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말고 식 폭로-정의구현사제단
1987년 대통령 선거 개표결과가 컴퓨터로 조작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그해 있었던 김현희에 의한 대한항공 폭파사건도 조작되었다는 의혹을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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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울시청광장에서 집회를 가진 자칭 정의구현사제단은 1987년 대통령 선거 개표결과가 컴퓨터로 조작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그해 있었던 김현희에 의한 대한항공 폭파사건도 조작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한 前歷이 있다. 이 두 의혹제기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는데도 사제단이 사과했다는 소식은 접하지 못했다. 아니면 말고 식 폭로로 실추된 대한민국 국가기관의 명예는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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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구현 사제단의 허위 폭로 사례
  
  1987년 선거의 컴퓨터 부정개표 주장과 KAL 폭파 의혹설 주장은 다 허위로 밝혀졌다.
  월간조선
  
  
  편집자 注: KAL 858기 폭파사건 조작 의혹을 반박하는 月刊朝鮮 2002년 1월호 「과연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 제하의 기사다〕
  
   과연 누구를 위한 正義인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KAL 858편 사건에 의혹을 제기
  
   컴퓨터 조작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는데도 사과가 없었다. 安企部 발표문·수사자료·재판자료만 읽어도 거의 해명되는 「金正日 지령 테러범죄」에 대해서 사제단이 새삼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상상의 집」이 아닌 「진실의 집」을 지으려면 사실확인이란 기초 工事가 튼튼해야 한다. 사제단의 「정의의 칼끝」은 金正日을 향해야 하지 않을까?
  
   金成東 月刊朝鮮 기자 (ksdhan@chosun.com)
  
   왜 이 시점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가
  
   답답한 일이다. KAL 858편 폭파사건 조작 의혹을 놓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기사를 써야 한다는 게 기자로서는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귀찮은 일이다. 상식으로 생각하면 진실이 보이는데, 상식을 뒤틀어 보는 일부의 시각 때문에 KAL 858편 폭파사건과 관련된 기사를 또 작성해야 한다니 참으로 귀찮은 일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때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일컬어졌던 「진리에 살고 진리에 죽는다」는 신부님들의 모임에서조차 의혹 제기에 나섰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동안 KAL 858편 폭파사건 조작 의혹과 관련, 일부 단체와 시민들의 문제제기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이 나섰다. 사제단은 2001년 11월23일 천주교인권위원회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이른바 「대한항공 858편 사건 관련 7大 의혹」을 제기했다. 표면적으로는 같은 해인 1987년에 일어난 「수지 김 사건」이 조작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KAL 858편 폭파사건 역시 조작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기자로서는 정말 이런 의혹 제기를 하는 측이 KAL 858편 폭파사건이 조작이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인지, 정말 조작이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서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피해자 가족들은 사건 발생 후 지금까지 14년 동안 줄곧 의혹을 제기해왔다는데 왜, 이제서야 피해자 가족들의 목소리에 닫았던 귀를 열고 대신 입을 열어 외쳐 주는 걸까. 피해자 가족들이 사제단에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냈다고는 하지만 진정을 낸 사람들은 피해자 가족의 전체가 아니라 일부일 뿐이다.
  
   피해자 유족회 집행부는 『「대한항공 858편 폭파 희생자 유족회」라는 단체 이름으로는 KAL 858편 폭파사건에 조작 의혹이 있으니 진상을 규명해 달라는 진정을 사제단에 한 바도 없고 할 생각도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제단과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KAL 858편 폭파사건의 조작 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서 통일연대 등 일부 재야·사회 단체들이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한다며 2001년 12월 초 「김현희 KAL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를 발족시켰다. 사제단은 통일연대의 소속단체로 참여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제기한 의혹의 대부분은 안기부 발표문, 검찰의 공소장 등 관련 기록을 검토하면 해소되는 의혹이라는 데 있다.
  
   시민대책위가 2001년 11월29일 국정원에 보낸 공개질의를 보면 세 번째 문항에 이런 내용이 있다.
  
   <수사발표時 김현희의 아버지는 「현재 앙골라주재 북괴 무역대표부 수산대표」라고 했으나 안기부는 1988년 3월호 일본 문예춘추에 확인중이라고 바꿔 말했습니다. 그러면 미확인사항을 발표한 이유는 무엇이며 확인결과는 무엇입니까?>
  
   1988년 1월15일에 발표된 안기부 수사발표문 4쪽에는 김현희의 아버지 김원석씨의 직책과 관련해 이렇게 씌어 있다.
  
