을 예를 들어 말하면 친일파라는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우리가 새로운 관점에서 일본에게 배울 것은 배우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지요. 일본의 자동차가 별로 안다니는 시골 어디를 가더라도 골목에 자동차 세워놓은 것을 보신 적 없을 겁니다. 전부 자기 집 마당에 주차를 합니다. 자기 집에 주차공간이 없으면 아예 차를 사지 않죠. 자가용이 있다고 해서 도심지에 차를 몰고 나가는 생활도 잘 하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가진 사람도 출퇴근 시에는 지하철을 타고 주말에 놀러갈 때 한두 번 자가용을 몰고 나갑니다.


 지난 5년 동안 TV를 보지 않으신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느 자리에 가면 5년 만에 처음 TV를 본다는 사람이 많아요. 5년 만에 뉴스를 봤는데 많이 달라졌다면서 KBS, MBC가 앞장서서 李明博 龍飛御天歌가 굉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KBS, MBC를 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뜻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예민한 권력 감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새 세 번째 해방이다, 5년 만에 TV를 본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세 번째 해방이란 것은 1945년 8월15일에 처음 해방이 되었고, 1950년 9월28일 서울이 수복되었을 때 두 번째 해방이 되었고, 2007년 12월19일에 세 번째로 해방되었다는 뜻입니다. 첫 번째, 두 번째 해방은 사실 우리 실력으로 한 것이 아니고 주로 미군 실력으로 했죠. 그러나 12월19일의 해방은 우리의 표로서, 우리 실력으로 해냈습니다.


 내년 2월11일 문화일보 강당에서 있을 강좌의 첫 강사로 연세대학교의 宋復 명예교수님을 다시 모셨습니다. 주제는 ‘위대한 만남, 西厓 柳成龍’입니다. 이 분이 같은 이름의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을 제가 너무 재밌게 읽고 감동을 해서 첫 강사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500페이지쯤 되는 책으로 2만2000원인데 꽤 비싸죠. 읽고 나서 역사학자가 쓴 임진왜란과 정치학자가 쓴 임진왜란이 이렇게나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치학자는 권력이란 것을 잘 아는 사람이고, 또 송복 교수는 기자 출신입니다. 정권의 생리와 전쟁을 잘 아는 사람이 쓴 임진왜란과 류성룡 이야기가, 역사학자가 쓴 평면적인 임진왜란보다 훨씬 더 재밌습니다. 읽으면서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임진왜란 때 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여러 가지 기적이 중첩되었기 때문입니다.


 柳成龍이란 사람과 李舜臣의 위대한 만남이라는 뜻으로 제목을 그렇게 붙인 것도 같고, 혹은 송복 교수가 류성룡이란 사람을 만난 것이 위대한 만남이라는 뜻인 것도 같아요. 이런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는 제목입니다. 육군은 류성룡이란 사람이 총지휘자였고 해군은 이순신이 총지휘자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류성룡은 영의정이었고 도체찰사라고 해서 사실상 전시사령관 비슷한 역할을 했습니다. 서애 류성룡이 육군 장교인 이순신을 발탁해서 임진왜란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에 일곱 계급 특진을 시켰습니다. 이 두 사람이 조선의 전쟁을 지휘했어요. 육전은 류성룡, 해전은 이순신. 류성룡이 없으면 이순신도 없었지요. 이순신을 뒤에서 정치적으로 뒷받침한 사람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은 어떤 전쟁이냐? 당시에 일본군대는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전부 다 전쟁 기술자가 되어있었어요. 송복 교수의 이야기에 따르면 1592년에 우리나라에 쳐들어온 왜군은 유럽의 어느 군대와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세계 최강의 육군이었습니다. 유럽 전체의 조총 수보다 일본 군대가 가지고 있는 조총 수가 더 많았습니다. 그것과 맞서 싸우는 조선군은 어땠느냐? 명나라 군대가 들어와서 ‘조선군은 무기가 없다’고 깜짝 놀랐다고 해요. 국가가 군대에 무기를 대어줄 수 없었습니다. 군대를 모집하면 집에서 죽창을 깎아 나오거나, 몽둥이, 쇠스랑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게 조선 군대의 실상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약한 군대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가 붙었어요. 그런데 왜 망하지 않았느냐? 


 류성룡과 이순신, 그리고 외교의 승리라면 승리입니다. 명나라 군대를 끌어들였습니다. 명나라 군대는 사실 중국을 지키기 위해서 출병을 한 것이지요. 왜군을 가만 내버려 두면 북경까지 들어올 테니까 미리 조선에서 막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온 것입니다. 임진왜란은 육군에서 사실상 왜군과 명군의 싸움입니다. 우리나라 군대는 전쟁에서 구경만 했습니다. 심지어 그 와중에도 선비와 양반들은 당파싸움할 건 다하고, 모함도 했죠. 자기들은 세력다툼하고, 싸움은 명군과 왜군이 했습니다. 6󈸩 때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졌습니다. 6󈸩 에서도 중공군이 개입한 이후로 主싸움은 중공군 대 미군이었죠. 한국군은 미군의 보조역할을 했습니다. 임진왜란의 왜군 대 명군이, 6󈸩 때는 중공군 대 미군으로 바뀌었습니다.


 미군의 릿지웨이(M. B. Ridgway)나 밴프리트(James A. Van Fleet)장군의 전쟁 회고담을 보면, 한국군이 옆에서 도와줘야 하는데 도망가 배후가 뚫려서 낭패했다는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보수정권을 다시 찾았으니까 우리가 해야 될 일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自主國防, 특히 국민이 책임지고 자기의 安保를 챙기는 의식을 다시 심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수 세력이 자주국방을 포기하면 좌파들한테 업신여김을 당할 것입니다. 자주국방을 포기하는 것은 생존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안보를 누군가 대신해 줄 거라는 생각자체가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것이지요. 안보를 누가 대신해줍니까?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대신해준다는 생각이 얼마나 건방지고 어리석습니까. 다른 나라의 안보를 위해서 자국의 젊은이들의 피를 흘리겠다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남을 돕는 겁니다. 트루먼 대통령이 미국의 젊은이들을 한국 전선에 보낸 것은 고귀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였을 뿐 아니라, 미국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한반도에서 한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안보라는 것은 그 나라의 국민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금을 내고 국방비를 많이 책정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군복을 입어야 합니다. 안보를 위협하는 金正日이나 남한의 親北左翼 세력에 대해서는 응징을 해야 합니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한나라당부터도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이야기는 하는데, 정권이 바뀌고 나서 안보문제를 제대로 하겠다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경제를 살리는 것으로 안보를 대신 할 수 있다, 부자가 되면 자동적으로 안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없습니다. 안보와 경제는 대체되지 않는 것입니다. 안보를 위해서 경제가 희생된다든지, 경제를 위해서 안보가 희생된다는 개념이 아니고 안보와 경제는 항상 같이 가는 것입니다.

 

  송복 선생님을 통해 류성룡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1592년, 420여 년 전 조선의 문제가 지금도 한반도에 그대로 유지가 되고 있습니다. 소위 좌파, 소위 지식인들, 한나라당 의원들의 거의 대부분,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의 머릿속에 ‘안보는 공짜다, 안보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다, 안보는 미국이 해주는 것이다, 안보는 김정일한테 잘 부탁하면 될 것이다’는 생각이 들어있습니다. 대통령이든 국방부 장관이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는 노예근성의 소유자입니다. 아무리 잘 살고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오르더라도 그 노예근성을 버리지 않는 한 보수 再집권의 의미가 없습니다. 자주국방을 엉뚱한 사람이 엉뚱하게 사용해서 말이 조금 오염이 되었는데, 이 말을 다시 찾아와야합니다. 자주국방은 박정희 대통령이 최초로 사용한 용어입니다. 그 원래 의미로 되돌려서 2008년 동안 광화문 모임의 주제가 자주국방이 되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일주일 사이에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파키스탄의 부토 여사가 피살되었습니다. 사망 원인도 조금 특이한데 처음에는 권총에 피살되었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폭탄의 파편에 맞아서 죽었다고 했어요. 어제 파키스탄 내무부에서 발표한 것을 보니 또 다릅니다. 부토여사가 덮개가 있는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몸을 내밀고 손을 흔들며 가고 있었는데, 폭발을 피하기 위해 차량 안쪽으로 몸을 숨기려다 차량 선루프에 머리를 부딪친 충격 때문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총을 맞은 것도, 폭탄 파편을 맞은 것도 아닌 일종의 후폭풍으로 죽은 것이지요.


 파키스탄은 복잡하고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입니다. 핵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구는 1억6000만으로 이슬람교도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알카에다가 파키스탄의 군대 내부에까지 침투해있어서 무샤라프도 언제 암살될지 모릅니다. 파키스탄과 탈레반, 알카에다는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였어요. 1980년대에 소련이 아프가니tm탄을 침공했을 때 미국은 파키스탄을 도움으로써 아프가니스탄의 反蘇 게릴라를 지원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빈 라덴이죠. 파키스탄 군대의 정보국이 있습니다. 이 조직은 탈레반을 후원하고 알카에다와 빈 라덴을 후원했던 부대입니다.


 그런데 9󈸛사태 이후에 무샤라프가 미국의 부탁을 받아서 자기들이 후원했던 탈레반과 알카에다, 빈 라덴을 소탕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잘 안 되는 거죠. 사보타주(sabotage: 怠業)도 하고. 파키스탄의 아프가니스탄 접경지역에는 파스툰이라는 부족이 살고 있는데 일종의 독립 국가를 만들고 있습니다. 중앙정부가 통용되지 않습니다. 법률도 자기들끼리 정해서 재판도 하는 準독립국인데, 바로 그 산악지대의 파키스탄 쪽에 빈 라덴이 숨어있어요. 그러니 작정하고 파스툰族 사이에 숨어있는 빈 라덴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기술적, 군사적으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잡아 올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을 파키스탄의 일부 군대가 지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관계에서 무샤라프가 지난 10년 동안 줄타기를 해왔지요.


