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明博, '이념 없는 보수' 김영삼을 따라가는가?
보수세력의 敵은, 아직도 이념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이념은 낡은 것이니 실용만 하면 된다고 속삭이는 가짜 보수이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한국의 보수층은 보수를 자처했던 金泳三 대통령에게 배신당한 경험이 있다. 1992년 12월 大選에서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약200만 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된 金泳三씨는 盧泰愚 5년간의 민주화 실험기를 정리하고 한국을 一流국가로 도약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 金大中씨는 은퇴를 선언했고, 국회에서 민자당은 안정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최초의 文民대통령이란 그의 선전에 속아주는 국민들도 많았다.
   그는 굴러온 복을 차버렸다. 그가 중용한 좌파적 참모들을 통해서 그의 뇌구조 속으로 좌경적 역사관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는 좌파의 宿主로 변해 보수세력을 분열시켜 金大中의 정계복귀를 허용하고 나라를 外換위기로 몰고가더니 드디어 좌파정권 등장의 1등 공신이 되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자말자 좌경적 참모들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 부정적 역사관과 국가관, 그리고 애매한 對北觀의 포로가 되었다. 좌파 후원자 역할을 열심히 하면서 좌파들이 박수치는 일만 골라서 한 그였다. 무늬는 보수였으나 한 일은 좌파였다. 좌파 10년이 아니라 金泳三 시대까지 넣어서 좌파 15년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공부가 없는 보수가 전략전술에 능한 좌파에 조종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金泳三이다. 벌써 이명박 정부의 초기 모습이 김영삼과 닮았다는 말이 나온다. 먼저 金泳三 대통령이 한 일들을 본다.
  
   1. 좌경적 역사관을 가진 참모들을 요직에 썼다.
   2. 취임사에서 북한정권의 對南전략에 동조했다. ‘민족이 동맹보다, 이념보다 우선한다’고 선언했다.
   3. 장기수 이인모를 북한에 보냈으나 기대했던 납북어부를 데려오지 못했다.
   4. 건국 후의 자랑스런 현대사를 정통성이 없는 부끄러운 역사라고 깡그리 매도했다.
   5. 소위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 역대 대통령 집무실을 철거했다. 민족정기를 되찾는다면서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건물인 옛 중앙청도 철거했다. 근대화의 상징인 남산외인아파트도 폭파시켰다. 이를 중계방송했다. 선배세대의 땀이 서린 건물이 무너질 때 박수를 쳤던 국민들은 한국 경제가 무너질 때 피 눈물을 흘려야 했다.
   6. 6.25는 內戰이니 기념할 필요가 없다면서 전쟁기념관을 없애려다가 국민들의 반발을 사 계획을 거두어들였다.
   7. 反자본주의적 언행을 많이 했다. 재산 많은 사람이 고통 받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공직자 재산등록을 실시하고는 가장 재산이 많은 공직자는 犯法 여부에 상관 없이 물러나게 했다. 지금 법무장관인 정성진씨는 부인이 받은 유산이 많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사직해야 했다.
   8. 박정희 시절 국회가 통과시켰던 국민 교육 헌장을 없애버렸다.
   9.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日帝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유를 갖다대더니 초등학교로 改名했다. 국민학교 명칭 변경 운동을 주도했던 이는 북한 간첩으로 밝혀져 체포되었다.
   10. 北核 위기가 닥쳐오자 對北강경책을 쓰려는 클린턴 행정부에 반대했다. 미국은 할 수 없이 한국정부를 따돌리고 북한과 제네바 협정을 맺고는 경수로 건설 등의 부담을 한국에 돌렸다. 韓美공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미국이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한국에 배치하려고 하니 북한을 자극한다면서 반대했다.
   11. 전교조 해직 교사들을 복직시켰다.
   12. 군사문화를 매도했다. 文民정부라는 말로써 군대를 소외시켰다.
   13. 보수대연합 구도인 민자당을 해체하고 김종필을 추방하고, TK 세력을 배제하여 보수 분열을 가져왔다. 이것이 김대중 정권의 등장을 가능하게 하였다.
   14. 역사의 평가에 맡겼어야 할 12.12 사건과 광주사태를 소급입법으로 재조사하여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냈다.
   15. 자신은 1992년 대통령 선거 때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1000억원이 넘는 비자금을 선거자금으로 제공받았다. 그는 노태우 비자금이 폭로되자 “나는 결백하다”면서 “내가 청와대에 들어오니 금고가 있었다. 철거시켰다”고 자랑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퇴임할 때 그 금고에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넣어 인계했다고 한다.
   16. 노태우 전 대통령이 비자금 수사로 구속되던 바로 그때 김영삼 정권은 간첩수사 등에 쓰여야 할 안기부의 돈(또는 대선잔금) 1000억원을 빼내 여당 선거운동에 쓰게 했다.
   17. 일본을 향해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말했다. 일본은 외환위기 때 긴급지원을 애원하는 金泳三 정부의 요청을 거절함으로써 한국이 IMF 관리체제로 갈 수밖에 없도록 했다. 일본이 그의 버르장머리를 고친 셈이다. 그는 퇴임 후 일본의 한 대학교에 출강하여 재일동포들이 민족적 수치심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18. 신한국당 총재인 그는 李仁濟씨가 경선에 불복하여 탈당하고 출마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19. 선거 직전에 터진 金大中 비자금 수사를 중단시켜 그의 당선을 도왔다.
   20. 다른 사람을 실명제로 묶어놓고는 아들의 실명제 위반을 방치하다가 아들을 결국 감옥에 보내야 했다.
   21. 그가 부정적 역사관에 빠져 보수세력을 배신하고 대한민국 건국의 선배들을 욕하고 돌아다니지 않았더라면 좌파의 집권은 없었을 것이다. 김영삼의 가장 큰 업적은 좌파정권 10년을 위한 카피트를 깐 점이다.
  
