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60년의 奇蹟(기적)들!
김일성의 도전을 받아 대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더 강해지고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조갑제(자유북한방송)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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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해도 며칠이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사건이 많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북한에서는 민족 반역자로써 7000만 민족에게 도저히 씻을 수 없는 죄악을 남긴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병상에서 악몽에 시달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는 약 700만명의 목숨을 빼앗아간 20세기의 최악의 독재자입니다. 김일성은 6.25남침전쟁을 일으켜 300만 명을 죽게 했고 김정일은 개혁개방을 하면 살릴 수 있는 동포들을 방치하였습니다. 집단농장을 개혁하지 않고 문을 열지 않아 300만이 굶어 죽었습니다.
  
  말을 잘못했다고 강제 수용소에 보내 100만명을 죽였습니다. 합쳐서 700만명을 죽인 그 惡(악)의 정권의 김정일이 절대로 편안하게 숨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여러분들이나 역사나 세계가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올해 남한에서는 대한민국이 세워져 6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가지 의미 있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60년의 대한민국 역사는 북한에서의 60년 악몽 같은 역사와 대비되는 지옥과 천국과 같은, 또 햇볕과 어둠과 같은 크나큰 차이를 이루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태어났을 때 이렇게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아시아에는 두 가지 기적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중국이 공산화된 것이 기적이고 둘째는, 한국이 공산화 안된 것이 기적이라고 합니다. 한국이 공산화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놀랍게도 3.8선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이 공산화되지 않은 것입니다. 3.8선이 만들어진 배경을 보면 1945년 8월10일에 일본이 미국에 항복을 하겠다는 뜻을 통보해 왔습니다.
  
  이 일본군의 항복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를 가지고 미국 국방부의 ‘딘 러스크’라는 사람과 ‘찰스본 스틸’이라는 두 사람이 고민을 하다가 한반도 지도에 선을 그었습니다. 또한 이 결정을 스탈린에게 통보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스탈린은 침공을 명령하고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서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만약 스탈린이 미군은 필요 없다고, 우리가 한반도 전체를 점령하겠다고 거절했다면 미국으로서는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탈린이 미국의 제안을 받아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소련군은 3.8선 이북을, 3.8선 이남은 미군이 점령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습니다.
  
  ‘왜 스탈린이 이런 결정을 했느냐?’하는 문제에는 여러 가지 쟁점이 있습니다. 당시 스탈린은 만주를 점령하고 일본의 북방열도를 점령하고 미국과 함께 일본을 분할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05년 러시아는 일본과 싸워 패전으로 큰 타격을 받았는데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는 바람에 러시아 왕조가 망하고 소련이 들어섰습니다.
  
  때문에 러시아는 일본에 대한 원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반도에 있어서 미국의 제안을 그냥 받아주는 일정의 양보를 한 것입니다. 이렇게 아주 우연하게 3,8선이 만들어졌습니다. 3.8선은 단순히 미군과 소련군이 하나의 경계선으로 이용한다는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련군 때문에 출입금지선이 되고 말았습니다.
  
  스탈린은 1945년 9월 극동군사령부에 북한지역에 우선 사회주의 정권을 세우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남북한 사람들이 왕래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소련이 사회주의 정권을 만들려고 하니까 북한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1946년에 북조선임시위원회라는 일종의 정부기관을 만들어 토지개혁을 실시했습니다. 말하자면 토지를 국유화한 것이었습니다. 남한에서는 토지가 개인이 소유하게 되어있었습니다. 남한은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북한은 사유재산을 인정 안하니 남북한의 체제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남북한의 분단은 체제가 달라진 것을 기준으로 해야 되는데 북한에서 농지개혁을 하면서부터 체제를 달리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결국 소련과 북한이 민족의 비극인 분단의 완전한 책임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던 3.8도선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은 그나마 적화되지 않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60년의 가장 큰 기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이승만이라는 기적이 있지요. 이승만은 아무런 국내 조직이 없었지만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건국을 지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승만은 미국과 싸우고 공산당과 싸워 한국을 만든 것입니다. 미국은 원래 남북한 통일정부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봐도 소련과 공산당이 방해하니 남한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세우는 것으로 끝내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948년 3.1절 기념사를 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수립된 국회가 정부를 만드는 것은 ‘통일중앙독립정부로써 완전무결한 국권을 세우는 것이다. 단독정부라는 말은 맞지 않으며 사람의 몸에 한편이 죽어가는 경우에는 살아 있는 편이라도 완전히 살려 죽어가는 편을 나중에 살리는 것이 옳은 일이다. 살아있는 편까지 모두 죽일 수 없는 것이다.’라는 아주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말하자면 우선 남한이 살아야 되고 건강한 부분이 우선 살아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좌익들의 말대로 남북한을 합치고 죽어가는 몸과 살아있는 몸을 억지로 하나로 만들자고 하다가는 다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대한민국이라도 정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실행하여 정통성 있는 국가가 들어섰던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즉각적으로 남한의 토지개혁을 실시하였습니다. 공산주의자 출신인 조봉암씨를 농림부장관으로 임명하고 북한에서는 국가가 토지를 몰수했지만 남한에서는 돈을 아주 낮게 책정하여 소작농들이 지주로부터 땅을 살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남한에서는 식량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여러분들이 너무도 잘 알듯이 국가가 농토를 소유하여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 땅이라는 생각이 약해지고 열심히 일하지 않고 지금처럼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주 재미있는 사실은 남한에서의 농지개혁은 ‘1950년 6.25남침’ 바로 직전에 끝났습니다. 농지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군이 쳐들어 왔더라면 남한의 농민들도 북한군과 손잡고 대한민국과 미군에 대항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농지개혁을 먼저 하였기 때문에 북한군이 남침 때 따로 할 개혁이 없어졌던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6.25남침 때 대한민국을 살린 또 다른 기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 기적은 50년 6월25일에 북한군이 압도적 병력과 장비로써 3.8선 전역을 기습하기 시작했을 때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즉각적으로 미군을 보내서 대한민국을 살리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가 한 외국인의 결단에 의해서 구출되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그 혈맹관계가 지금도 계속 유지되고 발전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남침할 생각을 못하게 되고 그 한미동맹이라는 울타리 속에 대한민국은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하면서 지금 세계에서 아주 우수한 나라로 성장하였습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있을 때 워싱턴에서 회의를 했을 때 그중에는 한국도 당당히 들어갔던 것입니다. 6.25 때에도 여러 번의 기적이 있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기습을 당한 국군은 후퇴는 했으나 절대로 부대단위로 항복은 하지 않았습니다. 즉 ‘국군은 미군이 참여를 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습을 버티어냈습니다.
  