 여기는 민주화 세력도 상당히 셉니다. 선거를 했으면 부토가 이겨서 총리가 되게 되어있었습니다. 무샤라프는 육군참모총장직을 그만두고 대통령으로 되어 권력을 나누도록, 미국이 뒤에서 공작해 합의가 된 상태였습니다. 그것을 알카에다가 알고서 ‘부토는 하버드 출신으로 서양 물을 먹은 사람이니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미국편을 들 것이다. 그러니 부토를 죽여서 일대 혼란을 가져와야겠다’는 의도로 테러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목표를 달성했어요. 미국의 對테러 전략에서 파키스탄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파키스탄의 권력이 안정돼야 하는데 부토가 죽는 바람에 계획이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선거가 있을지 없을지도 불투명해졌어요.


 이것은 파키스탄의 문제일 뿐 아니라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면 거기에 집중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자꾸 중동에서 미국이 곤경에 처하는 사건이 생기니까 남북문제에 집중하기가 힘들지요. 이런 상황을 이용하는 김정일은 어쨌든 시간을 끌면서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해 핵보유국 인정을 받겠다는 거죠. 김정일은 임기가 없는 독재자이기 때문에 시간을 끌수록 유리합니다. 그러나 남한의 대통령은 기한이 있기 때문에 임기 중에 뭘 하려고 하면 남북관계에서 항상 우리가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김정일은 부토의 사태를 보면서 여러 가지 계산을 하고 있을 겁니다.


 저의 이야기는 일단 여기서 끝내고 김성만 작전사령관님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948년생으로 진해고등학교를 졸업하신 후, 1971년에 해군사관학교 25기로 임관하셨습니다. 중요한 해군 지휘관 자리를 다 역임하셨습니다. 미국과 영국에서 유학도 하셨고 합참전략기획부장이라는 합참에서 가장 중요한 요직을 역인하신 다음에 해군의 실질적인 총지휘관이라고 볼 수 있는 작전사령관을 2003년 4월부터 2004년까지 1년 몇 개월 동안 하시고, 2005년에 전역했습니다. 전역하시고 여러 가지 글과 강연을 통해, 특히 인터넷에 NLL문제를 육군이나 제3자의 입장이 아닌 해군의 입장에서 많은 글을 써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NLL이야기를 할 때 김성만 제독께서 쓰신 글을 많이 이용했습니다.


 국방부에서 북한하고 협상을 할 때 그 협상 팀의 해군 출신들이 잘 들어가지 못 하나 봐요. 그래서 NLL을 지켜야 되는 해군의 뜻이 잘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 서해평화지대라든지, 공동어로구역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져서 이걸 가지고 남북한이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협상을 하고 있는 대상 자체가 어느 것도 우리한테 유리할 게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와도 대한민국과 군대, 특히 해군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주장을 많이 하셨습니다. 오늘은 시각적으로 준비를 많이 해 오셨기 때문에 재밌게 들으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김성만 제독님을 모시겠습니다.


 

 (金成萬 제독)  슬라이드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저는 ‘서해평화협력지대와 북방한계선’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도를 보시면 NLL이 정교하게 作圖되어 있습니다. 석도는 북한의 암초입니다. 연평도에서부터 석도까지의 거리가 3km인데, 1953년 8월에 연평도에서부터 1.5km로 半分해서 정밀하게 NLL을 작도했습니다. 아주 공평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도 위에 함박도라는 무인도가 있는데 여기도 중심선에 정확하게 작도되어 있습니다. 1999년도에 일어났던 연평해전과 2002년에 일어났던 서해교전이 전부 이 해역(연평도 서방의 장방형 해역을 가리키며)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왜 이 넓은 바다를 두고 여기에서 일어나느냐? 연평도의 방어문제와 관계가 있습니다. 북한경비정들은 사곶에 80여 척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우리 어선들을 잡기위해 북한경비정들이 밑으로 나옵니다. 주간에는 어선들이 나와서 고기를 잡으니까, 어선의 북쪽에 우리 고속정이 항상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경비정들이 언제 내려와서 우리 어선을 잡아갈지 모릅니다. 

 

  NLL이라는 선이 눈에는 안 보이지만 남쪽으로 2km, 북쪽으로 2km 정도는 비무장지대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북쪽도 그 2km 안으로는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2km를 침범하면 우리는 발동이 걸려서 잡으러 나가야 합니다. 그 영역으로 들어오면 순식간에 NLL을 넘어와서 우리 배를 데리고 나가기 때문이죠. 언론보도에 의하면 북한의 어선은 전부 군 소속 무장선입니다. 우리의 어선개념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북한은 상선에도 군인이 타고 있고 무장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쪽에는 군인들 중에서도 굉장한 군인들만 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전투가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진행되고 있는 상황과 같이 ‘평화수역이다, 공동어로수역이다’라고 한다면 북한의 고기잡이배가 더 앞으로 나오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지금보다 더 아래에서 교전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연평도를 방어할 수가 없습니다. 이곳을 방어하지 못하면 인천도 쉽게 잃게 됩니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 많은 인원이 죽고 포로가 되면서도 해군이 지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아까 잠깐 소개가 되었습니다만, 저는 다행히 NLL분야를 구축함에 근무하면서 현장에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서해5도 봉쇄사건(1973년 서해사태) 때도 현장에 있었습니다. 1982부터 연평도에 자원해가서 1년간 지휘관으로 근무해보니 NLL을 지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고 그때부터 NLL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합참 해상작전과장은 해상작전 전체를 보좌하는 직책입니다. 1994년 12월1일에 평시작전통제권을 미군으로부터 가져올 때도, 검토해본 결과 NLL문제는 유엔사에서 그대로 가지고 있어야겠다고 결론이 나서 유엔군 사령관이 관리하도록 되었습니다. 지금도 NLL문제는 유엔사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합참 전략기획부장은 합참에 소장급 해군직위로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해상에 전투가 생겼다고 하면 제 임무도 아닌데 가서 도와줘야 합니다. 합참이 굉장히 규모가 큽니다만 해군의 자리가 별로 없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합니다. 합참 전략기획부장은 사실 대미관계, 주변국 관계나 국방정책이라든지 군사전략을 수립하는 아주 중요한 직책입니다. 

 

 

  백령도·대청도·소청도를 백령도서군이라고 하고, 연평도·우도를 연평도서군이라고 합니다. 지도에도 나와 있습니다만 이쪽은 저수심입니다. 물이 빠질 때는 모래사장과 갯벌이 드러납니다. 제한된 시간에만 다닐 수 있도록 되어있지요. 연평도와 우도는 고지가 낮아서 대게 100고지 이내 입니다. 우도에는 유일하게 민간인이 살지 않습니다. 해군과 해병대만 들어가 있는 아주 작은 섬입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남북정상선언(10.4)에 평화협정지대를 설치하도록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NLL과 관련돼서는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을 설정하고 민간선박이 NLL을 통과해서 해주로 자유롭게 왕래하겠다는 것이 여기에서 합의가 되었습니다. 우리 대통령님께서 돌아오셔서 ‘정상회담 합의 중에서 최대의 성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남북정상선언에 따라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있었는데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설정은 합의를 못 봐서 장성급회담에서 협의,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옛날에는 ‘협의한다’고만 했는데 이번에는 희한하게 ‘해결한다’는 말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끝장을 보겠다는 뜻이지요. 옛날의 남북기본합의서를 보면 전부 ‘협의한다’고만 되어있습니다. 이것도 상당히 의미심장한 거죠.

 

 다음으로 ‘북측 민간선박의 해주항 직항을 허용한다’고 했는데, 민간선박이라고 규정을 하니까 국민들이 혼란스럽게 되는 거지요. 이것은 이미 허가가 되었습니다. 2007년 말까지 통항절차와 항로대만 해주면 됩니다. ‘해상 불가침경계선 문제’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게 바로 NLL입니다. 국민들이 잘 모르게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겁니다. 1992년도에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를 보면 한 구절 들어있습니다. 그것도 부속합의서에 ‘우리는 해상 불가침 경계선을 앞으로 협의한다’고 되어있죠.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는 현재의 관할구역을 존중한다고 되어있습니다. 굉장히 규모가 큰 합의서에서 일개 문구에 불과한 것을 인용해서 하겠다는 아주 기가 막힌 일입니다. ‘종전선언, 평화체제구축을 위해 군사적으로 상호협력을 한다’는 것은, 남북정상선언에 보면 3자 또는 4자의 정상이 모여서 종전선언을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큰 구속력은 안가지고 있었는데, 군사적으로 뒷받침한다는 내용이 첨가되어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다음에 재향군인회, 성우회의 여러 분들이 모여서 규탄을 하였습니다. 서북도서를 지키고 있는 해병대와 해군인데 주로 해병대가 방어를 많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2007년 11월10일에 대통령님께서 말씀을 하시고 난 뒤에 해병대 전우회에서 ‘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서북도서를 지킬 수 없다’고 나서서 규탄하는 집회를 했습니다.

 

 연평해전과 서해교전 때 해군참모총장을 하신 이수용, 장정길 두 분이 ‘NLL은 수도권을 지키는 안보 사활선이다, 정치적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정상회담의 의제가 될 수 없다, 두 차례의 교전은 북한의 NLL 재설정 전략에 따른 의도적인 도발이다, 우발적 무력충돌이 아니다, NLL사수는 해군의 최우선 사명이자 임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다음의 전직 국방관료 세 분은 이 정부 들어와서 최초의 직위를 받으신 분들입니다. 조영길 전 국방부장관께서는 ‘북한은 NLL양보 땐 서해5도 철수 요구할 것’, 김종환 전 합참의장은 ‘공동어로수역의 덫’, 김희상 전 청와대 국방보좌관은 ‘NLL무너지면 인천 앞바다까지 위험’ 하다고 기고를 하셨습니다. 세 분 모두 육군출신입니다. 서해 5도에 거주하고 있는 옹진군 주민들이 NLL재설정 논의를 반대하는 건의문에 1만 17명이 서명했습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내용은 공개된 일반자료, 국방백서라든지 정부에서 나온 자료만 활용한 것입니다.

 

 북방한계선의 성격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설정된 배경을 살펴보면 정전협정에 해상분계선을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1951년부터 1952년 초에 북한은 12마일 영해를 주장했습니다. 그 주장에 따르면 서해5개 도서가 북한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 당시 전 세계에 통용되는 영해가 3마일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3마일을 주장했죠. 합의가 안 되니까 북한이 포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단, 피차의 해면을 존중하여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하지 못한다’는 단서가 들어있기 때문에 유엔군사령부 쪽에서는 북쪽에 있는 유엔군의 해공군 전력을 제한해야 했습니다.