   <아버지 김원석은 1962년에서 1967년까지 쿠바주재 북괴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근무한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그후 소련주재 북괴대사관에서도 근무한 바 있고, 현재는 앙골라 주재 북괴 무역대표부 수산대표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확인중에 있습니다>
  
   분명히 안기부는 수사 발표 때부터 『확인중에 있습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의혹을 제기하기에 앞서 최소한의 사전준비라고 할 수 있는 안기부의 수사발표문조차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상상의 집」을 지을 때는 기초공사가 필요 없지만 「실제의 집」을 지으려면 튼튼한 기초공사는 기본이다.
  
   사제단은 천주교 인권위원회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천주교 인권위원회는 KAL기 유족들의 진정을 접수하고 KAL기 사건에 대한 再검토 및 관련자료를 토대로 확인과정을 마쳤습니다』
  
   컴퓨터 조작설 내놓고도 사과 없는 사제단
  
   사제단은 과거에도 「신중치 못한 처신」을 한 前歷이 있다. 1987년 大選 컴퓨터 조작설이 그것이다.
   1987년 12월16일 大選 직후 당시 金泳三 후보와 金大中 후보는 盧泰愚 후보의 당선에 불복했다. 金大中씨를 대통령 후보로 낸 평민당은 같은 해 12월29일 「12·16 선거의 5大 의혹을 고발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5大 의혹」 가운데 하나가 컴퓨터 조작이다. 당시 在野도 평민당과 마찬가지로 컴퓨터 조작설 등을 제기하며 1987년 大選은 부정선거라는 입장을 펼쳤다.
  
   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난 1988년 1월16일 당시 사제단 대표 金勝勳 신부와 천주교 공정선거 감시단 吳泰淳 신부는 대법원에 「대통령선거 무효소송」을 제기했다(대법원은 이 소송에 대해 1989년 5월11일자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통령 선거 무효소송을 낸 한 달 후인 1988년 2월16일 사제단과 천주교 공정선거 감시단은 「12·16 선거 컴퓨터조작 증거포착」이라는 자료를 공개했다. 자료를 공개하면서 두 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개표가 진행되면서부터 나돌기 시작한 컴퓨터 조작설에 대한 조사 결과 조작설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증거를 다수 포착하였다』고 주장했다.
  
   開票상황을 보도하는 텔레비전 화면 등의 증거자료를 함께 제시하면서 사제단 등은 『12·16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사전 계획된 지역별 후보별 득표별 조작에 맞춘 TV방영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선관위의 집계는 시차를 두고 TV 집계에 접근시켜 결과에 합법성을 부여하려 했다는 의혹을 씻을 수 없다』고 밝혔다.
  
   사제단 등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컴퓨터 조작설은 선거 부정을 자행한 정권의 퇴진과 대통령 당선자의 사퇴 등 헌정의 중단을 초래할 정도의 「파괴력을 갖는 폭로」였다.
  
   때마침 13代 국회 구성을 위해 1988년 4월26일에 치러진 總選은 헌정사상 최초로 집권당의 의석이 야당 의석보다 적은 與小野大 국회를 탄생시켰다. 與小野大의 13代 국회는 1988년 7월8일 「兩大선거 부정조사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 특별위원회는 1990년 7월14일까지 2년여 동안 컴퓨터 조작설을 조사했다.
  
   그 결과 조작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나타난 후보들의 득표 집계와 선거관리위원회의 개표상황과 차이가 난 것은 방송사들의 속보경쟁으로 인해 초래됐다는 사실 등이 밝혀진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가 표를 검산하는 동안 방송사들이 채 검산되지 않은 집계 결과를 방송사로 송고하면서 빚어진 해프닝인 것으로, 요즘도 선거개표 방송時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컴퓨터 조작이 사실이라고 믿었다면 사제단 등은 컴퓨터 조작설과 함께 再개표를 요구했어야 했다. 사제단과 金大中 측은 再개표 요구를 하지 않았다.
  
   미국과 일본 등이 국제적으로 확인한 사건
  
   기자는 再개표 요구를 왜 안 했는지를 묻는 질의서를 사제단에 보냈다. 기자가 보낸 질의서에는 KAL 858편 폭파사건 조작 의혹 주장과 관련된 질의도 포함됐고, 12월13일까지 답변을 요청했다. 사제단 측은 『13일까지 답변은 어렵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사제단 지현만 사무국장은 『당시 컴퓨터 조작설을 제기한 신부님들이 해외에 나가 있는 등의 이유로 현재로서는 답변이 어렵다』는 입장을 전해 왔다.
  