  
  
   李明博과 金泳三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본다.
  
   1. 두 사람 다 장로이고, 큰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는 오만의 근거가 될 수 있다.
   2. 두 사람 다 안보나 이념문제의 중대성에 대한 自覺이 부족하다. 이런 상태에선 좌경적 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
   3. 제왕적 대통령직에 오르기만 하면 아부족들에게 둘러싸일 가능성이 많다. 이것은 한국의 오랜 정치문화이기도 하다.
   4. 좌파 경력을 가진 참모들이 주변에 많다. 실력도 없고 경험도 얕은 교수출신들을 중용한다. 대체로 한국사회의 一流들을 모으지 못하고 2류, 3류를 모은다.
   5. 李明博씨는 큰 조직을 운영한 경험이 있고 서울시장 시절 행정능력을 평가받았다. 金泳三은 생산적 조직운영의 경험이 全無했다.
   6. 李明博씨는 명분론을 싫어하고 金泳三은 명분론의 포로가 되었다.
   7 .李明博씨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위선적 국정운영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회사도 간부들 의견을 듣고 끌고 가야지 말단 직원들이 하자는 대로 하면 망한다. 대통령이 나라를 민중 중심으로 운영하려 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유권자들이 대통령의 善意에만 목을 매는 것은 보조 자일 없이 인수봉을 오르는 것과 같다. 정치이든 경제이든 견제와 경쟁구도에 놓여야 부패, 무사안일하지 않는다. 한국의 보수층은 이명박씨가 배신하지 못하도록, 또 스스로 배신당하지 않도록 지혜를 짜내어야 한다. 속는 사람이 속이는 사람보다 더 나쁠 때가 있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대한민국 헌법을 지키겠다는 집단이다. 헌법이 보수세력의 이념이다. 보수의 이념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이다. 보수세력의 敵은, 아직도 이념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이념은 낡은 것이니 실용만 하면 된다고 속삭이는 가짜 보수이다. 이념 없는 보수는 안보, 法治에서 실패하고 종국엔 경제를 망친다. 그리하여 살찐 돼지 신세가 되거나 좌파의 宿主가 된다. 김영삼처럼.
  
  김영삼에 속았던 국민들이 또 다시 李明博의 좌파宿主化를 허용한다면 대한민국은 자유통일도, 一流국가의 꿈도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김영삼은 그때까지의 역대 정권이 合心 노력하여 코너로 몰아넣은 북한정권에 活路를 열어놓았고, 집안에서 호랑이를 키움으로써 좌파정권 10년의 반역을 가능하게 했다. 국민들은 더 깨어 있어야 한다.
[ 2008-03-01, 20:5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