 

 6󈸩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해·공군력이 워낙 강해서 압록강 앞에 있는 대화도, 동해 끝에 있는 마양도를, 바다고 공중이고 전부 우리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봉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유엔군사령관이 일방적으로 NLL을 그은 것입니다. 서해는 당시 영해기준인 3마일(5.5Km)로 중간선 원칙을 따랐고, 동해는 위도와 평행하게 해서 NLL이 정확하고 공정하게 설정되었습니다. 동해는 군사분계선의 연장선으로 해서 407Km까지, 서해는 한강 하구로부터 백령도 서쪽까지 296km로 되어있습니다. 이걸 기준으로 해서 해군은 그동안 작전구역을 정해서 서해를 지켜왔습니다.

 

 요즘 많은 학자들이 생각할 때 북방한계선은 우리끼리 정한 것이니까 법적인 근거가 없지 않느냐고 하는데, 북방한계선의 합법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국방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내용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설치 목적이 정당합니다. 충돌방지, 정전체제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설정되었고 지금까지 한반도 안정과 평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선을 넘어가려면 유엔군사령관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1970년에 한 번 동해에서 북한 간첩선이 도망가는 것을 잡기 위해서 넘어간 것 외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넘어간 적은 없습니다. 북한은 지금도 1년에 17번 정도 넘어오고 있습니다.
  
 국제법적으로 합법적입니다. 중간선 원칙을 학자들이 많이 이야기 합니다. 연평도와 소청도가 47마일인데, 국제법에는 24마일까지 선을 연결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 같은 경우에도 48마일, 50마일로 되어있습니다. 지형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묵인하고 있습니다. 동해에서 보면 북한은 고성에서부터 나진까지 160마일을 죽 그어서 그 안은 전부 자기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20년 동안 여기에 대해서 북한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국제법에서는 黙從 또는 黙認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휴전체제의 일부로 고정이 되었습니다. 단, 동해 NLL은 본래 국제법상 등거리 원칙에 따라서 해안 경사와 90도에 맞도록 그어야 하는데, 위도와 평행하게 그었기 때문에 한국에 불리하게 작도되어 있습니다. 재설정 검토가 필요합니다.

 

 북한도 조선중앙연감의 지도에 표기했고, 북한에서 우리 쪽으로 넘어온 수해물자를 인수할 때 NLL에서 만나서 호송했고, 해주에 입항하는 북한상선도 NLL위로 타고 들어갑니다. 이 선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조난선박을 서로 인계․인수할 때도 NLL선상에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분명하게 해상군사분계선이고 휴전선입니다. 6󈸩전쟁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때까지는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동안 북한이 어떻게 도발했고 우리의 대응은 어땠는지 기간을 나누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먼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962년 12월에 북한의 4대 군사노선을 확정했는데 엄청난 돈을 투자해서 잠수함과 유도탄정을 도입하고, 고속정과 어뢰정을 대량 건조하고, 해안포도 설치했습니다. 1967년, 5년 만에 對南 군사력 우위를 달성하고 도발하기 시작합니다.

 

 동해에서 당포함(56함)이 122미리 해안포를 맞아서 침몰했습니다. 39명이 전사하고, 30명이 다치고, 10명만이 겨우 다치지 않고 살아 남았습니다. 미 해군 정보함(푸에블로)을 항공기와 함정이 동시에 공격해서 납치했습니다. 울진·삼척의 무장공비 120여 명 해상침투는 위장 선박으로 3일간 나눠서 들어왔습니다. 미 해군 정찰기를 격추해서 32명이 다 전사했습니다. 서해 연평도 해군 방송선을 납치해서 20여 명이 지금도 북한에 포로로 있습니다. 동해에서는 해경정 863정을 공격, 침몰시켜서 2명이 포로로 잡혀있고 26명이 전사했습니다. 북한은 국제법도 무시하고 아무리 초강대국이라고 해도 자기들이 필요하면 공격합니다.

 

 서해5도와 관련해서 가장 큰 것이 북한 서해사태 도발(1973.10~11)입니다. 1972년에 7·4공동성명으로 국민들은 곧 통일이 될 거라는 희망에 젖어있었고, 이런 화해무드를 북한이 이용한 것입니다. 일종의 ‘서해5도 봉쇄사건’입니다. NLL을 일일 10~20여 척이 총 43회 월선하고, 10마일(18km)까지 남하했습니다. 이때 제가 초급장교 중위로서 현장에 있었습니다. 24시간 전투배치를 해야 했기 때문에 전투배치 위치에 모포를 가져다놓고 살았습니다. 남쪽에는 북한함정, 북쪽에는 한국함정이 위치할 정도의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이 백령도서군(백령도, 대청도, 소청도)에 근접해서 포위를 시도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한국은 저속위주의 대형함이기 때문에 크고 둔합니다. 한 바퀴 도는데 1km 정도씩 걸리는데, 북한은 소형함으로 40노트(70km)로 그 자리에서 도니까 잡을 방법이 없습니다.

 

 해병대가 백령도에 여단이 있고, 연평도에 연대급이 있기 때문에 LST상륙함이 물자를 공급하러 갑니다. 중요한 물자는 LST로 옮기는데, LST를 포위하고 여객선도 포위하면서 진로를 차단했습니다. 어뢰정은 나무로 만들었고 굉장히 작기 때문에 레이더에 12km부터 나타납니다. 그래서 레이더에 나타나서 전투배치를 하면, 우리 포가 가동되는 순간에 3km 내에 들어옵니다. 어뢰를 3~4km에서 발사합니다. 그러면 구축함은 가라앉는 거죠. 실제 전투는 안 생겼지만 편대로 모의공격 기동훈련을 했습니다. 백령도 상공에 미그기가 날아다니고, 소청도 남방에 북한어선이 내려와서 고기를 잡았죠. NLL이 가깝기 때문에 내려와서 그냥 잡아갑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서북도서를 운항하는 여객선이나 화물선을 호송하는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우리 해군은 공세작전을 펼쳤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정도로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미친개에는 몽둥이가 약이다’라고 하셨죠. 결국은(1975년) 우리 구축함이 1000톤급 북한 어로지도선을 감쪽같이 가라앉혀 버렸습니다. 충돌하고 42초 만에 가라앉았습니다. 워낙 빨리 가라앉으니까 갑판에 있는 선원들도 물에 빨려 들어가서 다 죽었습니다. 그렇게 상황이 끝났습니다. 그 후에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서해5도를 요새화 해야겠다’고 해서 대만의 검문도와 마조도式으로 요새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고속정도 국내개발을 시작했습니다.

 

 11월까지 서해사태 도발을 하고 나서 북한이 처음으로 군사정전위원회에서 항의를 했습니다.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 경계선을 잘라서 이북해역은 북한의 연해라고 주장하고 대신 서해5도는 한국 것이다, 그러나 출입선박은 사전에 허가를 받으라고 요구합니다. 그때부터 해군력이 워낙 강하니까 200마일 경제수역, 50마일 군사수역 같은 국제법에 맞지 않는 것을 발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1980년대 말까지 NLL을 어떻게든 지키겠다는 정부의 사수의지가 있었고 연합사와 유엔사가 한국 정부를 지지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추가도발을 저지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가 만들어지니까 다시 평화통일의 화해무드가 조성이 되었습니다. 1992년도에 남북기본합의서가 나오고 바로 비핵화 선언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1992년도에 북한은 벌써 핵무기 3개 내지 6개는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1994년에 김정일이 先軍정치를 하고 군사노선을 헌법에 명문화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미국에게서 평시작전 통제권을 가져왔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를 보면 南北간 합의서 가운데 이것만큼 잘 된 것이 없습니다. 거기에 보면 무력을 절대 사용하지 않도록 되어있습니다. 지휘관 간의 직통전화도 가설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만 잘 지켜지면 전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정부에서 평시작전 통제권을 가져오라고 한 것이지요. 그때 아무리 검토를 해도 NLL관리가 안됩니다. 우리 힘으로는 관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안보는 힘으로 하는 것이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NLL은 유엔사가 관리한다고 명문화를 한 것이지요. 1998년, 북한이 사정거리 1300km의 노동미사일을 태평양에 쏩니다. 대량살상무기 보유로 자신감이 생긴 거죠. 그래서 1996년에 상어급 잠수함, 1998년에 유고급 잠수함 침투사건이 생겼죠. 대남 군사력 우위를 달성한 겁니다.

 

 한 가지 굉장히 중요한 것이 인민무력부장이라고 김일철 현재 해군차수라는 사람입니다. 해군참모총장을 17년하고 무력부장을 하자마자 NLL무력화에 착수합니다. 1999년 6월 초부터 8일간 우리 관할해역을 최대 15척, 14km까지 침범하며 유린합니다. 이때 정부에서는 ‘먼저 쏘지 마라, NLL을 지켜라, 그쪽이 먼저 쏘면 응징해라, 확전되지 않도록 하라’는 4가지 지침을 내립니다. 어떻게 싸웁니까? 기습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는 오랫동안 북한이 도발할 것을 이미 알고 우리 대형함정들이 미리 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서로 쏘지는 못하니까 충돌하는 형식의 2500여 년 전에 일어났던 해전을 재연한 겁니다. 북한은 자동화장비가 없기 때문에 쏘기 위해서는 가까이 와야 하고 우리는 자동화된 무기이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야 해서 그런 전투방식을 쓰게 된 겁니다.

 

  그 후에 김정일은 지휘관을 처벌하지 않고 1년의 시간을 줄 테니 복수하라고 합니다. 국민일보에 ‘北, 연평해전 패배 설욕 벼른다’고 보도되었던 것처럼 엄청난 훈련을 하게 됩니다. 연평해전 후에 바로 북한이 대란 응징을 하겠다고 합니다. 정부가 도저히 안 되겠으니까 미국에 항공모함을 요청해서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스테니드 항모전투단이 옵니다. 비행기가 없어서 오는 길에 주섬주섬 주워서 72대를 가지고 7월 초에 부산항에 들어왔습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연평해전이 끝났습니다. 북한이 연평해전에서 졌기 때문에 틀림없이 더 큰 도발을 할 것이었는데 미국에서 항공모함이 와서 해결이 되었습니다.
 