   컴퓨터 조작설은 國政의 낭비와 불신풍조 조장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문제를 제기했던 사제단은 그 결과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사과도 없었다. KAL 858편 폭파사건 역시 컴퓨터 조작설 같은 무책임한 의혹제기로 국가적 낭비를 초래하게 될 우려가 크다.
  
   기자가 무책임한 의혹제기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근거는 지극히 상식적인 데서 출발한다. 「사건 후 김현희의 얼굴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 널리 알려졌는데도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북한 이외의 지역에서는 왜 가족은 물론 심지어 같은 마을에 살았다는 사람, 학교를 같이 다녔다는 사람조차 안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 그 첫째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은 대한민국 정부만의 주장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사실이 공인된 사건이다. 미국과 일본, 바레인, 미얀마, 인터폴 등 이 사건 수사에는 여러 나라와 국제기관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기 前 이 사건을 독자적으로 조사했다. 이 조사에서 미국은 ▲金賢姬가 머물렀다는 東유럽 소재 북한 관리의 집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金賢姬와 金勝日 두 공작원이 소지했던 청산염 앰플을 분석한 결과 과거에 체포된 북한 공작원들이 소지했던 앰플과 화학적으로 동일하다는 등의 결론을 내렸다. 이 조사결과는 1988년 2월4일 美 하원 외무위의 「아시아 태평양 소위」 주재 「KAL 858편 폭파 청문회」에서 발표됐다(자세한 내용은 月刊朝鮮 2001년 11월호 145쪽 참조).
  
   일본도 이 사건과 관련된 조사를 벌였다. 金賢姬와 金勝日이 소지한 위조여권이 일본인 여권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당국은 여권을 위조하는 데 필요한 서류를 제공한 인물은 일본이 북한 공작원이라고 판단, 추적해온 인물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일본과 이 사건이 더 깊은 관련을 맺게 된 것은 「이은혜 사건」이다. 金賢姬가 1988년 1월15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에서 납치된 이은혜라는 여인으로부터 日本人化 교육을 받았다고 밝힌 것이다. 金賢姬의 기자회견 내용을 토대로 일본 경찰은 사실확인에 나섰고, 이은혜라는 여인이 1978년 6월 東京 신주쿠區에서 사라진 타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이타마縣 경찰은 조사에 들어간 지 3년4개월여 만인 1991년 5월15일 『이은혜는 다구치 야에코』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의 발표 후 일본 정부는 북한에 이 문제의 조사를 요구했다. 북한이 반발함으로써 당시 진행되던 日北수교 협상은 결렬됐다. 이 문제는 지금도 日北 수교협상에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밖에도 바레인 정부는 1988년 1월6일 KAL 858편 사고조사 보고서를 보내왔고, 미얀마 내무성도 1987년 12월15일 KAL기 잔해 발견과 관련된 발표를 했다. 인터폴은 한국 수사당국에 金賢姬의 오스트리아, 헝가리, 유고 체류 사실 등을 확인해 주었다.
  
   지엽적 의문을 사건의 본질에 대한 의문으로 확대시켜
  
   특히 미얀마 내무성은 『수거된 KAL 858편 잔해의 상태로 보아 사고기는 순간적인 충격과 함께 고열을 받아 공중 폭발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탑승객 중 생존자는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하는 한편 KAL편 잔해를 한국 정부에 인계했다.
  
   KAL 858편 폭파사건 수사에는 범인 인도 등의 이유로 여러 나라와 국제기관이 개입했다. 사건이 조작된 것이라면 한국의 정부나 공안당국은 사건의 성격상 수사 관련자뿐만 아니라 최고위층까지 포섭을 했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가능한 일이었을까.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사제단과 천주교인권위가 제기한 「대한항공 858편 사건 7大 의혹」을 간추리면 블랙박스 수색작업 등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잔해가 발견되지 않았고, 金賢姬의 자백 외에는 증거가 없으며, 金賢姬의 진술 중 일부가 사실과 다르고, 안기부가 金賢姬의 사진이라고 공개한 金賢姬 사진은 金賢姬가 아니며, 대통령 선거에 이용하려 했다는 의혹으로 집약된다. 진상규명 시민대책위가 주장하는 의혹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金賢姬 자백 외에 물증이 없다고?
  
