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明博과 金賢姬의 인연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인 현대건설의 당시 회장이 대통령이다. 폭파 지령자인 김정일을 이롭게 하려고 김현희를 가짜로 만들려 했던 음모자들을 단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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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호 月刊朝鮮은 國情院이 수사중이던 비밀 북한노동당원 宋斗律씨 사건의 내막을 이렇게 보도했다(禹鍾昌 기자).
  
  <베를린에 있는 북한의 이익 대표부 김경필(58·가명)은 부부 동반으로 근무 중인 통일전선부 소속 서기관이었다. 그는 1998년 현재로 3년째 근무하고 있었다. 그의 임무는 독일을 중심으로 한 스위스,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의 한국 교포 사회 공작이었다. 한국 교민들 속의 親北단체와 인사들을 관리하면서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선전하고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며 북한 정권을 홍보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그는 많은 親北인사들을 포섭하였고 미국 교민사회에도 손을 뻗쳤다. 그의 중요 임무 중의 하나는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인 宋斗律과 연락하고 그를 나름대로 조정 관리하는 일이었다.
  
   1998년 그는 독일의 경제 중심지 프랑크푸르트 교민 C씨로부터 고충을 들었다. 이 교민은 출판·인쇄업에 종사하면서 김경필 서기관과 협조하는 親北인사였다. C씨는 자신의 컴퓨터가 고장났다면서 하나를 새로 사야겠는데 도와줄 수 없느냐고 말했다. 마침 김경필은 자신의 PC가 낡아 바꿀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는 『내 컴퓨터를 쓰라』고 하면서 주겠다고 말했다.
  
   김경필은 컴퓨터를 건네 주기 전에 하드 디스크에 들어 있는 기록을 전부 지웠다. 김경필의 PC를 넘겨받은 C씨는 어떤 경로를 거쳐 이 컴퓨터에 내장되어 있다가 김경필이 지운 기록을 재생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컴퓨터 디스켓 기록은 고스란히 우리 국정원 현지 요원 앞으로 넘어왔다. 이 기록은 김경필의 유럽 공작 상황을 자세히 담고 있었다. 정보기관으로서는 최고의 특종이었다. 김경필은 PC에 일단 入力된 자료는 쉽게 재생된다는 것을 모르는 이였다.
  
   1998년 12월 김경필은 평양의 통일전선부로부터 한 달 안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김경필은 귀환 시기가 아닌데 왜 갑자기 돌아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는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익대표부 대사 등 직원들이 자신을 보는 눈도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 사실이 평양에 알려진 것이 아닌지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이번에 돌아가면 처벌을 받을 것이란 예감이 자꾸 들었다는 것이다.
  
  
   유럽의 美 대사관 망명, CIA 관리로 넘어가다
  
   이때 국정원 유럽 공작부서로부터 연락이 왔다. 김경필을 만난 국정원 요원은 김경필의 활동내역이 소상히 실린 컴퓨터 디스켓 이야기를 꺼내면서 단도직입적으로 한국으로 귀순할 것을 권했다. 귀순하지 않으면 북한 쪽으로 정보를 흘려 파멸시켜버리겠다는 뜻도 내비쳤을 것이다.
  
   겁을 먹은 김경필은 며칠 뒤 부인 金모씨(56세)와 함께 자동차 편으로 유럽의 제3국으로 달려가 미국 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했다. 1999년 1월 그는 미국의 CIA로 신병이 넘어갔다. 약 5개월에 걸쳐 그는 신문을 받았다. 그는 유럽에서의 활동상을 자세히 설명했다. 독일 정보기관(BND)에서도 사람을 보내 김경필 부부를 신문했다. 미국 CIA는 이 신문 과정에서 김경필로부터 「宋斗律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인 김철수이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김경필은 처음에 「송두율은 평양의 통전부에서 직접 관리한다」고 말하면서 적극적인 진술을 꺼렸다고 한다. 韓美간의 정보교류 협정에 따라 국정원도 요원을 보내 김경필 부부를 신문했다.
  
   김경필 부부는 미국으로 망명할 때 컴퓨터를 가져 가지 않았지만 활동상황에 대한 진술을 통해서 유럽 교민들 속으로 파고든 북한의 공작 상황과 親北인사들의 명단을 많이 털어놓았다.
  
  
   신문받으면서 자식 생각에 눈물
  
   김경필 부부가 왜 국정원의 공작방향대로 한국으로 가지 않았느냐가 궁금하다. 김경필은 한국에 북한 공작원들과 親北인사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어 매우 위험하다는 판단을 하고 미국行을 택했다고 한다. 김경필은 또 남북한 정보기관 사이에 그 어떤 內通채널이 있다는 심증을 내비쳤다고 한다.
  
   김경필 부부는 살기 위해 탈출하느라고 평양에 두고 온 아들, 딸을 생각하면서 신문 중에도 많이 울었다고 한다. 이 부부는 지금 신분을 바꾸고 취직까지 하여 미국 CIA의 보호 속에서 살고 있다. 情報源(정보원)에 대한 이런 보호는 두 부부가 사망할 때까지 계속된다.
  
   미국 CIA는 김경필을 통해서, 금강산 관광 등 모든 對南사업을 통전부에서 관리하는데 그 主목적은 돈벌이가 아니라 남한 적화를 위한 내부 교란, 親北 교두보 확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국정원, 黃長燁 재판자료로 제출하지 않아
  
   한편 김경필이 남긴 컴퓨터 기록을 입수한 국정원은 김경필이 宋斗律을 조정하고 관리한 연락책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宋斗律과 관련된 연락 기록, 대담록 등이 디스켓에 들어 있었다고 한다.
  