 연평해전이 끝나고 1999년 9월2일에 북한이 또다시 NLL 무효화를 주장하고, 2000년 3월에는 서해 5개 섬 통항질서를 발표합니다. 북한은 정상회담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협박을 합니다. 4월8일에 정상회담 발표를 하고, 6월15일에 했는데 3월부터 협박을 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그 협박에 넘어가죠. 대통령님이 다녀오셔서는 ‘이제 한반도 전쟁위협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이듬해에 바로 북한의 상선 10여 척이 10여 일간 영해, 제주해협, NLL을 통과하며 유린합니다. 또 연평도 서방에서 NLL을 통과해 해주에 입항하는 상선이 있었는데, 이때 초계함이 앞을 가로막았지요. 상선이 초계함을 받아버려서 초계함이 많이 손상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한 마디도 못합니다. 그 당시 정책이 그랬습니다. 먼저 공격을 못하게 되니까 얻어맞을 수밖에 없는 거지요.

 

 이걸 그대로 두니까 북한이 기고만장해서 햇볕정책, 6·15 공동선언, 월드컵 분위기를 악용해 도발합니다. 이틀 동안 똑같은 도발 예행연습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방침은 1999년과 똑같았습니다. ‘먼저 쏘지 마라, 맞고 나서 대응하라.’ 북한이 이틀 동안 2척이 분리된 구역에서 예행연습을 했기 때문에 우리 대형함이 대비를 못했습니다. 대형함이 있었으면 대비가 되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고속정이 침몰했습니다. 요즘은 무기체계가 발달했기 때문에 먼저 맞고는 살아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먼저 맞고 대응하라’고 했죠. 이렇게 정부의 사수의지가 미약하면 북한의 도발을 자초하는 겁니다. 


 

이것이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분계선입니다. 1973년에도, 1999년에도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이 선 위로는 다 자기들의 영해라는 겁니다.

 

 


 


  2000년도에는 이렇게 사이에 3km 정도 통로를 내어준다고 하니까 우리 국민들이 솔깃하죠. ‘북한이 처음에는 주장하는 선 위로 다 내어놓으라고 했는데 이만큼 양보해주는구나, 정말 자비롭다’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정말 잘못된 생각이죠. 이게 바로 살라미 전술입니다. 살살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는 전술이죠. 북한은 아주 집요합니다. 1973년부터 지금까지 NLL 요구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변합니다.

 


 

  북한 상선이 영해를 침범한 것을 나타낸 지도입니다. 2001년 6월2일 하루 상황입니다. 원래는 북한 상선들이 407km밖으로 다닙니다. 그러나 이때는 손을 못 썼지요. 제발 나가달라고 사정하고 말았습니다.

  

 

  

 

 

 

  다음은 서해교전 사진입니다. 어망이 이런 식으로 놓여 있습니다. 꽃게를 잡으려면 어망을 바다에 내려놓습니다. 며칠 전에 내려놓은 것을 거둬서 들여가고 또 새 것을 내려놓는 거죠. 주간에 전쟁이 나서 그렇지 야간에 났으면 어망에 걸려서 스크루가 다 감겨버립니다. 그러니까 서해에서 전투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어망은 레이더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눈으로 보고 피해야 합니다.

 

 북한이 얼마나 정교하게 준비를 했는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배의 기관실이 가장 넓습니다. 기관실에 맞아서 물이 차면 금방 가라앉습니다. 정장이 있는 곳에 포격을 해서 정장을 조기에 죽이는 식으로 아주 철저하게 준비를 했습니다. 참수리호를 전시해 놓은 곳에 가서 보시면, 성한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모릅니다. ‘맞고 나서 대응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맞으면 대응할 길이 없습니다. 소설가 한 분이 2007년 6월에 쓰신 ‘서해교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걸 보시면 북한 애들이 김정일의 지침을 받아서 얼마나 정밀하게 준비했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북한 국방부장관이 해군출신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니 얼마나 자세하게 준비했겠습니까?
 
 서해교전에서 침몰한 참수리 호를 수심 27m에서 인양했습니다. 서해교전이 있은 뒤 51일 만에 끄집어 올리고 43일 만에 한상국 중사의 시신을 찾았습니다. 사실은 침몰한 배를 끌어올리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배를 인양하는 구조함은 무장도 없습니다. 북한군 코앞에서 그런 작업을 하는데 북한이 가만 있겠습니까? 그래서 미국에 요청을 했습니다. ‘한상국 중사를 찾아야 한다, 그 친구가 배 안에 있는지, 배 밖에 있는지 찾아야한다.’ 그러니까 미국사람들이 ‘좋다, 맞다. 전쟁을 하다 다친 애들은 지구 끝까지라도 찾아가서 시체라도 건져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해주겠다’고 해서 도와줬습니다.
 
 우리는 말로 준비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힘으로 준비를 합니다. 그래놓고도 안되니까 구조함에 유엔군사령부에 있는 장교들을 태워놓았습니다. 북한한테 ‘유엔사 장교들이 타고 있다, 공격하면 유엔에 대한 도발이다’라고 판문점에서 정식으로 만나서 이야기했습니다. 미국사람들이 얼마나 한국을 위해서 애쓰는지, 정말 눈물이 쏟아집니다. 제가 미국군과 합의서를 체결했습니다. 정말 눈물이 쏟아집니다. 그 사람들은 ‘지구 끝까지라도 가서 찾아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북한도 1999년 연평해전 때 똑같은 위치에 침몰했는데 안 찾아갑니다. 우리는 끌어올렸죠. 그때 제가 역시 힘으로 해야 억지가 달성되는 것이지, 말로는 평화가 달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미국 사람들한테 정말 고맙습니다. 유엔 참전 16개국 장교들도 현재 와 있습니다.

 

 우리가 당하고 난 다음에 정신을 바짝 차렸습니다. ‘전우가 사수한 NLL, 우리가 지킨다’로 정신무장을 해서 북한선박이 NLL 월선 시 즉각 경고사격을 했습니다. 10km, 20km에서 막 쏘니까 그냥 도망가는 거죠. 제가 이때 작전사에 있었는데, 사실 제3차 서해교전(결승전)을 대비했습니다. 그런데 2차 북핵위기 발생하고 신정부가 출범하면서 햇볕정책을 계승해 화해협력정책을 추진했으나,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었지요. 정부가 불안해하는 거죠. 그래서 정부가 북한에게 사정해 남북 장성급회담을 하면서 6·4 합의를 합니다.

 

 북한이 요구한 게 뭐냐? ‘DMZ에 있는 모든 선전탑과 확성기를 제거하라, 대신 남북함정끼리 통신망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 그래서 정부가 요구를 수락했죠. 2004년 6월15일에 남북함정 통신망을 개통했는데, 제대로 통화가 안 됩니다. 개통하고 한 달도 안 된 2004년 7월14일에 서해교전 때 우리 배를 가라앉힌 등산곶 684함이 NLL을 재침범합니다. 그때 북한은 남북함정 통신망을 기만통신으로 사용했습니다. 북한 함정이 내려오면서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는데도 통신으로는 ‘나는 중국어선이다’라고 이야기 하는 거죠.

 

 이 사건 때문에 국방부 장관님이 나가시고, 합참정보본부장이 강제 전역되고, 해군 작전사령관도 처벌받았죠. 그러다 보니 군에서는 작전이 소극적으로 되기 시작했죠. 2004년 8월부터는 손이 묶여서 북한함선이 NLL을 침범해도 묵인하고, 북한의 남북함정 통신망 사용규정 미 준수도 묵인합니다. 교신율이 35.7%입니다. 통신이라는 것은 ‘왜 내려오느냐’라고 이야기하면 ‘올라가겠다’고 답을 해야 하는데, 그걸 하지 않는 거죠. 2006년 3월에 북한에서 장성급 회담을 하면서 백지상태에서 NLL 재설정을 요구합니다. 그때 우리가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겠다고 했는데 남북기본합의서 근거로 하자고 주장하는 거죠. 그래서 통일부의 종합검토 시사가 신문지상에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바로 국방장관회담에서 NLL을 논의하자고 제의하게 되는 겁니다. 북한은 도서주변에서 NLL남방 1~2Km, 12마일(20km) 영해를 주장합니다. 한국은 ‘좋다, 일단 한번 논의해보자’며 서해 NLL 재설정도 가능함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2007년 5월에 공동어로수역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북한은 회담기간 중에도 서해교전 발발 협박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 사람들은 상당히 움츠러들지요. 이때부터 NLL문제 때문에 국방부와 통일부의 마찰이 시작됩니다. 국방부에서는 ‘왜 통일부가 나서느냐’는 거죠. 그래서 ‘해군력이 미약했던 북에 NLL은 유용한 선이다, 북한의 요구는 정전협정․국제법을 위배한 억지다’라고 2007년 7월3일 국방부 홈페이지에 북방 한계선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을 게재합니다.

 

 북한의 해상도발과 우리의 대응을 종합해보면, 북한은 1973년 이래로 똑같은 주장을 해오고 있습니다. 군사우위를 달성할 때는 평화공세를 하면서 무력도발이 증가합니다. 북한한테는 우리와 합의한 사항, 국제법 모두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서해5도, NLL사수 사수정책을 잘 추진했을 때는 북한 도발이 감소되었고, 1998년도 이후로 지금까지 북한의 NLL 무력화 정책에 계속 속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서해 평화협력지대에 대해서 분석해보겠습니다. ‘서해평화협력지대’가 왜 등장하게 되었느냐의 과정을 더듬어 보면 2006년 3월부터 북한의 NLL재설정 주장에 대해 종합검토에 착수하기 시작했고, 5월에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논의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이걸 알고 재향군인회에서는 안보정책자문회의를 긴급히 소집했습니다. NLL 재설정 안 된다,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 안 된다, 보안법 폐지 안 된다는 문제를 토의했습니다. 그 검토결과와 군 원로 면담을 대통령님께 건의한 것을 신문보도를 통해 접했습니다. 이 건의가 받아들여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대통령님께서 계룡대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 가셔서 NLL문제를 언급한 것으로 보도가 되었습니다.