  미군은 1950년 겨울 중공군이 개입하자 흥남에서 약 10만명의 북한사람들을 배에 태우고 남한으로 철수하였습니다. 그 당시 미 해병대는 중공군에게 포위된 상태였습니다. 민간인들이 10만명이나 탈출했다는 것은 세계전쟁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미국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도주의 정신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이 많이 포로가 되었는데 이 사람들을 북한이 요구하는 대로 보내주면 처형될 것이라고 미국은 판단하고 반공포로들은 자유의지에 의한 송환이라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 전쟁 중에도 불구하고 언론자유를 보장해 주었던 것입니다. 당시 대한민국 나이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6.25중에 한국에서는 거대한 조직 하나가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군대입니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10만명도 안되던 국군이 60만,70만명의 大軍으로 커졌습니다. 한국군 장교들은 나라를 이끌어가겠다는 개혁의지가 강한 집단이 되었습니다. 또한 집단 속에서 박정희라는 소장이 지도자로 나왔습니다. 그는 5.16군사혁명을 일으켜서 정권을 잡았습니다.
  
  이 사람이 18년 동안 한국을 이끌어가면서 현대화와 민주주의의 기틀도 만들고 남북한의 대결에서 남한이 압도적으로 강한 위치에 설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김일성이 남침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강한 국군이 생기고 바로 박정희라는 지도자가 나오게 될 수 있었습니다.
  
  역사란 아주 재미있습니다. 김일성이 나쁜 짓을 하였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남한에서는 박정희의 등장과 성공한 현대화라는 좋은 일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수출을 하며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는데 바로 박정희 군사정부는 수출 입국이라는 大전략을 내세웠습니다.
  
  수출하며 먹고 살 수 있다고 하면 사람의 마음이 달라집니다. '손톱깎이’ 하나를 만들어도 세계 여러 상품과 경쟁하도록 만들어야 된다는 마음자세를 갖게 되면 회사가 아주 근실하게 되고 매일매일 기술연마를 해야 되고 외국에 자주 다녀야 되므로 사람들의 실력, 기업의 실력, 국가의 실력이 더욱 강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수출하기 위해서 무기를 만든다고 결심을 하였기 때문에 한국사회 전체가 발전할 수 있는 출발점이 만들어졌습니다. 이것도 대한민국 60년의 큰 기적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60년대에 한국은 경제개발에 투자를 많이 하고 해외에서 일할 수 있는 무대를 많이 만들어 갔습니다.
  
  한편 북한은 1960년대에 군사력 건설에 집중했습니다. 탱크도 만들고, 대포도 만들고 군사력증강 제일주의로 갔습니다. 1968년 1월21일 밤에는 31명의 특공대가 청와대 담벼락까지 접근하여 박대통령을 죽이려는 특공작전을 벌렸습니다.
  
  북한은 동해상에서 정보 수집을 하는 ‘푸에블로’호를 납치하기도 했습니다. 또 그해 가을에는 북한의 무장특공대 약 200명이 동해안 지역에 침투에 성공해가지고 산악지대에서 게릴라전을 시도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주 국방 선언을 했고. 무기도 직접 만드는 공장을 만들고 예비군도 만들었습니다.
  
  이제 한국은 군사력도 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하나의 기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김일성이 1.21사태로 박정희의 목숨을 빼앗아가려는 음모를 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 도전을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대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더 강해지고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재항이 오히려 복이 된 셈이죠. 또 다른 역사를 보면 북한은 남한을 적화시키기 위해, 남한을 분열시키기 위해 남한을 망하게 하려고 침략을 하였고 간첩을 보냈습니다. 또 게릴라를 침투시켜 대통령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마다 우리는 그에 대해 응전을 했습니다.
  
  이 도전과 응전이 되풀이되면서 남한은 강해지고 북한은 약해졌습니다. 즉 이렇게 된 이유는 남한은 좋은 마음으로 응전했고 북한정권은 나쁜 마음으로 도전했기 때문입니다. 역시 세상은 善(선)과 惡(악)이 대결하면 善이 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쁜 마음을 가진 북한정권이 지난 60년 동안 남한을 괴롭히다가 스스로 망해버렸습니다. 언제인가는 실력으로 북한을 흡수해 버리겠다고 생각하고 지난 60년간 남한의 국민들, 남한의 군대, 남한의 정치인들, 남한의 지도자들이 참았던 것입니다.
  
  참은 결과 오늘날 남북한의 격차가 일어났습니다. 이제는 남한이 결심만 하면 북한 동포여러분들을 해방하고, 자유민으로 만들고, 언제인가는 남한처럼 잘살게 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그 뒤에 이야기는 다음으로 돌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08-12-16, 10: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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