   국정원에선, 1998년 8월호 月刊朝鮮의 특종보도(「宋斗律은 북한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다」) 이후 宋斗律씨가 발설자 黃長燁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자 김경필의 디스켓을 증거자료로 제출하느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내지 않는 쪽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만약, 재판의 결과에 집착해 국정원이 그때 디스켓 기록을 재판부에 냈더라면 宋斗律씨는 귀국을 포기했든지 준비를 하고 왔을 것이다.
  
   이번에 宋斗律씨가 국정원의 아주 느슨한 출퇴근 조사에서 너무나 빨리 자신의 북한 노동당 입당과 정치국 후보위원 임명에 대해 자백한 것은 국정원이 들이민 김경필의 디스켓 파일의 내용과 미국 망명 후 김경필이 진술한 내용이 너무 구체적이라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김경필이 CIA 신문 때 털어놓은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북한 對南공작의 최우선 당면목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남한으로 탈출한 黃長燁을 죽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金賢姬의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에 의혹을 제기하여 金을 거짓말장이로 만드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에 정권을 등에 업은 좌익세력과 선동방송은 터무니 없는 논리로써 대항항공기 폭파사건에 의혹을 제기하였다. KBS, MBC, SBS,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나중엔 국정원과 국가 기관인 진실 화해위원회까지 이 의혹제기에 가담했다. 누가 무슨 변명을 하든 결과적으로 이들 세력은 직접 지령으로 115명을 죽인 김정일에게 이롭고 피해자인 대한민국에 불리한 짓을 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고 자발적으로 그렇게 했다면 그 '바보짓'에 대한 代價를 치러야 한다.
  
  조국이 피해자가 된 사건에서 가해자 편을 드는 인간을 용서하는 나라는 없다. 더구나 공영방송, 국가정보기관, 국가기관이 主敵에게 이롭고, 조국에 불리한 짓을 했다면 이는 일종의 逆謀(역모)이다.
  
  국가정보원은 재조사를 해선 안 될 이 사건을 재조사함으로써 국민 세금을 낭비한 것은 물론이고, 안기부가 완벽하게 조사한 사건이 의혹이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조사위원들은 거의가 의혹제기자들이었고 좌편향된 인물이었다. 소설 수준의 책으로 의혹제기를 한 인물을 조사관으로 채용했다. 국정원은 거짓과 왜곡의 명수인 MBC-PD 수첩에 출연하라고 김현희씨를 압박했다. MBC-PD 수첩 취재팀은 김현희씨가 사는 아파트 문을 두드리고 불이 켜진 그 아파트 호실을 방영했다. 북한공작원이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고급정보를 공짜로 공개한 셈이었다. 좌익들에게 포위된 金賢姬씨가 '내가 방송에 나가면 저들의 함정에 빠진다. 이는 정권 차원의 거대한 음모이다'라고 판단하여 다른 곳으로 피신해버린 것은 공작원 출신다운 현명한 결단이었다.
  
  李明博 대통령은 현대건설 회장 시절 이 사건을 당한 사람이다. 115명중 현대건설 노동자가 가장 많았다. 지금 다섯번째로 김현희씨를 조사하고 있는 진실 화해委는 독립기관이나 위원장과 위원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며칠 전 李明博 대통령은 한 市場을 방문한 자리에서 '농민은 죽어가고 있는데 농협은 정치를 하고 있다'는 요지의 다소 과격한 발언을 했다. 그 말 한 마디에 農協은 개혁작업에 착수하고 간부들이 한꺼번에 사직했다.
  
  李 대통령은 김현희씨가 李東馥씨에게 보낸 호소문이 화제가 되었을 때 이런 말을 했어야 했다.
  '대한민국이 赤化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국가기관이 김현희를 조사하나? 3심을 거친 사건인데 국정원이 4심하고, 화해 진실위원회가 5심을 하나? 조국에 해롭고 敵에겐 이로운 이 따위 짓에 가담한 국가기관에 대해선 특별조사를 실시하여 利敵혐의를 밝혀내라! 이런 식으로 조사할 것 같으면 北侵說도 국가가 조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정신병자가 해는 서쪽에서 뜬다고 주장하면 그것도 국가가 조사하나? 정권이 바뀐 지가 언제인데, 관련기관은 그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1988년 1월15일 대한항공 폭파 사건을 발표했던 李相淵 당시 안기부 차장(뒤에 안기부 부장 역임)은 '이 사건은 국가정보기관 역사상 가장 모범적으로 조사되었다. 진상 규명엔 미국 일본 등 국제적인 협조가 있었다. 이 사건을 국정원이 재조사한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고 말했다. 좌익들이 하는 행태의 특징은 조국을 국제적으로 망신시키는 것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국가와 체제에 증오심을 품은 자들의 자연스런 표현일 것이다. 촛불亂動이 국제사회에서 한국인을 이상한 존재로 만든 것처럼 金賢姬 재조사는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과연 국가인가'라는 의문을 심었을 것이다.
  
  李明博 대통령의 義憤心(의분심)을 기대한다. 사람은 화를 내야 할 때 화를 내야 한다. 이 경우엔 대통령이 아니면 화를 내어도 쓸모가 없다. 李 대통령에게도 그런 화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오지 않을 것이다.
  
  
  
[ 2008-12-09, 17:0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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