 

 2007년 5월에 드디어 서해 공동어로구역 설정, 북측 민간선박의 해주항 직항운항, 임진강 수해방지, 한강하구 골재채취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등의 골격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정상회담 발표 직전에 북한이 또 장성급 회담을 결렬시킵니다. 전형적인 전술이죠. NLL재설정을 하지 않으면 회담하지 않겠다고 협박합니다. 북한이 이렇게 나오니까 우리 정부는 잘못하면 정상회담이 없어지지 않겠느냐 해서 큰일이 난거죠. 정상회담 발표가 난 뒤에 바로 통일부 장관이 ‘NLL은 영토개념이 아니고…’ 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국방부는 급하니까 NLL변경문제를 유엔사에 타진했고, ‘유엔사의 사전허가 없이는 NLL재설정은 불가능하다’고 유엔 사령관이 분명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비서실장은 ‘우리가 제의하지 않아도, 북한이 제의할 수 있다’며 NLL논의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9월27일에 청와대에서 ‘DMZ와 NLL 평화지대화, 해주공단 건설방안 검토 중’이라고 언론에 보도 자료를 내보냅니다. 북한은 회담할 때까지 의제를 공개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김정일은 DMZ 평화지대화는 거부하고 NLL 평화지대화만 받아들입니다. 2007년 12월12일 남북장성급 회담에서 서해공동어로구역 설정에 실패했습니다. 12월28일까지 했던 조선·해운협력 분과위원회 회의에서도 합의사항이 없었습니다. 오늘 서해 평화협력지대 추진위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힌 것이 의제에 서해공동어로구역 설정이 들어있는데 국방부 참석자는 한명도 없습니다. 북한은 장관이 나오는데 우리는 NSC 상임위원장이 직접 나왔습니다.
 
 평화협정지대 내에 NLL와 공동어로수역, 북한 상선 문제가 있습니다. NLL문제는 아까 말씀 드렸고, 최근에 들어와서 북한이 공동어로수역을 이야기하면서 살며시 ‘우리가 여태까지는 다 달라고 했는데, 사실 우리 마음은 이 정도면 돼’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정부에서는 솔깃하죠. 이정도 주는 거라면 괜찮지 않겠느냐 싶은 거죠. 북한은 서해5도를 가져가기 위해서 엄청난 병력을 투입해놓았습니다. 서해병력의 60~70%가 여기에 집결해 있습니다. 우리 평택항 아래쪽에 있지요. 그래서 공군기가 떠도 (백령도쪽을 가리키며) 우리 군함은 공군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합니다. 튼튼하게 지키지 않으면 서해도서를 확보할 길이 없습니다. 지정학적, 군사적으로 우리가 불리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이 도와주는 겁니다. 24시간 공중에서 위성으로 쳐다보면서 도와주는 겁니다. 우리는 핵실험 장소도 몰라서 3일 동안 우왕좌왕했습니다.

 

 서해5도의 군사 전략적 가치입니다. 역대 참모총장님들이 말씀하신대로 수도권(인천·서울)을 방어하는 전초기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한국 생존이 걸린 핵심방어구역(Critical Defense Zone)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북한의 옆구리를 겨누는 비수죠. 지금도 연합사·유엔사·주한미군(정보 등)의 도움으로 힘겹게 방어하고 있습니다. 서해5도 지역에 나가있는 군인들은 항상 대함 유도탄의 위협을 느끼면서 생활합니다. 대함 유도탄이 날아오면 한두 발은 방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6, 7발을 맞으면 죽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 만큼 어렵습니다. 그러나 미군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그런 짓을 못하는 거죠.

 

 북한의 의도는 뭐냐? NLL을 조금이라도 무력화해서 전력을 전진 배치하여 서해5도를 고립시키고 장악한다는 겁니다. 목적은 도계선 이북을 통째로 다 가져가는 겁니다. 그러나 북한의 주장은 국제법 위반입니다. 아까 지도에서 보셨지만 연평도 위에 있는 조그만 석도, 암초도 1953년에 NLL을 작도할 때 영해를 주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국제법에 암초도 영해를 주도록 되어있습니다. 강력한 군사력 구축해서, 제3차 서해교전 발발 운운하며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군 배치를 해 놓았기 때문에 이 협박이 말로 하는 협박이 아닙니다.

 

 

  이 사진은 2007년 12월13일 장성급 회담에서 우리 실무자 해군 소령이 북한의 행위를 저지하는 장면입니다. 우리 측 방송기자들이 남북 수석대표의 첫 발언을 촬영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북측의 요구사항을 선전하기 위해 빔 프로젝터를 가동해 일정에 없는 브리핑을 하려고 하자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잠깐 나왔죠. NLL을 연두색으로 표시된 영역만큼 달라는 겁니다.

 

 지금 정부의 입장은 국방부와 통일부가 NLL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두 차례 교전을 우발적 무력충돌로 생각하는데, 절대 우발적 무력충돌이 아닙니다.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도발입니다. 여기서 판단을 잘못했기 때문에 무력충돌을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대북 군사유화 정책을 취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북한의 NLL침범과 통신망 규정 미 준수도 수용하는 거죠. 심지어 1년에 17번 내려오는데, 정상회담 직후에 2주 동안 5번 내려왔습니다.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논의 가능한 것으로 양보도 합니다. 북한의 전형적인 살라미 전술입니다. 하나씩 하나씩 가지고 가는 전술에 우리가 당하고 있는 겁니다.

 

  2007년 11월1일에 대통령님께서 하신 말씀의 언론보도를 제가 요약해 봤습니다. ‘NLL은 합의되지 않은 선이고, 국제법상 영토선 획정기준에 맞지 않는 선이다. 목숨 걸고 지킨 영토선, 그 말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그 선 때문에 아까운 목숨을 잃은 것 아니냐. 합의된 선이라면 목숨을 잃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NLL문제는 ‘어릴 적 땅따먹기 할 때와 같이 땅에 줄 그어놓고 네 땅 내 땅 그러는 것 같다. 그림까지 딱 넣고 합의도장 찍어버려야 하는데… 다시 긋는다고 우리나라에 뭐 큰 일이 나고 당장 안보가 위태로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정서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NLL문제 직접 거론하지 않고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축으로 우회해 해결한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NLL은 명백한 해상 군사 분계선으로 양보가 불가능합니다. 북한이 요구하면 우리가 동해 NLL 재설정을 요구하며 반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북한 해상 무력도발에 대해서 우리가 사죄를 요구해야합니다. 정전협정에 관해서는 관리주체인 유엔사와 사전 협의가 필수입니다. 우리가 아직도 힘이 없으니까 연합사·유엔사의 능력을 활용하여 북한의 도발을 억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2차 국방장관회담 합의사항의 ‘해상 불가침 경계선을 협의, 해결하자’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연합사와 유엔사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잠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국방백서에 나와 있는 것을 그대로 요약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연합사 작전계획으로 방어하고 있습니다. 연합사가 대한민국과 같이 방어를 한다는 겁니다. 어떻게 방어하느냐? 미군 현 병력의 50%인 69만 명과 전투장비가 자동적으로 오게 되어있습니다. 전쟁 나기 전부터 우리가 요청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옵니다. 함정 160척, 항공모함 5개. 여기 있는 토마호크는 구축함이나 잠수함에서 발사하는데 2500km를 날아가서 10m내에 떨어집니다.

 

 미군이 항상 이야기합니다. ‘어디를 맞힐까?’ 그래서 어느 아파트를 맞춰달라고 하면, ‘아니, 동 호수를 이야기해라’고 합니다. 우리 공군기를 다 합쳐봐야 600대도 안 되지 않습니까? 항공기 2000여 대가 옵니다. 질이 다릅니다. F-15도 무장이 다르지요. 해병대는 미 해병대의 70%입니다. 오키나와에 있는 것은 아마 24시간 내에 들어올 겁니다. 이 병력들이 우리 작전 계획상 못박혀있기 때문에 지금 이라크·아프간에도 파병을 못하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미군은 ‘이 작전 계획 때문에 우리가 죽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라크에 가 있는 미군의 25%가 예비군입니다. 이라크·아프간의 상황을 빨리 종료해야 하는데 대한민국 작전계획 때문에 병력을 못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동두천에 있는 1개 여단을 데리고 나갔죠. 미국 사람들은 약속을 하면 죽어도 지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걸 싫다고 하는 거죠. 69만 병력도 필요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싫다고 하는 69만 지원 병력을 이제 일본이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연합사가 앞으로 일본에 생길 겁니다. 유엔사는 북한의 재침 시 16개국이 자동 참전하도록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엔사가 연락 장교를 한국에 파견하고, 일본에 후방지휘소와 장비 저장시설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어도 남한을 공격하지 못하는 겁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왼쪽은 북한 측이 제안한 공동어로수역입니다. 오른쪽은 우리가 제안한 공동어로수역입니다. 그런데 등거리·등면적을 이야기했다가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 등면적으로만 한다는 거죠. 백령도 서쪽은 북쪽으로 올리고, 대신 소청도-연평도간은 NLL아래로 남쪽으로 파준다는 겁니다. 왜냐? 북한쪽은 상선들이 돌아다니고 군함들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실제로 공간이 없습니다. 또 해저가 전부 암반으로 되어있어서 고기가 별로 없습니다.
 
 이것은 주간에 조업하는 구역입니다. 앞으로 공동어로수역을 설치하면 큰일이 나는 거지요. 어선들은 조업구역을 설정해 놓아도 구역보다 위로 올라갑니다. 고기가 움직이는데 어떻게 합니까? 고기가 가는 곳으로 그물이 따라가는 거죠. 그래서 군함들을 전부 배치해서 못 올라가게 합니다. 조업구역을 위반했다고 사진을 찍어봐야 법원의 판사가 재판을 못합니다. 바다에는 이정표가 없기 때문이죠. 어디서 찍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 도망 다니면 잡을 수도 없습니다. 톨게이트처럼 바리케이드를 쳐서 길목을 차단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어쩔 수가 없는 거지요.