   기자는 당시 수사 관계자, 現국정원의 관계자 등을 만나 정의구현사제단, 진상규명 시민대책위 등이 제기한 의혹 가운데 주요 항목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다음은 국정원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KAL 858편의 기체 결함 여부에 대해 조사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기체 결함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기본이다. 우리는 기체 결함 여부에 대해 조사를 했다. 사고 비행기는 1977년 9월 기관사의 조작과실, 1987년 9월 락 로드(LOCK ROD) 파손 등으로 김포공항에 비상착륙한 사고기록이 있었다.
  
   그러나 1987년 9월7일부터 9월29일까지 보잉항공사 기술지도下에 동체 전면 하반부 표피·골격 교체 및 동체 전면 골격 부위에 대한 전반적인 비파괴 검사를 실시함으로써 기체에 대한 점검과 수리를 완료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수리 완료 후에는 약 4주 간에 걸쳐 미국 산타바바라에 있는 트라코社(TRACOR CO.)에서 항공기 엔진에 소음기를 장착한 후 장착 엔진 4기에 대한 전반적인 성능실험을 한 결과 정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機種의 경제적 사용 시간은 6만 시간이었고 세계 최고 사용 시간은 7만7674시간인데 반해 사고 비행기의 사용 시간은 3만6046시간이었다. 기체결함으로 인한 사고로 볼 만한 사항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랍 에미레이트의 아부다비 공항에서 승객 열다섯 명이 내렸다. 이 가운데 金賢姬 일행을 제외한 열세 명의 신원이 발표되지 않았다. 조사했는가.
  
   『미리 金賢姬와 金勝日을 범인으로 찍어 놓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조사할 필요가 없었지 않았느냐는 이야기로 들리는데, 수사기록에 다 나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아부다비 공항에서는 교체 승무원 여덟 명이 내렸고, 일본인으로 가장한 범인 두 명, 미국인 두 명, 아랍인 열한 명 등 일반 승객 열다섯 명이 내렸다. 전부 외국인이었다. 이 일본인 두 명의 신원을 일본 당국에 조사한 결과 하치야 신이치씨는 일본에 실존하고 있다는 위조여권 사실을 확인하고 곧바로 바레인 당국에 그 사실을 통보했다. 물론 다른 외국인들에 대한 조회도 실시했음은 물론이다. 명단도 공개할 수 있다. 수버 나지, 수버 수아드, 압둘 후세인, 나와 아흐메드 아비달리, 하미드 호다, 아미르 아흐메드 아비달리, 갈레브 모흐드, 알 바야티 판, 라피에 마카딤, 압둘라티프 살리마, 모하메드 수함, 모하메드 자말, 하타브 등 金賢姬와 金勝日을 제외하고는 미국인 두 명, 아랍인 열한 명이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린 사람들이다. 아랍인 중에 하타브는 독일 국적 이라크人이다. 함께 내린 대한항공 소속 승무원은 사무장 박길영, 남자 승무원 김석영, 이승규, 여승무원 조은경, 문영애, 박은미, 김재정, 함연호 등 여덟 명이다』
  
   ―블랙박스 수색을 위한 수중 공명 위치 탐지기를 준비하지 않고, 사고발생 10일 만에 현지조사단을 철수하고 기체나 유품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색작업을 중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답답한 일이다. 우리는 블랙박스 수색과 유품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고 자부한다. 당시 정부는 홍순영 외무부 제2차관보를 단장으로 하는 정부 조사단 25명을 현지에 파견했다. 정부 조사단은 태국과 미얀마 정부의 협조를 받아 합동수색 구조본부를 설치하고, 항공기, 어선, 지상수색대 등을 지원받아 KAL기 추락 예상 지점인 태국·미얀마 국경의 산악 및 해상 지역에 대한 수색을 실시했다.
  
   12월9일에는 고성능 음파탐지기가 탑재된 해저수색 전문 미군항공기 P3-C 세 대를 1차 지원받아 수색활동에 투입했고 이후 두 대를 더 지원받아 총 다섯 대로 안다만 해역 등에서 블랙박스와 잔해, 유품 등을 수색했다. 12월10일에 조사단이 돌아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부 다 돌아온 것이 아니고 일부 조사단이 방콕에 차려진 사고대책본부에 남아 수색을 벌였다. 다만 블랙박스는 바다에 떨어지면 30일 간 2마일 범위 내에 신호를 보내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12월29일에 수색작업을 종료했던 것이다. 그후 유족들의 요청으로 1990년 11월2일부터 15일까지 再수색을 실시한 바 있다』
  
   ―블랙박스와 잔해 수색중 12월13일에 25인승 구명보트가 발견됐다. 구명보트에 있던 13종 50여 가지의 물품 중 공기압축펌프의 파손을 이유로 KAL기 잔해라고 주장하였는데, 구명보트가 멀쩡한 상태에서 50종의 물품 중 공기압축펌프만 파손된다는 것이 가능한가.
  
