惡化가 빠르면 회복도 빠르다?
금융위기를 前後하여 기름값이 배럴 당 150 달러에서 6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앞으로 석 달 사이엔 바닥을 친 株價가 배로 뛰는 게 아닌가? 경제를 예측하기란 정말 어렵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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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發 금융위기는 확산 속도도 빠르지만 국가의 대응 속도도 빠르다. 미국, 유럽, 아시아 국가의 頂上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어 있고, 인터넷의 발달로 반응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경제가 나빠지는 속도와 회복되는 속도가 다 같이 빠르지 않을 수 없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高油價 시대가 왔다고 비명을 질렀는데, 금융위기를 前後하여 기름값이 배럴 당 150 달러에서 6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앞으로 석 달 사이엔 바닥을 친 株價가 배로 뛰는 게 아닌가? 경제를 예측하기란 정말 어렵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정보가 많은 사회에서 왜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던가?'라고 반성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위기가 오면 사람들은 과거의 대공황이나 한국인의 경우엔 1997년의 外換위기를 생각하고 대책을 세우려 한다. 과거는 하나의 참고사항일 뿐이다. 과거나 역사를 교과서로 삼아 공식을 도출해내려고 하면 공산주의자들처럼 역사적 결정론이나 도그마의 함정에 빠진다.
  
  1929년 미국 證市의 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은 1933년까지 지속되었으나 정부는 구제금융을 실시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국민들의 私생활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만큼이나 금기시했었다.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된 이후 본격적인 정부개입이 있었다. 그 사이 9000개의 은행이 파산하고 예금자들이 지금 돈으로 3400억 달러 상당의 피해를 보았다. 은행이 거의 마비되니 사람들은 현금 보유를 선호하게 되고 그만큼 소비가 위축되었다. 소비가 위축되니 기업활동도 줄었다. 소비자 물가는 그 4년 사이 24%가 싸졌다. 실업률은 3%에서 25%로 늘었다. 1930년에 미국은 自國기업을 보호하기 위하여 관세율을 높였는데, 이것이 對美수출에 의존하던 유럽의 여러 나라 경제를 망쳤다.
  
  1931년 오스트리아 은행들이 파산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독일, 영국은행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미국 全인구의 약28%는 대공황 기간에 일체의 소득이 없었다. 학교도 문을 닫았다. 책 판매량은 50%가 줄었다. 뉴욕 거주 어린이의 20%가 영양실조 상태였다. 대학입학생도 줄었다.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달러를 평가절하하여 시중에 돈이 돌게 했다. 그랬더니 산업생산이 연간 10%씩 늘었다. 지금 세계의 정부가 하고 있는 대책은 대공황時의 실패와 성공을 참고로 한 것이다. 대공황時 정부가 개입을 늦춘 것이 재앙을 확대시켰다고 생각한 미국과 유럽의 정부는 서둘로 구제금융을 시작했다. 이런 긴급조치가, 금융위기에 의한 實物경제 위기 악화를 막아낸다면 국제사회는 좋은 선례를 만드는 셈이다.
  
  일부 비판자들은 지난 9월15일 미국의 투자은행인 레만 브라더즈가 파산신청을 한 직후 미국 정부가 나서서 구제금융 정책을 발표했더라면 惡化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응이 더 빨랐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작은 정부를 부르짓던 신자유주의자들은 갑자기 큰 정부를 만들고 있다. 경제위기는 가끔 사람들의 신념을 바뀌치기 한다.
  
[ 2008-10-27, 01:3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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