 


  

  우리가 최초에 공동어로수역을 생각해 낸 것은, 제 소견으로는 중국어선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연평도에서 NLL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인데, 이렇게 들어와 있다가 밤만 되면 우리 쪽으로 넘어와서 조업을 하고 갑니다. 많을 때는 600척 정도 옵니다.

 

 

 

  이런 식으로 북한 쪽으로 넘어와서 불법 조업을 하고 가는 거죠. 제가 있을 때는 영종도 근처까지 내려왔었습니다. 최근에 보니까 북한쪽에서 조업을 할 수 있는 비표를 팔아서 돈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공동어로구역 설정에 있어서 우리 정부의 의도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원천봉쇄하고, 어민의 소득증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2005년 7월에 최초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국방부 요구가 아닌 해양수산부의 요구로 합의가 되어서 남북 군사신뢰구축 방안으로 格上된 것입니다. 정부의 이야기는 평화수역으로 설정하여 군함은 들어가지 않고 비무장 선박으로 관리한다는 것인데, 북한에 행정선이 어디 있습니까? 북한은 어선 자체가 군선입니다. 잘못 판단하고 있는 거죠. 배 옆에서 군함이 지키고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NLL로부터 한참 밑에서 조업을 해도 군함이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NLL을 타고 내려온 북한군에 의해 다 잡혀갑니다.

 

 국방부는 어망을 많이 깔아놓으면 북한 잠수정이 남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북한 잠수함정이 활동하려면 40m 수심이 필요합니다. 어로구역은 수심이 27m밖에 안되니까 잘못 판단하고 있는 거지요. 북한의 의도는 조업문제가 아니지요. NLL을 무력화하고 NLL이남 해역 5개소를 역 제의하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북한의 중국 어선에 입어권 비표 판매는 세계일보 장인수 기자가 정확하게 기사를 써 놓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면 NLL의 고유기능인 비무장 지대가 사라집니다. 이미 언론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북한 어선은 군 소속 무장선박입니다. 요즘은 함포 유효사거리 4~8Km이기 때문에 만나면 서로 싸우게 되어있습니다. 지금은 NLL을 기준으로 해서 좌우 2km, 4km 넘어서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충돌이 없지 않습니까? 그 비무장 지대 기능을 유지해야 합니다. 북한은 예전부터 어선 사이에 경비함정을 붙여서 같이 내려왔습니다. 레이더 상에서는 똑같지요. 어선인지 경비함정인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가까이 가보면 그제야 하는 겁니다. 그런 북한군을 우리 서해5도 근처까지 와서 고기 잡도록 합니까? 육지로 올라오는 건 금방입니다.

 

 지금 해병대가 참 어렵게 방어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싸움 잘하는 팀들이 서해에 가있지 않습니까? 저도 연평도에서 근무했지만, 그렇게 훌륭한 팀이 없습니다. 해병대 아니면 저렇게 방어 못합니다. 북한 어선들이 오면 우리 도서로 이동하는 배들이 지장을 받지요. 그러므로 이것 또한 안보상 불가능 합니다. 많은 사람이 공동으로 고기를 잡으면 서로 이득이 아니냐고 말하는데 안보상 곤란합니다. 그렇게 좋은 것이면 예전 대통령들께서 이미 하셨지, 왜 지금까지 안 했겠습니까?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중국어선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백령도 서북방 북한수역을 통해서 들어오니까 그곳에 하는 것이 낫습니다. 또 어민 소득 증대를 위해서는 기존 어장 확장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연평어민들은 ‘NLL근해는 현재와 같이 어족 피난처로 관리해 달라’고 주장합니다. 이미 중국어선의 저인망식 조업으로  북한해역은 초토화가 되었고 우리 쪽도 황폐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북한 상선이 해주에 월 2~3척 입항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연안을 따라서 들어왔었습니다. 국방부는 해운 합의서의 연계로 간주하겠다는 건데, 그렇지 않습니다. 군사적으로 만만치 않습니다.


 

2005년 8월에 당시 통일부 장관께서 하신 일로, 지금도 자랑스럽게 자서전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조갑제 대표께서 지적하셔서 제가 그 책을 사보았는데,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분이 하신 일이 이겁니다. 북한 상선이 막 돌아다닐 수 있게 했고, 공동어로구역도 그 분의 작품입니다. 사실 북한 상선은 전부 다 군인이 타고 있는 정부 상선 아닙니까? 準군함입니다. 원래는 우리 영해 밖의 파란 선 항로로 다녀야 하는 겁니다.

 

 북한의 準군함을 우리가 허가해서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북한의 準군함은 우리 영해 인근으로 막 돌아다니고, 우리 군함은 밖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빨리 남북해운합의서를 폐지해야 합니다. 북북항로, 즉 북한에서 나온 배가 북한항구로 바로 간다면 제주해협을 통과해서 갈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북한에서 나와 제3국을 들렸다 오더라도, 한국에만 들어오면 이 항로를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해상은 지금 완전히 무방비 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2007년 9월에 소말리아에서 북한상선 대흥단 호가 소말리아 해적을 퇴치하고 나포하지 않았습니까? 미군의 도움을 잠깐 받았습니다만, 자동화기로 무장한 선박이지 않았습니까? 북한상선은 이미 정탐·간첩·테러행위 등 안 해본 게 없습니다. 특히 북한은 잠수함 전력이 많기 때문에, 우리 해역에 와서 작전을 하려면 수온이나 염도의 정보가 필요합니다. 상선에 수온과 염도를 측정하는 장비만 부착하면 우리나라에 와서 그 정보를 다 가져갈 수 있습니다. 아주 큰 일이 난 거죠. 해상작전에서 이미 지고 있는 겁니다. 반잠수정을 은밀 수송해서 야간에 진수를 해도 모르지 않습니까?

 

 또 전쟁개시 이전에 우리 해역에 공격 기뢰를 부설할 수도 있는 겁니다. 요새는 기술이 발달해서 공격 기뢰를 부설하면 1년 뒤에도 작동이 가능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기뢰에는 폭약이 800kg정도 됩니다. 군함 하나는 바로 폭파시킬 수 있습니다. 항공모함도 기뢰 한 방이면 바로 가라앉습니다. 남북해운합의서를 북한이 지금 지키고 있지도 않습니다. 제주해협 통과상선이 1년에 140척 정도 되는데 그 중에 통신응답도 하지 않는 게 22척입니다. 남북해운합의서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북한선박의 NLL통과허용은 안보상 불가능합니다. 결국은 잘못 체결된 남북해운합의서를 악용하는 북한의 살라미 전술에 우리가 농락당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남북회담대표의 구성을 보면,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평양까지 갔는데도 회담대표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회담 의제가 서해 NLL인데도 국방부 장관이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국방장관회담 2차 회담을 보면 해군이 한 명도 없습니다. 통일부와 외교부가 왜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인민무력부장이 현역 해군 차수 아닙니까? 해군소장도 한 명 있죠. 북한에 비해서 非전문가가 회담에 참석한 겁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과거 군사합의사항을 일괄 정리해야 합니다. 이번 국방장관 합의서 1조2항에 ‘군사적 합의사항을 철저히 준수하자’고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과거 군사합의사항을 전부 정리해서 북한이 지키지 않은 것은 과감하게 폐기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NLL 침범 등 위반에 대한 즉각적인 응징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주 좋은 레버리지(leverage: 목적달성의 수단)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쌀, 비료,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해운합의 등 안 되면 바로 중단하는 겁니다. 통신기 응답 안하면 그날 부로 끊어버리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손해 보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DMZ에 선전탑, 전광판 다시 세우면 되는 겁니다. 왜 안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서해평화협력지대는 공동어로구역의 설정위치를 변경해야 하고, 동해 NLL재설정 요구라든지, 지금까지의 해상도발에 대한 사죄 문제를 요구해야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만 나오면 피가 끓습니다. 휴전 이후에 NLL을 사수하다 포로가 된 장병 20명, 해경 2명이 지금도 북한에 있습니다. NLL 사수하다가 총 맞고 잡혀간 사람들입니다. 그 유가족들이 지금도 봉급을 받고 있습니다. 이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복수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군이 군인지… 이래서 누가 나가서 싸우겠습니까? 납북어부도 마찬가지입니다. NLL에서 조업하다가 납북된 것 아닙니까? 전부 송환을 요구해야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의 현실입니다. 북한 선박 해주직항로 이용은 북한의 한반도 적화통일 전략이 폐기될 때까지, 북한 선박이 국제적 규범에 일치할 때까지는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NLL 사수의지를 천명해야합니다. 국방부는 통일부한테 끌려 다니지 말고 주무부서로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전문가들 아닙니까? 합참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상작전지침도 재정립해야합니다. 이제는 통신기를 사용하니까 경고통신을 발신해서 NLL 월선 하는 순간에 경고사격을 하는 겁니다. 불응 시에는 격파사격해야 합니다. 우리 땅인데 왜 매일 내어주는 겁니까?  적으로부터 기습을 받지 않도록 원거리에서 조치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장도 더 좋습니다. 우리는 1980, 1990년도에 제조된 배인데, 북한의 1969년에 제조된 배한테 매번 얻어터지고, 코피 나고, 자식들 죽이고, 왜 그래야합니까? 저는 지휘관들한테 이야기합니다. ‘돌았느냐? 부하들 죽이고 다니고… 그러면 안 된다.’  정부에서 왜 그런 지침을 내리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장지휘관의 교전규칙이 있습니다. 적대의도가 있는지, 적대행위가 맞는지는 현장지휘관이 판단하도록 되어있습니다. 현장 지휘관이 판단해서 적성 선포하는 겁니다. 내가 위험할 때 먼저 때리는 것, 이게 선제공격입니다. 선제공격이 기본입니다. 군인의 ABC가 바로 선제공격입니다. 요즘은 무기체계가 워낙 발달해서 한번 맞으면 배 전체의 전기가 다 나가버립니다. NLL 이남해역에 대한 법적 지위 부여방안을 검토해야 합니다. 미국, 러시아 사례를 보면 핵심해역방어라고 해서 캄차카 반도라든지, 콜라 반도라든지 사우디아라비아 근처에 있는 해역은 미국이 핵심방어구역으로 정해놓았습니다. ‘이 구역에 들어오면 미국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도 핵심방어구역을 정하면 됩니다. 안되면 우리도 북한처럼 군사수역을 설정해 ‘군사수역은 북한에만 적용한다’고 하는 겁니다.