   『구명보트는 교통부 조사반이 감식을 했다. 교통부 조사반에 의하면 KAL기 구명보트에 내장되어 있던 비상공기유입용 수동펌프는 완전 파손되었으며 기타 내장품들은 상당 부분 파손된 것으로 보아 비행중 폭발에 의해 파손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구명보트에 부착된 자동 공기주입용 질소통에 「KAL NO. L-S-25」라는 글자와 「충전기한」이라는 글이 적혀 있어 사고기 잔해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金賢姬의 자백 외에 KAL 858편이 폭탄테러에 의한 공중폭발로 추락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물증은 무엇인가.
  
   『대한민국 법원이 바보인가. 재판부가 자백만 갖고 사형 언도를 내리겠는가.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을 보면 金賢姬의 자백 외에도 증거가 무수히 많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범인들이 음독자살을 기도한 액화청산가스(일명 청산가리) 앰플은 과거 북한 간첩 신광수, 정해권 등이 소지하고 있던 액화청산가스 앰플과 형태, 성분이 동일하다. 북한제인 것이다. 金勝日의 義齒(의치)를 북한에 납치됐다가 치아수술을 받았던 납북귀환 어부 네 명의 義齒와 비교, 감정한 결과 시술재질, 보철공법 등이 동일했다. 金賢姬가 소재한 수첩에는 북한 對外정보 조사부 崔과장이 비상연락시 사용하라고 준 전화번호가 물품대금 구입액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표시한 암호로 적혀 있었다. 해독 결과 오스트리아 빈 및 베오그라드 주재 북한 대사관 전화번호와 일치했다. 金賢姬의 아버지 김원석이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주재관 및 공보담당 3등 서기관으로 근무한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1962년 및 1965년 발행 쿠바 외교관 명단에는 김원석뿐만 아니라 金賢姬의 어머니 림명식의 이름이 함께 등재돼 있었다』
  
   ―金賢姬는 자백을 통해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金勝日이 그의 여행용 가방 한 개와 폭파용 라디오 및 술병, 기타 담배 등이 들어 있는 비닐주머니(비닐쇼핑백)를 비행기 의자 위 선반에 올려 놓았다고 말했다.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린 KAL기 박길영 사무장은 金賢姬 일행이 폭약을 넣어 기내 선반에 두고 내렸다는 비닐 쇼핑백을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 사실도 조사를 했다. 1988년 2월16일 안기부 이라크 파견관이 이라크 외무성의 협조를 받아 바그다드 공항 보안요원 등을 접촉, 확인했다. 1987년 11월28일 밤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KAL 858편에 탑승하려던 金勝日과 金賢姬의 휴대물품을 직접 검색한 보안요원은 자파르 모하메드씨와 사미라양이다. 이들은 당시 金賢姬는 반달형 검은 핸드백과 함께 소형라디오, 1.5V 배터리 네 개, 헤어드라이어, 화장품, 담배, 약 등이 들어 있는 비닐백을, 金勝日은 의류 등 일상용품이 들어있는 가방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前 유엔대사 朴銖吉의 증언:중국도 북한의 「조작」 주장을 믿지 않았다
  
   사제단 등 KAL 858편 폭파사건 조작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측이 단골로 제기하는 것 중 하나가 1987년 大選에서 盧泰愚 前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이 사건을 조작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외무부 제1차관보로서 범인 인수를 위해서 정부 특사 자격으로 바레인에 파견됐던 朴銖吉 前 유엔대사(現 경희大 평화복지대학원장)는 『KAL 858편 폭파사건이 조작됐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단정하면서 『더더욱 대통령 선거에 맞춰 金賢姬를 데려왔다는 주장은 뭘 몰라도 한 참 모르는 소리』라고 말했다. 다음은 朴 前 유엔대사의 증언이다.
  