 

 1970년대에 朴正熙 대통령이 하시던 대로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합니다. 힘을 길러야 합니다. 시간이 많이 경과되었고 북한은 많은 투자를 해서 힘을 길렀는데 우리는 상대적으로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해병대가 ‘국방개혁 2020’에 따라서 4000명을 줄이도록 되어있습니다. 지금도 2만 몇천 명밖에 안되는데 거기서 또 4000명을 줄이는 겁니다. 그러면 서해5도에 있는 사람들이 빠져나가게 되는 거죠.
 
  최근에 북한이 지대함이라고 육지에서 함대를 공격하는 새로운 무기체계를 만들었답니다. 여기에도 대비를 해야 하고, 백령도와 연평도에 헬기장도 만들어야합니다. 지금 백령도, 연평도에는 함정이 계류할 수 있는 시설이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서해5도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없는 겁니다. 연평도 동쪽에 보면 당섬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당섬에서부터 4km 떨어진 바다에 고속정이 계류하고 있습니다. 파도가 치면 1분에 6번씩 쾅쾅 고속정을 흔드는 겁니다. 파도가 더 심해지면 평택으로 도망 옵니다. 날씨가 조용해졌다싶으면 새벽 2시라도 평택에서 떠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항구가 없으니까 빠삐용이라고들 합니다. 이래서는 안 되지요. 따라서 백령도 연평도에 함정 전개부두를 신설해야 합니다.

 

 다음은 회담전략에 대한 분석입니다. 앞으로는 주 의제에 맞는 대표로 구성해야합니다. 군사 분야에는 군사전문가 위주로 해야지요. 지금 군내에 NLL 전문가와 북한 전문가가 많이 부족합니다. 특히 NLL 전문가가 거의 없습니다. NLL 문제 때문에 항상 무력충돌이 나는데 합참에 해상작전부장(해군소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전략기획부장이 내려가서 도와주는 일이 발생하는 겁니다. 전략기획부장이 해상작전을 잘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내려가서 잘 도와주지도 못합니다. 전에는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가 해군의 원스타(준장)였습니다. 해군 원스타가 와서 제대로 답변하니까 북한이 보기 싫은 거예요. 그래서 ‘투스타로 올리자’고 제안합니다. 우리는 좋다고 했죠. 그런데 합참에 투스타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국방부 정책기획관, 육군이 가는 거죠. 육군은 NLL을 잘 모르지 않습니까?

 

 저도 해군생활 34년에 해상에서 10년간 있었습니다만 아직까지 NLL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오늘 강의 때문에 인터넷을 뒤지고 선배님들께 물어서 겨우 안 겁니다. 하물며 엊그제 임명받은 육군 소장이 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북한은 다르지 않습니까? 같은 직책에서 10년, 15년씩 한 전문가입니다. 김일성도 국무총리만 20년 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만 13년째 하고 있습니다. 우리하고 게임이 안 됩니다.
 
 회담 기법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정일은 왜 DMZ 평화지대화 제안을 거부하고 서해평화협력지대를 선택했는가? 육상작전을 모르는 저도 알 수 있습니다. DMZ에 있는 육상병력을 뽑아서 농경지에 돌리면 이익 아닙니까? 그러나 땅굴 관리가 안 됩니다. 북한이 남침할 때 통로개척이 안되기 때문에 안하는 겁니다. NLL은 무력화하면 양동작전으로, 동두천에서 2사단이 빠져나가면 육상으로는 그쪽으로 오고 해상으로는 서해로 들어오면 하루 만에 서울이 떨어져나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채택한 것이죠. 

  
 우리는 의제를 언론에 다 노출하지요, 왜 노출합니까? 똑같이 상호주의로 공개하지 말아야 합니다. 회담 장소도 우리는 제1차 국방부장관 회담을 제주도 민간호텔에서 하지 않았습니까? 북은 평양 군 전용시설에서 했지요. 회담이 끝난 다음에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다 듣고 있는 겁니다. 왜 그런 아마추어적인 실수를 합니까? 회담할 때마다 성과를 내라고 하니까 국가이익에 反하는 합의를 양산하는 겁니다. 이번의 정상회담 선언과 국방장관 합의사항을 보면 남북기본합의서에 비교했을 때 30점도 안 됩니다. 1992년도 남북기본합의서는 100점입니다. 앞으로 합의사항은 6하 원칙으로, 누가 언제까지 무엇을 합의한다고 작성해야합니다. 대신 북한이 먼저 이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먼저 이행하면 쌀 5만t 준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쌀 5만t 주고 나서 이행하라고 하니까 안하는 거죠.

 

 李明博 대통령 당선자께서 말씀하신 겁니다. ‘NLL에 대해서 국민은 헌법적 해석을 떠나 영토라고 생각하고 지켜야 된다고 생각한다. NLL을 확고히 막는 것이 충돌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 NLL을 제대로 안 지킬 때 마찰의 위험이 있다. 남북기본합의서에도 NLL은 남북이 지켜야 하는 선으로 돼있다. NLL에 대해서 여러 얘기가 있지만 통일이 될 때까지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서해교전 전사자 6명 영웅의 계급과 성명을 일일이 호명했습니다. 해군작전사령부에서도 장병들이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전화를 후배들로부터 받았습니다. 재향군인회에서는 당선자의 이 말씀을 들으려고 사람들이 아주 많이 왔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NLL은 분명히 해상 군사분계선(해상 휴전선)이고, 국가 생존선으로서 당분간 현재 기능을 유지해야 합니다. 국방부 주도로 정부 NLL 사수의지가 천명되어야 합니다.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정은(총리, 국방장관회담 등 합의사항 포함) 원점에서 재검토해야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단 하나도 이행해서는 안 됩니다. 서해5도와 NLL 사수를 위해서는 미국이 도와주지만, 우리도 우리의 값어치만큼 해야 합니다. 국방비를 2.7%로 책정하지 말고 3.2%~4%까지 올려서 방어가능 수준의 군사력 배치해야합니다. 미국 도움을 받을 때는 받더라도 우리도 이 정도는 해야 합니다. 제가 오늘 신문에 보니까 대만 검문도에 새로운 지대지 미사일을 배치한다고 합니다. 당분간 힘이 비축될 때까지는 연합사와 유엔사의 존속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코나스넷(www.konas.net)에 칼럼을 많이 올려놓았습니다. NLL 관련해서만 제목을 뽑아왔습니다. 한 번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 해군장교의 용기 (12.14)
▶ 남북 국방장관회담에 대한 분석 (11.30)
▶ 북한상선의 안보위협 (11.21)
▶ 서해 5도의 안전이 위태롭다 (10.22)
▶ 北은, 왜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 제의를 쉽게 합의했는가 (10.12)
▶ 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사후분석 (10.10)
▶ 남북공동어로수역은 ‘분쟁수역’이 된다 (10.8)
▶ 북방한계선(NLL) 협상은 이적행위다 (8.20)
▶ 북한의 해상침투전략을 차단하라 (6.15)
▶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6.4)
▶ 北 미사일 발사는 해상전투 예행연습 (5.28)
▶ ‘북한상선부산항입항’의 안보위협 (5.22)

 

제가 두서없이 많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감사합니다.

 

 

(趙甲濟 대표)  오늘 공부가 많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저도 시각적인 자료를 많이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에서 최근까지 근무를 하시고 NLL업무를 현장에서 경험하셨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이 주제로 강연 할 때는 김성만 전 해군작전사령관님이 가장 훌륭하신 강사라고 생각이 됩니다. 연말에 마지막 강연자로 모셔서 정신이 드는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강연에 나오셔서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은 다음에 또 나오시게 됩니다. 더구나 김 제독님은 NLL뿐만 아니라 34년 동안 해군에 계셨으니까 앞으로 기회가 많을 겁니다. 우리나라가 해방이후에 사실상 섬이 되어서 무역을 하면서 해양강국이 되고, 해양 문화권에 들어가면서 발전해왔습니다. 바다를 잊어서 망했다가 바다를 다시 찾아서 우리의 활동 공간으로 만드는 바람에 성공한 것입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李明博 당선자까지 포함하니까 최근의 네 대통령이 다 바다가 있는 지역에서 나왔어요. 金泳三, 金大中, 盧武鉉, 李明博 이 네 사람은 섬 아니면 해안에서 난 사람입니다. 바다가 민주주의와 맞는다는 것이 바로 여기에서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해양과 관계되는 부분에 시사적인 문제가 있으면 모셔서 말씀을 듣는 자리를 꼭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바다를 좋아해서 수산대학을 다녔어요. 바다에 나가면 제일 골치 아픈 게 멀미입니다. 어릴 때 침대생활을 하면 멀미를 안 한다고도 하는데, 멀미에는 약이 없죠. 선장도 남의 배를 타면 멀미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원들이 이런 농담을 합니다. ‘바다에서 번 돈은 처자식 먹여 살리기도 아깝다.’ 사실 해군은 바다에 떠있는 24시간이 전부 근무 시간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육지에서 사는 상황과 항상 움직이고 30도씩 기우는 바다에서 생활하는 상황은 완전히 다른 거죠. 그러니까 바다에서 생사를 걸고서 항로를 개척하고 식민지를 개척한 사람들이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서 식민지를 다스리며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것은 그 사람들이 바다에서 고생을 했기 때문입니다.

 

 마젤란이 세계 일주를 하고 2년 만에 돌아왔습니다만 5정에 250명의 선원이 출항했는데 다 죽고 마지막에 돌아온 사람은 20명이 안됩니다. 마젤란도 필리핀에서 죽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 사람들이 뿌린 흔적을 따라서 스페인이 17세기에 세계 최강국이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안보 문제 속에서, 생활 속에서 바다라는 존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합니다. 바다를 아는 사람과 바다를 모르는 사람은 지식의 깊이가 완전히 달라요. 한국에는 바다를 모르고 지식인 행세를 하는 사람이 많고, 바다를 모르면서 국방장관이 나가 북한과 이야기를 하면 그 전문성에서 큰 차이가 나게 되죠. 더구나 육지에 있는 사람은 바다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해군이 협상과정에서 소외되었다는 것은, 축구경기에 야구선수를 데려와서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회가 워낙 전문화되어서 전문가가 아니면 이제는 발언할 자격이 없습니다. 야구감독이 히딩크의 자리에 앉아서 우리나라 월드컵을 지휘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가끔 정치 분야에 가면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합니다. 그것의 실패사례로 盧武鉉이 여실하게 증명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전문가가 아니면 안 됩니다. 정치권에서 실력 있는 안보 전문가가 나와야 하는데, 다행히 한나라당에 육군출신 黃震夏씨라든지 훌륭한 분들이 있습니다.