   『당시 金賢姬 인수를 위해 바레인으로 갈 때 우리는 남파 간첩들이 쓰던 독약 샘플을 가지고 갔다. 함께 동행한 안기부 직원들에 의하면 남파간첩들은 소지하고 있는 독약 앰플을 깨물어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우리가 가지고 간 독약 앰플과 범인(金賢姬, 金勝日)들이 사용한 독약 앰플은 성분이 일치했다. 당시 수사총국장이 영국인인 핸더슨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도 그 사실을 인정했고 그래서 범인 인도에 동의했다. 당시 릴리 주한 美대사도 미국이 자체적인 조사를 통해 이 사건이 북한 공작원의 짓이었음을 확인했다고 전해 주었다. 이듬해인 1988년 2월17일 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해 KAL 858편 폭파사건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 측의 설명 후 유엔주재 중국대사인 리루웨가 북한을 변호하는 연설을 했는데, 그는 다른 때와 달리 그날은 3분도 안 되는 시간에 연설을 마쳤다.
  
   당시 유엔주재 북한 대사 박길연은 한 시간 반 동안 연설을 하면서 내가 보석 등을 가지고 가서 바레인 왕가를 매수했다고 발언을 해서 유엔 주재 바레인 대사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
  
   훗날 나는 리루웨 대사를 국제회의에서 만났다. 그때 그는 KAL 858편 폭파사건 당시의 연설은 자기가 외교관을 하면서 한 연설 중 가장 짧은 연설이었다고 말했다. 그 다음에 이어진 말들을 종합하면 북한을 변론한다는 일이 낯간지러웠다는 말이었다. 맹방인 중국조차도 북한의 KAL 858편 폭파사건의 조작 주장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일부에서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서 金賢姬를 선거 前날 압송해왔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우리가 바레인에서 金賢姬를 제주도 또는 싱가포르에 미리 데려다 놓았다가 선거 직전에 데려왔다고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웃기는 소리다. 바레인 외무장관은 金賢姬의 인도를 약속했다. 그때가 12월12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북한이 작은 나라인 바레인을 협박했고, 바레인은 잠시 주춤했다. 나도 바레인 정부에 「金賢姬를 안 내주면 북한이 범인을 탈취하러 올 수도 있다. 당신들은 金賢姬라는 폭탄을 안고 있는 것이다. 하루빨리 인도를 하라. 우리는 14일에 범인을 인수하든 안 하든 이곳을 떠날 것이다」고 최후 통첩을 했다. 그렇게 해서 金賢姬를 인수하게 된 것은 12월14일이었고 金賢姬가 한국에 도착하게 된 것은 다음 날인 15일 오후였다. 대통령 선거에 맞춘 것이 아니라 상황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朴 前 대사는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측의 『金賢姬에게 자살방지용 입마개를 씌운 것은 김포공항에 내리기 직전이었다(조작이었으므로 굳이 힘들게 바레인에서부터 입마개를 씌울 필요가 없었다는 주장이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러니까 웃긴다는 거다. 그것은 내 눈으로 직접 본 일이다. 내가 비행기에 오르니까 金賢姬의 입에 마개가 씌워져 있었다. 그 모습이 불쌍해 보였다. 나는 동행한 안기부 수사관에게 입마개를 벗겨 주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안기부 직원은 「간첩들은 혀를 깨물어서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정의의 칼끝」은 어디를 겨냥해야 하는가
  
   사건 당시의 안기부 수사관과 국정원 관계자, 정부 특사로 바레인에 갔던 朴 前 대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건의 진실은 명약관화해 보인다. 의혹의 대부분은 사건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면 의문이 풀리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제단 등의 조작 의혹 주장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사제단은 출범 초기인 1974년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을 맞아 시국성명서를 냈다. 성명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국민 각자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는 이미 국민의 정부가 아니다. 국민 다수의 정당한 주장을 총칼과 권력으로 폭압하는 정부는 이미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다.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정부는 이미 국민에 의한 정부가 아니다>
  
   한반도에는 「국민의 정부」와 「국민을 폭압하는」 집단이 이끄는 체제가 공존해 있다. 1970년대 초 모임이 만들어질 당시의 순수한 열정이 지금도 도도히 흐르고 있다면 사제단이 겨눠야 할 「정의의 칼끝」은 「총칼과 권력으로 폭압하는 집단」을 향해야 하지 않을까. 한반도에서 KAL 858편 폭파사건의 의혹을 반기는 체제는 단 하나고, 그 체제야말로 「국민 각자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다.●
  
[ 2008-07-01, 00:0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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