 

 안보문제는 대통령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명박 당선자의 어록을 보니까 든든한 이야기를 했는데 각론으로 들어가서 실천적으로 할 경우에 김 제독님이 마지막에 대안으로 제시한 ‘약속을 하되 북한이 先이행 하도록 해야 한다’는 식으로 남북관계의 틀과 원칙을 바꿔야합니다. 지금 말씀 들으면 이해가 안가는 게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해서 GNP가 북한의 100배가 되었는데 어떻게 해군에서는 미국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서해5도를 방어하기가 어렵게 되었느냐는 겁니다. 그동안의 돈이 다 어디 갔느냐, 아니면 우리가 부담하고 있는 국방비가 너무 적은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사실 국방비 2.5%, 2.6%는 세계에서 굉장히 낮은 축에 듭니다. 다른 것을 줄이더라도 국방비는 더 올려야합니다. 쓸데없는 위원회 다 없애버리고 그 돈을 가지고 배를 한 척이라도 더 만들어야지 어떻게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NLL전선에서는 북한에 밀리고 있는 현상이 있을 수 있습니까?

 

 보수 정권이라는 것은 경제를 잘 하는 정권이기도 하지만, 그 핵심은 안보를 확실하게 챙기는 것입니다. 무역이나 장사꾼은 흥정도 하지만 안보에 있어서는 비타협적일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안보는 주로 영토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따라서 안보를 책임지는 것은 CEO의 분야와는 다른 분야입니다. 목숨을 걸고 국가와 민족, 국익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주 감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난 12월19일의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나서 계산해 보니 오늘이 딱 열흘째입니다. 열흘 동안 일어난 변화가 굉장히 많아요. 좌파세력 안에서는 지금 내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통합 민주신당에서 20명 정도 이탈해서 이라크 파병 연장 동의안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이것도 이번 선거의 결과입니다. 민노당 안에서는 친북세력과 순수한 노동세력이 싸우는 자세를 취하고 있어요. 순수한 노동세력을 우리가 지원해줘야 합니다. 노총, 노조운동은 괜찮다는 겁니다. 그러나 親北 노조운동은 하지 말고 反北 노조운동을 하라는 겁니다. 그 움직임이 민노당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좌파가 참패를 당한 후에 세력이 약화되고 정신을 차리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보수 세력은 강화되고 있지요. 盧武鉉 정부는 李明博 당선자 측에서 만든 인수위 산하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한나라당은 여당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15.1%의 지지를 받은 李會昌씨는 선명보수정당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2008년 총선에서는 386출신 국회의원들이 대거 탈락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386출신의 대표 주자처럼 보였던 柳時敏이라는 사람도 출마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불과 1년 전에는 대통령 후보에 나올 사람으로 여겨졌던 사람이 이제는 국회의원 선거에 나올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12월19일 선거에서 여론의 확실한 보수화 영향입니다.

 

 방송이 하루아침에 달라졌습니다. 이명박 당선자가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하겠다고 하고, 한미일 동맹을 강조하니까 한국의 위치가 동북아시아에서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김정일의 심부름꾼인줄만 알았는데, 이제 한국이 큰 소리를 치기 시작하면 전통적인 한미일의 협조관계가 복원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정권이 이상하게 지금까지 이명박 후보의 당선에 대해서 일체 보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계산을 하는 것 같아요.

 

 한편 보수 세력들은 좌파정권 종식이라는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기분 좋은 면도 있지만, 약간 허탈한 기분이 들 겁니다. 선거기간 중에 몇 개 단체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이명박, 이회창 쪽에 지지를 선언했기 때문에 중립적인 위치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애국운동 세력이 약화되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애국운동을 모색해야 할 시점입니다. 그 과정에서 保守 自淨운동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보수의 손으로 보수의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된다는 이야기죠.

 

 어제 이명박 당선자가 전경련 지도자들하고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왔어요. 재벌 회장들이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불법 파업을 공권력을 동원해서 반드시 해결해 달라.’ 백번 옳은 이야기지요.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불법파업 해결은 좋은데, 그럼 불법 비자금 수사는 누가 하느냐? 기업의 불법 비자금은 수사하지 않고 대통령 당선자에게 불법파업을 단속해달라고 하면 그 말이 먹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월19일 전에는 별로 그런 생각이 안 들었는데, 보수 세력이 주인이 되고 나니까 그런 문제까지도 이제는 공평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벌이 비자금을 조성해서 한국의 지도층을 오염시키고 부패시키는 저수지 역할은 이제 그만해야합니다. 그렇게 해야 불법 폭력시위를 말이 통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12월26일에 노무현 대통령이 BBK 이명박 특검법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발효를 했습니다. 당선자가 특검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主權은 국민에서 나옵니다. 국민은 주권을 어떤 식으로 행사하느냐? 우선 투표를 통해서 행사합니다. 12월19일에 국민들은 주권행사를 통해서 이명박씨를 대통령으로 뽑았습니다. 동시에 그 하루 전에는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국회가 특검법을 통과시켰어요. 주권행사가 두 가지 형태로 나왔습니다. 하나는 이명박씨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고, 또 하나는 국회를 통해서 BBK 의혹을 조사해야한다는 주권행사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놓고 보면 이명박씨를 대통령으로 뽑는다, 그러나 BBK의 문제는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는 두 가지 국가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주권이라는 것은 국가의지입니다. 국가의지는 원래 국민으로부터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국민이 하나하나 간섭할 수 없으니까 그것을 집행하는 기관으로서 대통령이 있고 국회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BBK의 사실관계는 밝혀야 한다는 선택을 대한민국이 투표를 통해서, 국회를 통해서 했다는 것은 굉장히 성숙된 판단인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선택은 서로 모순되는 게 아닙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이명박씨가 이겼으니까 특검법은 거부되어야 한다고 12월19일 직후에 이야기했는데, 오히려 이명박씨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을 했습니다. 이게 바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성숙되는 것의 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수층이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은 安保입니다. 오늘 강연을 듣고 새삼 느낀 게 있었습니다만, 안보문제에 대해서 지난 10년 동안 대통령이 앞장서고 거기에 맹종하는 관리들이 심부름을 열심히 하고, 그것을 김정일 정권이 잘 조종해서 우리나라 안보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까 강연 중에 말씀하셨습니다만, 전쟁하면서 ‘먼저 얻어맞아라, 반격해서 이겨라’ 하는 것이 교전지침으로 내려오는 만화 같은 반역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적당히 바꾸면 안 되고 확실히 바꿔야 합니다. 어제 이명박 당선자가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더니 ‘앞으로는 전임자를 잘 모시는 전통을 만들겠다’고 했어요. 이 문제는 전임자 잘 모시는 것과는 관계없는 거죠. 헌법을 잘 지킨 대통령은 전임자로 잘 모셔야 되지만 헌법을 유린한 대통령 반드시 법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전임자를 잘 모시겠다’는 분위기에 맞춰주는 정신으로는 안보문제는 제대로 서지 않습니다.

 

 대통령 선거 공약에 최소한의 조건으로서 안보문제가 나왔어야 하는데 안보문제는 싹 빼버리는 안보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있으면 3분의 2가 아니라 4분의 3 의석을 차지하더라도 김정일한테 끌려 다니게 됩니다. 과거 보수 세력의 비판은 반대였지만 이제는 지지하면서 비판하니까 그 말을 듣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훨씬 비판의 목소리가 훨씬 효과가 있게 되어있으니까 이 기회를 잘 살려야겠다고 생각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안보나 국가, 민족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이 보고 느껴야 합니다. 보고 느끼기 위해서 기념물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우선 李承晩, 朴正熙 기념관을 만들어야합니다. 지난번에 KBS 감사위원을 하신 李喆浩 선생님이 좋은 아이디어를 말씀하셨는데 학교와 마을마다 6󈸩 전사자 기념비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기 학교 출신의 6󈸩 전사자들을 찾아 이름을 새겨서 학교 정문 앞이나 교정 한복판에 세워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등하교하는 학생들이 그 이름을 보고 ‘이 분은 우리 삼촌이다, 할아버지다’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느끼는 안보와 국가는 완전히 다르죠. 그거 만드는 데 무슨 돈이 듭니까?

 

 그리고 마을마다 만들어야 되죠. 우리 읍 출신의 6󈸩 전사자, 월남전 전사자, 서해교전 전사자, 휴전선 근무 전사자 이런 사람들 명단을 모아 기념비에 새겨 넣어야 합니다. 그렇게 안보를 생활화해야 우리의 어린 영혼들이 오염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아무도 전교조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지금 인수위가 만들어져도 우리의 젊은 세대, 미래세대를 전교조로부터 어떻게 지켜낼 것이냐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만큼 보수 세력의 역할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목표 달성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제는 실천이 가능한 일의 리스트를 만들어서 하나씩 줄 그어가며 하는 것, 이게 바로 살아있는 국민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일 년 동안 매주 강연을 하려고 하니까 처음에는 잘 될까 싶었는데 오히려 매월 한 번 할 때 보다 더 많이 오셨어요. 그만큼 세상일이라는 게 예측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 좋은 뜻으로 하는 것이고, 한국에는 좋은 뜻을 가진 분들이 너무나 많으니까 지난 7개월 동안 아주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좌파정권을 종식시키는데 하나의 작은 역할을 했다고 확신하면서 연말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일 년이 여러분의 생애나 저의 생애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해였습니다. 2008년에는 여러분들이나 저나, 또는 우리가 모실 강사분이나 주인 된 입장으로 서울의 여론이 형성되는 광화문 한복판에서 현대사 강좌가 하나의 제도와 전통으로 굳어져 100회, 1000회 계속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이 협조해 주신데 대해서 거듭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2013-07-05, 12: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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